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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12일 강원도 원주 유세 도중 새끼 돼지를 안은채 웃고 있는 당시 노무현 대선 후보 모습. 이후 노 대통령은 시종일관 '탈권위' 행보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12월 12일 강원도 원주 유세 도중 새끼 돼지를 안은채 웃고 있는 당시 노무현 대선 후보 모습. 이후 노 대통령은 시종일관 '탈권위' 행보를 보이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노무현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가 집권후 최초로 10%대로 떨어졌다. <내일신문>이 창간 10주년을 맞아 한길리서치연구소에 의뢰한 여론조사결과에 따르면 노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는 '5점 척도'에서 16.5%를 기록했다.

현직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가 집권 1년도 안되어 이렇게 낮은 수치를 기록한 것은 어쩌면 전무후무(前無後無)한 일이다. 4년 이상의 임기를 남겨둔 채 이미 '레임 덕'이 시작되었다고 해도 지나침이 없다. 집권 1년도 안되어 '레임 덕'에 걸린 대통령 또한 그 전례를 찾기 어려운 불행한 일이다. 물론 그 '불행'은 노 대통령이 자초한 것이다.

집권 첫해 지지도 10%대는 전무후무한 불멸(?)의 기록

헌법에서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는 국가에서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가 10%로 바닥을 기고 있는 것은 분명히 비정상적인 일이다. 그것은 노 대통령 개인에게나 그런 대통령을 뽑은 국민에게나 다 불행한 일이다. 그래서인지 같은 여론조사에서 지난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에게 투표했다고 밝힌 응답자의 40% 가량이 노 대통령을 찍은 것을 후회한다고 답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의 지지도 급락은 사실 어느 정도 예고된 '창조적 파괴'의 결과이다. 그리고 그것은 노 대통령 개인에게는 불행한 일이지만, 그의 뒤를 이어 직무를 수행할 대통령들과 국민에게는 어쩌면 '다행'한 일이다.

이와 관련해 대통령의 지지도보다 더 관심을 끄는 것은 국민들의 대통령의 리더십에 대한 만족도와 영향력 있는 집단에 대한 반응이다. 같은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65.1%는 노 대통령의 리더십에 대해 '불만'인 것으로 나타났다. 노 대통령에 대한 '바닥 지지도'는 상당 부분 리더십에 대한 불만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지난 9월 전경련 회장단 회의에서 "대통령이 박정희 전 대통령처럼 강력한 추진력을 보여줘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자, 노 대통령은 이에 대해 "권력으로 억압하는 리더십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간접적으로 화답한 바 있다.

이에 대한 국민의 반응은 이중적이다. 같은 조사에서 전경련의 주장에 공감하는 사람은 49.9%였으며 노 대통령의 주장에 공감한 사람은 45.3%였다.

그러나 '우리나라 대통령이 어떤 지도력을 발휘해야 하느냐'는 질문에는 '반대의견이 많아도 자기 소신껏 밀고 가는 지도력'(41.1%)을 꼽은 응답자가 가장 많았고, 그 다음은 '시간이 걸려도 반대의견을 수용해 통합하는 지도력'(35.9%) '반대의견을 억누르더라도 강력하게 추진하는 지도력'(20.9%) 순으로 나타났다.

노무현 대통령 등장으로 국민의 '탈권위' 현상 뚜렷하게 나타나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영향력 있는 집단을 꼽는 같은 조사에 따르면 '탈권위'의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국민들은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데 가장 영향력 있는 집단으로 '정당 및 국회'(32.0%)를 1순위로 꼽았으며, 2순위로 신문방송 등 언론(24.9%), 그리고 3순위로 대통령과 청와대(19.0%)를 꼽았다. 그리고 '노동 및 재야 시민운동'(12.8%)과 종교계(3.2%)가 그 뒤를 이었다.

이른바 '영향력 조사'로는 <시사저널>의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라는 창간기념 여론조사가 손꼽힌다. 시사저널은 지난 89년 10월 19일 창간 때부터 Who runs America?라는 미국식 여론조사 개념을 원용해, 해마다 창간 기념일에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라는 주제로 전문가집단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해왔다.

