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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겐큐엔의 입구에 걸린 '풀벌레 소리 듣기 모임'을 알리는 등
ⓒ 장영미
여름휴가라고 하기엔 너무 늦었고, 단풍구경이라고 하기엔 너무 이른, 게다가 함께 떠나긴 했으나 가족여행이라고 부르기엔 너무도 제각각이었던, 그래서 딱히 이름 붙히기 곤란한 3일간의 여행 중 그 첫번째 이야기이다.

일본은 지난 13일부터 15일까지 연휴였다. 3년만의 기차여행에 들뜬 것은 딸아이 뿐만은 아니었다. 가을로 접어드는 들녘과 푸른 하늘, 칼날같이 쏟아지던 여름 햇살과는 달리 조금은 부드러워졌을 가을 햇살을 기대하며 아침 6시 30분 출발의 열차에 몸을 실었다.

그러나 잔뜩 부풀었던 마음과 달리 열차에 오른 이후의 기억이 가물가물 하다. 갈아타기 위해 두 번 깼던 것 외에는 줄곧 눈꺼풀이 덮여 있었다. 마치 요람에 누운 아기처럼 규칙적으로 흔들리는 열차 안에서 꿈을 꾸듯 아니면, 생활 속에서 찌든 피로를 전부 풀어버리기라도 하려는 듯 그렇게 잠이 들어버렸다.

목적지는 긴끼(近畿)지방의 시가현(滋賀県)에 있는 히꼬네시(彦根市). 도시 이름은 낯설었지만 비와코(琵琶湖)에 접해있는 도시라는 설명을 들으니 훨씬 알기 쉬웠다. 비와코라면 일본에서 제일 크고 오래 된 것으로 유명한 호수로 전에 살던 교토와도 가까웠다.

히꼬네역에 내리자마자 출장 일정을 시작한 남편과 헤어져 딸아이와 난 숙소로 향했다. 숙소에 짐을 푼 후 역 근처의 관광안내소에서 가져온 관광안내 팸플릿과 숙소 내에 비치된 팸플릿 등을 보며 둘만의 일정을 짰다.

첫날 오후엔 히꼬네성(彦根城)을 중심으로 주변을 돌아보고, 저녁 6시30분 경엔 ‘겐큐엔 (玄宮園)에서 열리는 풀벌레 소리 듣기’에 가기로했다. 이튿날은 JR을 타고 교토에 갈 계획을 짰다. 교토행은 생각지도 못했는데 쾌속열차로 46분 밖에 걸리지 않는다니 괜히 가보고 싶어졌다. 그리고 마지막 날엔 배를 타고 비와코 내의 작은 섬을 둘러보기로 했다.

일본식 풍류를 엿볼 수 있는 ‘풀벌레 소리 듣기’행사가 열리고 있는 것도, 생각지도 못했던 교토행도, 왠지 일이 잘 풀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기차 안에서 잠을 청하길 잘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몸이 개운하니 마음도 가볍고 날아 갈 듯해서 얼마든지 걸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딸아이만 잘 걸어 준다면 지구 끝이라도 걸어 갈 수 있으리라!

히꼬네시(彦根市)는 에도시대(1615-1867)부터 히꼬네성(彦根城)을 중심으로 발전한 이른 바 ‘죠카마찌(城下町)’이다. 부시(武士), 상공업자, 농민들의 사회적 분업이 이루어져 하나의 경제권을 만들었으며, 각 신분과 약 100가지에 이르렀던 직종에 따라 사는 곳이 정해져있었다고 한다. 당시에는 ‘작은 에도’라 불리며 번성하였으며 지금도 그 시대의 모습이 곳곳에 남아있다고 한다.

30도가 넘는 땡볕 속을 걸으면서도 짜증은 커녕 토끼같은 걸음으로 깡총깡총 뛰어다니는 딸아이를 앞세우고, 히꼬네성 중에서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한 일본의 국보(國寶) 천수(天守)에 올랐다.

3층 누각으로 곳곳에 네모 모양의 활을 쏘는 구멍과 세모 모양의 총을 쏘는 구멍이 뚫려있었다. 몹시 가파른 계단을 올라 꼭대기에 이르니 마치 전망대 처럼 히꼬네시가 빙둘러 내려다 보였고, 그리 멀지도 않게 비와코가 눈에 들어왔다.

