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직원들에 대한 회사 간부의 '인권 유린'으로 촉발된 <스포츠조선>의 노사 갈등이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다.
전국언론노동조합(위원장 신학림·이하 언론노조), 전국언론노조 스포츠조선 지부와 민주노총은 지난 6일 스포츠조선을 상대로 항의 농성을 시작한 지 8일만인 13일부터 광화문 조선일보 사옥 앞으로 농성장을 옮겼다. 스포츠조선 사장 임명 권한을 갖고 있는 조선일보사에 직접 노조탄압 중지와 성희롱 피해 직원들에 대한 공개사과 등을 요구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노조측에 따르면 회사측의 '노조 와해 시도와 탄압'은 농성투쟁을 진행하는 중에도 끊이지 않고 있다고 한다. 스포츠조선 광고국 직원 50여 명은 지난 9일 오전 스포츠조선 목동 사옥 1층에 마련된 농성장에 난입, 플래카드를 떼어내고 시위물품을 파손하는 등 집단 난동을 부렸다. 이 과정에서 신학림 언론노조 위원장이 멱살을 잡히는 등 곤욕을 치렀으며 일부 농성 참가자들은 찰과상을 입기도 했다.
| | | 언론노조-스포츠조선 간부 충돌 | | | | 지난 13일 오후 2시 50분께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언론노조 소속 조합원과 스포츠조선 간부들 사이에 충돌사태가 발생했다.
20여의 언론노조 조합원은 이날 오후 2시 30분부터 신문협회 41주년 기념식이 열린 프레스센터의 1층과 20층에서 각각 '신문협회는 성희롱 방치하는 스포츠조선 제명하라', '스포츠조선 하원 노조탄압 중단하라', '조선일보는 신문시장유린, 스포츠조선은 성희롱만행' 등의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이때 김일현 스포츠조선 제작부장과 신현태 총무부 노무담당 차장을 포함한 예닐곱 명의 스포츠조선 간부들이 신문협회 기념식장으로 가기 위해 로비에 들어섰다.
그중 한 관계자가 노조의 시위장면을 캠코더로 계속 촬영하자 언론노조측에서 이를 제지하면서 고성과 몸싸움이 벌어졌다. 10여분간 진행된 몸싸움은 이후 프레스센터 20층으로 옮겨 대치상황이 재연됐으나 언론노조 조합원들이 조선일보 앞 시위를 위해 자리를 뜨면서 35분 여만에 일단락됐다. | | | | |
언론노조는 이를 관할 경찰서에 신고, 폭력행위에 가담한 이들을 찾아줄 것을 의뢰하는 한편 회사측에 폭력사태에 대한 사과와 훼손된 시위물품의 원상회복을 요구했다.
언론노조는 "이는 스포츠조선 하원 사장이 사태를 해결할 의지와 능력이 없다는 것을 자임한 꼴”이라며 “하 사장과 더 이상 대화를 나눌 여지가 남아있지 않다"며 본사인 조선일보사의 책임을 촉구하고 나섰다. 이에 따라 스포츠조선 노사갈등이 언론노조와 조선일보간의 대립으로 확산될 조짐이다.
최근 잇따라 발생한 회사측의 '노조·인권탄압'은 지난해부터 본격화된 '노조말살' 기도의 일환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게 언론노조와 스포츠조선 지부의 해석이다.
스포츠조선 지부는 지난해 8월 조선일보 출판국장 출신인 하 사장이 부임한 뒤로 노사갈등이 계속 되면서 당시 150여명에 달하던 조합원 중 지금까지 50여명이 탈퇴했다고 밝혔다. 또 하 사장이 지난해 9월 윤전·발송부문 구조조정안을 내놓으면서 줄곧 노조에 적대감을 보인 것 역시 이번 사태의 원인이 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지난해 11월 지부위원장 선출을 앞두고 회사측이 선거에 개입한 것을 비롯, 노조의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윤전부문 조합원을 광고국으로 전환 배치한 사실, 그리고 올해 1월 정기인사에서 조합원들을 상대로 노조탈퇴를 종용했던 사례 등이 적시됐다.
