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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삼둘 가옥 전경
허삼둘 가옥 전경 ⓒ 함양군청 홈페이지
부동산 뿐 아니라 문화재까지 투기 대상이 되고 있다. 부동산을 포함한 국가지정문화재의 소유권이 그 후손들의 경제적 사정변동으로 강제경매로 넘어가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해 문제가 되고 있다.

특히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된 중요민속자료인 가옥(古家)에서 이런 일이 발생하고 있다. 재산권을 물려받은 후손들이 경제적 활동의 한 방법으로 자금 확보를 위해 금융권 담보로 이용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

실제로 낙찰을 받은 쪽에서는 문화재에 대한 현상변경이나 관리에 법률적인 제재를 받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경매에 뛰어든 것은 다른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경매낙찰(경락) 후 낙찰자들은 해당 자치단체에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해 공공예산으로 재구입 해 줄 것을 요청하는 의견서(진정서)를 제출하는 등, 문화재를 부동산 투기로 활용하려는 묘한 행위가 벌어지고 있다.

최근의 사례로 경남 함양군(군수 천사령) 안의면 금천리 윤씨 고가 (우리에게는 '허삼둘' 가옥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를 들 수 있다. 이 가옥은 당시 진양 갑부 허씨 문중의 허삼둘이 토호 윤대홍에게 시집와 지은 집으로 특히 안채의 구성에서는 특출함을 보인다.

당시의 시대상에서 과감히 탈피하여 여성 중심의 공간배치와 부엌으로 출입하는 통로인 앞 공간을 열어놓고, 입식부엌과 유사하게 흙으로 높이를 높여 놨다는 점(토상화: 土床化)한 것이 특이하며 학술적인 자료로도 중요하다.

안채는 'ㄱ'자 형을 띠고 있다. 특히 보통의 'ㄱ'자 형이 아니라 꺾인 부분을 귀접이한 형식으로, 구성은 남측엔 정면 3칸, 동측은 정면 4칸으로 되어있다.

부엌에 들어서면 거의 오방형의 넓이인데 꺾인 부분이 모서리가 죽어 일그러져 있고, 중간에 기둥 둘 만이 서 있어 넓어 보인다. 사랑채는 평면이 'ㄱ자형'인데 정면 7칸으로 구성되었으며, 동향으로 그 남단 칸은 방이다. 앞퇴가 있는데 누각을 세우듯 높이 설치하였고 난간을 만들었다.

그 외에 안채, 사랑채, 바깥 행랑채, 안행랑채, 대문간채, 곡간채가 더 있어 일곽을 이루고 있다. 1918년에 지어진 이 가옥은 문화재적 가치가 높아 지난 1984년 국가지정문화재 중요민속자료 207호로 지정됐다.

허삼둘 가옥의 부지 906여 평 (2992㎡)중, 535여 평(1766㎡)과 건축물 5개 동은 허씨의 큰아들 윤모씨가 지분 5분의4를, 둘째아들이 5분의1을 각각 소유하고 있었으며, 함양군이 나머지 371여 평(1226㎡)을 관리하고 있었다.

함양군은 눈 뜨고 당했나?

최근 큰아들 윤씨의 사업이 부도가 나면서 2002년 6월 함양 축협이 건물지분 5분의4에 대해 법원 감정가 6500만 원에 강제 경매를 신청했으며, 한 차례 유찰된 후 2002년 10월 16일 대전에 있는 박모(여·대전거주-부동산 중개업)씨에게 낙찰됐다. 박씨는 이후 나머지 건물지분(5분의1)과 대지 535여 평(1766㎡)을 추가로 매입했다.

기자가 확인해본 결과 낙찰자인 대전의 부동산 중개인 박씨는 함양군청 행정과 직원의 부인인 것으로 밝혀졌으며, 함양군이 뒤늦게 문화재 보존 차원에서 매입하려 하자 박씨는 가옥전체를 9억 원에 팔겠다고 나섰다.

허삼둘 가옥의 낙찰자 박씨의 남편인 함양군 행정과 직원 K모씨는 "9억 원에 팔겠다는 것은 홧김에 그런 것"이라면서, "허삼둘 가옥에 거주하기 위해서 이미 살던 집을 팔고, 현상 변경을 위한 진정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이 직원은 "허삼둘 가옥을 변경해서 기름보일러를 들여놓아 거기에 살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 직원은 투기 목적으로 매입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그것은 절대 아니다"면서 문화재청이 가옥 변경을 해 주지 않으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물음에 "그러면 구청에서 구입하면 되지 않느냐"고 답했다.

함양군은 지난 97년부터 지난해까지 3억 원, 올해 7000여만 원의 예산을 투입해 가옥과 담장보수까지 마쳤다. 결과적으로 군 예산으로 사유지를 보수해 매입자 박씨의 재산가치만 높인 꼴이 됐다. 문화재의 부동산 투기를 방조한 것이다.

문화재 수리 과정에도 매입자 박씨가 문화재가 훼손되고 있다며 문화재 보수를 위한 진정서를 함양군에 접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함양군 자치문화과 관계자는 당시 1차 유찰 후 경매 가격이 떨어질 것으로 판단, 2차 유찰시에 건물을 매입한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박씨가 경매 마감시간 직전에 4300만 원에 응찰해 낙찰 받았다고 해명했다.

함양군 자치문화과의 한 관계자는 "매입하기 위해서 예산을 확보하는 등 노력을 기울였다"면서, "가난한 구청이기 때문에 매입가격이 떨어질 때까지 기다렸다"고 설명했다.

이 지역의 한 향토사학자는 "함양군이 경매로 넘어간 상태에서 공공 예산을 들여 보수공사를 한 것과 현직 함양군 직원 부인이 국가문화재인 허삼둘 가옥을 낙찰받아 오히려 거액을 요구하며, 투기꾼 행태를 보인 것은 납득하기 힘든 일"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갈수록 빈번해질 문화재의 투기대상화를 막아낼 근본적인 대안으로 전문가들은 문화재는 담보의 대상물로부터 제외하는 법률이 마련돼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또한 국가지정문화재가 강제경매로 넘어가게 될 때, 해당 법원은 이 사실을 자치단체에 의무적으로 통보하는 조항을 신설하고, 문화재와 같은 공공성이 강한 물건들에 대해 국가를 우선 매수 순위에 지정토록 제도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국가지정 문화재가 부동산 투기꾼들의 손으로 넘어가도 별달리 손을 쓸 수 있는 방법이 없게 되기 때문이다. 문화재 전문가들은 문화재 관련법 전반에 걸쳐 법령 재정비와 보완이 시급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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