무엇보다 오르는 고단함과 흐르는 땀방울을 식혀주는 천수(天守)의 바람이 무척 시원하고 달콤했다. 적을 감시하는 병사의 매서운 눈이 되어 다시 한번 시가(市街)를 둘러 보고 그곳을 내려왔다.

성 내부엔 여러가지 부속 건물들이 있었는데 그 중에서 눈에 띄는 것이 겐큐엔(玄宮園)이었다. 1677년 제4대 항슈(藩主)였던 이이나오오끼(井伊直興)에 의해 건설된 다이묘(大名)정원으로 중국의 당 현종의 별궁을 본따 지었다한다. 겐큐엔이란 이름도 여기서 유래하여 지어졌다. 매년 9월엔 ‘풀벌레 소리 듣기’, 11월 말 경엔 환하게 불을 밝혀 ‘단풍구경’을 하는 곳이기도 하다.

‘풀벌레 소리 듣기’행사가 시작되려면 약 2시간 정도가 남아있었다. 성곽을 따라 나와 유메쿄바시(夢京橋)를 건너니 에도시대의 거리를 재현해 만든 상점가에 이르렀다. 일명 ‘캿스루로도(castle road)’라 불리는 거리인데 식당, 카페, 선물가게, 은행 등의 건물이 모두 에도시대 풍으로 지어졌다. 마을 만들기의 일환으로 관광명소로 만들려는 의도가 엿보이는 거리였다.

▲ 일명 캿스루로도(castle road). 에도시대 풍의 상점들이 양쪽으로 늘어서 있다.
ⓒ 장영미
▲ 낡은 모습으로 새롭게 태어난 캿스루로도의 마을 만들기에 관한 안내판
ⓒ 장영미
그날 저녁, 일을 마친 남편을 만나 캿스루로도의 한 식당에서 저녁을 먹은 후 겐큐엔으로 갔다. 히꼬네성의 성곽을 따라 겐큐엔까지 걸어가는 동안 수많은 풀벌레들의 열정적인 합창을 들었다. 겐큐엔 주변의 풀벌레 소리는 ‘일본의 소리풍경 백선(日本音風景百選)’에도 뽑혔다는데 정말로 자연이 연주하는 밤의 교향악이라 할만큼 웅장했다. 초라하기만한 나 자신의 허물을 모두 거기에 묻어두고 달아나도 모두 감춰질 것만 같은 자연의 웅장한 찬가였다.

겐큐엔으로 들어서니 곳곳에 불을 밝힌 정원엔 그윽한 정취가 감돌았다. 연못가에 지어놓은 ‘호쇼다이(鳳翔台)’라는 건물 내부에선 5명의 연주가가 일본의 거문고인 ‘오꼬또(琴)’를 연주하고 있었는데 일본스런 정취를 더해 주었다. 그곳에선 불을 밝힌 겐큐엔의 연못이 한눈에 내려다 보였다.

▲ 산 위로 불 밝힌 히꼬네성의 천수(天守)가 보인다. 배를 타기 위해 줄지어 기다리는 사람들과 백조와 노니는 사람들의 모습. 연못가의 호쇼다이에선 일본의 거문고 연주가 한창이다.
ⓒ 장영미
그리고 건너편 연못가에는 노점 찻집이 차려져 있었다. 빨간 보자기를 씌운 긴 의자에 앉아 연못과 호쇼다이의 오꼬또 연주, 맞은 편 산꼭대기에 우뚝솟은 불 밝힌 천수(天守)와 달님,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차를 마시며 쉴 수 있도록 마련된 곳이었다. 차 한잔에 700엔(7천원 정도)이 비싸다고 해야할지 적당하다고 해야할지…. 찻값에 그 모든 경치와 정취의 값이 포함되었다고 한다면 시비를 걸 수도 없겠다 싶을 만큼 만족스러웠다.

일본 전통음악 연주, 찻집에 이은 또 한가지 이벤트는 연못을 가로지르는 작은 배에 올라 연못 위에서 그 모든 경치와 정취를 즐기는 것이었다. 토∙일∙공휴일 그리고 맑은 날씨에만 가능한 행사들이라니 나로서는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다.

