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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세한 전 국립국악원장 이성천 교수
별세한 전 국립국악원장 이성천 교수 ⓒ 국립국악원
국악 창작의 불모지에서 출발해서 오늘날까지 300여 편의 작품을 발표하여 창작의 영역을 넓힌,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이며 작곡가인 이성천 교수가 지병으로 26일 오전 6시 여의도 성모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67세인 고인은 성신여대 작곡과를 거쳐 서울대 국악과 교수로 정년퇴임하였으며, 국립국악원장, 서울대 음대학장, 한국국악교육학회장을 역임하고, 대한민국 예술원회원, 문화재위원,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를 지냈다.

작곡가 이성천은 어떤 모습으로 비춰지고 있을까?

그는 과거 한국음악을 지배해 왔던 계면조와 한(恨)의 정서를 뒤로 하고, 기쁨과 즐거움의 음악을 만들고자 했다. 중용(中庸)의 미덕(美德)을 실천하여 그를 통해 많은 후학과 제자들에게 사표(師表)가 되었으며, 삶의 덕목이 되었다.

서울대 국악과 교수 이재숙은 “새로운 변경(邊境)을 끝없이 모색하는 작곡가”라고 말하며, 국악창작의 불모지에서 출발해서 오늘날까지 발표한 작품은 '국악연주회의 표준 레퍼토리'라고 얘기한다.

또 백대웅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원장은 “그의 작품은 20세기 후반 창작음악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강조한다.

전인평 중앙대학교 국악대학장은 그를 '조용히, 그리고 야단스럽지 않게, 하루하루를 뚜벅뚜벅 걸어가는 선비 작곡가'라고 이름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그의 삶과 예술이 여러 면에서 대나무와 많이 닮아 있다고 말한다. 늘 성실히 무엇인가에 몰두하지만, 사욕(私慾)을 품고 있지 않기 때문에 대나무가 속을 채우지 않는 모습과 닮았다는 것이다.

국악평론가 윤중강씨는 그의 창작세계를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첫째는 조용히 침묵하고, 미소 지으며, 즐기는 듯한 낭만주의적 경향이다. ‘숲속의 이야기(1967-1977)’, ‘앵두가 빨갛게 물들 때(2000)’ 등에서 이야기 된다.

둘째는 대표작을 ‘나의 조국 3부작(1981, 1983, 1985)’, ‘훈민정음(1986)’으로 보듯 ‘국민주의적 경향’이 나타난다.

이어서 세 번째는 ‘선비음악적’ 경향이 보인다. ‘청성곡 주제에 의한 변주곡(1962)’ 등 이른바 정악적 어법이 바탕에 깔린 작품 등이 바로 그것이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는 해학적인 경향이다. 그는 과거 한국음악을 지배해 왔던 계면조와 한(恨)의 정서보다는 기쁨과 즐거움의 음악을 만들고자 한다. ‘쥐구멍에 볕들었어도(1990)’, ‘미꾸라지 논두렁에 빠지다(1993)’ 등을 꼽을 수 있다.

고인은 1960년대부터 국악기와 전통음악에 바탕을 둔 독주곡과 실내악곡 등을 발표하였으며, 작곡가 중 가장 많은 작품을 발표한 작곡가로서 국악의 현대화에 공헌한 작곡가로 기억된다.

주요 작품으로 1962년 가야금 창작곡의 효시인 <가야금 독주곡 제1번>과 가야금 모음곡 <숲속의 이야기>, <합주곡 5번-타령에 의한 전주곡>, 무용극 <호동왕자>, 가곡 <사슴은 노래한다> 등과 5권의 작곡집이 있다.

또 10개의 음반을 냈으며, 한국음악과 관련된 미학적, 철학적 관심을 문화적인 접근을 통해 해석한 <한국 한국인 한국음악> 등의 저서가 있다. KBS 국악대상 작곡상(1985), 세종문화상(1996)을 받았고, 보관문화훈장(2001)을 서훈하였다.

유족으로는 부인 최영숙 여사와 1남 3녀가 있으며, 빈소는 강남성모병원 장례식장 22호실이고, 발인은 29일 오전 9시, 장지는 경기 파주 통일동산이다. 문의전화(02-597-26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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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으로 우리문화를 쉽고 재미있게 알리는 글쓰기와 강연을 한다. 전 참교육학부모회 서울동북부지회장, 한겨레신문독자주주모임 서울공동대표, 서울동대문중랑시민회의 공동대표를 지냈다. 전통한복을 올바로 계승한 소량, 고품격의 생활한복을 생산판매하는 '솔아솔아푸르른솔아'의 대표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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