지난해 10월로 열세 번째인 이 여론조사에서 '영향력 1등'은 거의 늘 현직 대통령이 차지했다. 서슬퍼런 집권 초기에는 말할 것도 없고, 1997년 한보 비리와 아들 김현철씨의 구속, 그리고 IMF 금융위기 등으로 레임 덕 상태였던 김영삼 대통령도 영향력 1위를 한번도 놓치지 않았다.

또 지난해 초부터 두 아들이 사법처리 되고 두 번이나 총리 인준이 부결되는 등 무기력한 '식물 대통령'으로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도 심한 레임 덕에 빠져 있던 김대중 대통령조차도 5년 내내 '영향력 1위'를 유지했었다.

다만 노태우 대통령만 1992년 집권 말기에 1등을 못했는데, 이는 당시 노태우 대통령이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집권당을 탈당한 상태에서 차기 집권이 유력한 강력한 여당 후보(김영삼 신한국당 후보)가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시사저널은 '개인'이 아닌 '집단'(세력)의 영향력을 설문할 때는 "대통령을 제외하고 가장 영향력 있는 집단 혹은 세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라고 묻고 있다. 대통령제 국가에서 1위가 뻔한데 같은 조사를 되풀이하는 것은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지난해의 경우 대통령을 제외한 영향력 있는 집단(세력) 10위권은 △한나라당(36.0%) △정치권(31.1%) △민주당(23.6%) △재벌(20.2%) △언론(14.2%) △시민단체(14.0%) △전경련(5.6%) △국민(5.0%) △종교계(4.6%) △삼성(3.9%) 등이었다. 여전히 정치권력(한나라당, 정치권, 민주당)의 독주 하에 경제권력(재벌, 전경련, 삼성)이 뒤따르고 있는 형국이다.

대통령과 청와대의 영향력 감소는 탈권위의 긍정적 현상

그런 점에서 부동의 1위였던 '대통령과 청와대'가 올해 영향력 면에서 3위로 밀려난 것은 매우 의미 있는 변화이다. 집권 말기도 아닌 집권 초기에 현직 대통령이 영향력 조사에서 정치권과 언론보다 영향력이 뒤진 것으로 나타난 것은 처음이다.

대통령과 청와대의 영향력 감소는 노 대통령 자신의 리더십 부재를 반영한 측면과 함께 과거의 '제왕적 대통령제'와 권위주의의 청산을 솔선수범하고 있는 노 대통령의 노력이 받아들여진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대통령의 지지도와 영향력 감소는 노 대통령 개인에게는 불행한 일이지만, 그의 뒤를 이어 직무를 수행할 대통령들과 국민에게는 '다행'한 일인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의 탈권위'로 대표되는 이번 영향력 조사 결과는 명백한 '한계'를 보이고 있다. 제왕적 대통령제 하에서 누렸던 대통령과 청와대의 영향력이 한나라당이 주도하는 정치권과 국회로 이전되었을 뿐이지, 공식적 정치집단의 영향력은 여전히 막강하기 때문이다.

권위주의 정치의 종결과 영향력의 분산 및 균형화를 위해서는 공식적 집단의 영향력이 지금보다 감소하고 비공식적, 자발적 집단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강해져야 한다. 공식적 정치집단에 지나치게 권력이 집중되어 있는 현실에서는 국민주권의 원리를 실현하려는 민주정치의 이념이 작동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재의 상황은 대통령의 탈권위로 인한 영향력 감소가 정치권력의 영향력의 감소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고, 그만큼 정당 및 국회의 영향력이 커진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정당과 국회 등 공식적 정치집단의 영향력은 여전히 건재한 반면에 노동 및 재야·시민 운동단체·종교계 등 비공식적, 자발적 집단의 영향력은 여전히 약한 형편이다.

인정할 것은 인정하자면, 대통령의 영향력이 3위로 '전락'한 것은 노 대통령의 공(功)이다. 그러나 현재의 영향력 분포 구도대로라면 기존의 '제도적 가치'를 버린 노 대통령은 '탈권위'라는 '죽'을 쒀서 '뭐'에게 준 꼴이다.

이제 그 '도둑맞은 죽'을 되찾아오는 것은 국민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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