기대가 클 수록 그에 비례해 실망도 컸던 경험들을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것에서 작은 기쁨을 맛보았을 때, 그리고 그것이 몇 번인가 겹쳐서 일어났을 때 마치 세상이 내 편이라도 된 듯 자신감에 차오르던 경험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오묘한 우주의 질서 속에 유유히 떠있는 자신을 발견했을 때의 안도감, 여유로움, 행복감, 자신감과 안락함. 그것이 비록 일순(一瞬)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바로 그러한 경험 때문에 인생 속의 수많은 무질서를 다스릴 힘을 그 작은 일순에서 얻는지도 모르겠다. 이번 여행이 내겐 그렇게 느껴졌다.

정원을 한바퀴 돈 후, 우리는 그 날의 마지막 배에 올랐다. 조금만 늦었어도 정원(定員)에서 잘릴 뻔한 아슬아슬한 순간이었다. 맞은 편에서 출발한 배를 기다리는 동안 연못가에 모여든 백조들을 만났다. 사람들이 먹이라도 줄까 싶어 몰려든 모양이었다. 딸아이가 연못가의 풀을 뜯어 던져주었더니 진짜로 먹는지 시늉만 하는 것인지 주둥이를 대고 좋아했다.

이윽고 배가 도착해 신을 벗고 빨간 헝겊이 깔린 바닥에 18명이 촘촘히 끼어 앉았다. ‘배가 전복되기라도 하면 어쩌나!’하고 걱정하고 있는 사이에 배는 이미 연못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었다. 연못 위에서 바라보는 경치가 또 색달랐다.

▲ 반대편에서 출발한 배가 마지막 손님을 태우기 위해 들어오고 있다. 사진기술이 부족한 탓에 마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한 장면이 연상된다.
ⓒ 장영미
‘연못에 배를 띄우고 달빛 아래 잔을 기울이며 풀벌레 소리를 듣는 기분은 어땠을까’를 상상하고 있는데, 겐큐엔에 대해 설명하는 노젓는 이의 말소리가 아무래도 귀에 거슬렸다. 풀벌레 소리 듣기 모임인 만큼 잠자코 있어 주는 것이 오히려 도움이 될 듯했다.

겐큐엔의 연못은 비와코 주변의 명승지 8곳을 일컫는 ‘오우미핫케이(近江八景)’를 본떠 표현하고 있다는데, 또한 오우미핫케이는 중국의 동정호(洞庭湖) 부근의 소상팔경(瀟湘八景)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니, 결국 이 연못은 점차 축소된 모방의 모방인 셈이다.

폐관시간이 거의 다 되어서야 겐큐엔의 문을 나섰다. 사람들로 북적이던 정원 안 보다 오히려 인적이 드문 바깥이 풀벌레 소리를 감상하기엔 더 좋았다. 귀뚜라미, 베짱이, 방울벌레 등 도대체 몇마리나 되는 녀석들이 노래를 하고 있는지, 그 일대가 떠나갈 것만 같았다.

일본에서 5년 째 살고 있지만 여전히 난 이방인이고, 이방인의 시각으로 ‘‘일본다움, 일본스러움’이란 어떤 것일까?’를 궁금히 살피고 있다. 동시에 타국에 사는 한국인으로서 나도 모르게 ‘‘한국다움, 한국스러움’이란 어떤 것인가?’란 의문에도 비슷한 무게를 두고 살피게 된다.

‘겐큐엔의 풀벌레 소리 듣기 모임’엔 분명 일본스런 풍류가 있었다. ‘일본고유의 풍류’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일본화된 풍류’ ‘일본식 풍류’정도로는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남의 것을 제 것처럼 만드는 묘한 재주가 있는 나라 일본, ‘라면’과 ‘돈가스’를 일본 음식으로 만들어 세계에 퍼뜨린 것처럼 ‘풍류’도 일본식으로 정착시켜 즐기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세계가 가까워져 문화마저도 혼합되어가는 요즘, 굳이 ‘한국식’ ‘일본식’을 따지는 것 자체가 무의미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금을 그어서라도 내 것이라 우기며 악착같이 지켜야하는 것은 땅뿐만 아니라 문화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내 것이 없어지면 세계를 향해 떳떳할 수가 없다. 땅으로만 나라가 성립되고 유지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늘도 타국의 한국인으로서 한국식, 한국의 것, 한국다움에 대해 생각해 본다. 그리고 일본에 사는 이방인으로서 ‘일본식, 일본의 것, 일본다움은 어떤 것일까?’가만히 들여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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