한편, 여성 조합원들에 대한 인권탄압은 지난 8월 근무·퇴근시간을 조정하는 논의 과정에서 불거졌다. 부서 회의내용을 녹취했으면 좋겠다는 여성 조합원들에게 제작부장, 과장, 차장 등이 사표 운운하며 사과를 종용했다고 밝혀졌기 때문이다.
또 7월 초 제작국장이 술자리에서 임신한 여직원에게 "뱃속부터 (술 마시는) 훈련이 돼 있어야 한다"며 강제로 술을 권한 성희롱 사건도 발생했다. 그러나 이같은 노조의 주장에 대해 회사측은 '억지'라는 반응이다.
방갑철 스포츠조선 총무국장은 "성희롱 문제는 여사원들이 잘못 알고 있다"며 "만약 사실이었다면 사건 발생 뒤 바로 문제를 제기해야지 왜 한달 뒤에 불거졌겠는가"라고 반박했다. 방 국장은 농성장 난입에 대해서도 "광고 사원들이 영업을 위해 돌아다니다가 농성 얘기를 듣고 화가 나서 '왜 언론노조가 와서 이러느냐'고 실랑이를 벌인 것뿐"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광화문 조선일보 사옥 앞으로 농성장이 옮겨진 것과 관련, "언론노조에서 스포츠조선 문제를 사회화시키려고 의도하고 있다"면서 "조선일보가 대주주이긴 하지만 우리와 관계가 없기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해 논의한 바가 없다"고 말했다. 스포츠조선 사태는 스포츠조선 내부의 문제라는 의견이다.
그는 사태해결에 대한 회사측 입장을 묻자 "노조가 국면전환을 위해 이번 사태를 이용하고 있다, 노조에 대응할 가치가 없다고 보기 때문에 별도 방안을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답했다.
특히 술자리 성희롱 사건의 당사자 중 한 사람으로 지목된 김아무개 부장은 "회사 중간간부의 입장에서 직원들의 사기 진작을 위해 회식자리를 마련한 게 전부였다”며 “내 명예와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에 당당하게 대응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김 부장은 사견을 전제로 “회사는 이번 사태와 연관이 없다. 노조가 벌이고 있는 항의농성은 정당하다고 볼 수 없다”며 “근무시간 연장은 다른 부서와의 형평성을 맞추기 위해 오전 9시에서 6시까지로 조정하자는 것이었는데 노조가 뒤에서 사주해 문제가 커졌다”고 말했다.
| | | “스포츠조선, 노조탄압 갈 데까지 갔다” | | | [인터뷰] 스포츠조선 노조 사수투쟁 나선 이영식 위원장 | | | |
| | | ▲ 이영식 전국언론노동조합 스포츠조선 지부 위원장 | ⓒ최한성 | 스포츠조선 노동조합은 지난 99년 2월, 신문창간 9년만에 설립됐다. 스포츠조선은 조선일보를 제외하곤 현재 조선일보 계열사 중 유일하게 노동조합이 있는 곳이다. 스포츠조선은 지난 2000년 산업별 노조인 전국언론노동조합 지부로 전환했다(조선일보 노조는 아직 산별노조로 전환하지 않은 개별기업 노조이다).
이영식 위원장은 창립 당시부터 노조를 맡아온 스포츠조선 노동조합운동의 산 증인이다. 초대위원장으로 출발, 그동안 노조위원장 선거에서 2번의 연임을 거쳐 지금에 이르고 있다.
안팎의 어려움에도 이 위원장이 끝까지 노조를 지켜내고자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무조건적인 노사협력 관계를 지향하는 조선일보에 반성이나 성찰 따위는 없다. 이같은 분위기를 깨고 상식과 양심을 지킬 책임이 노조에 있다"는 말로 답변을 대신했다.
지난 10일 스포츠조선 지부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상식과 양심을 지키려는 노력이 얼마나 힘든가'를 새삼 떠올리게 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당사자간 대화가 우선이라는 원칙 아래 해결에 나서고 있지만 회사측이 노조를 파트너로 전혀 인정하지 않는 게 사태를 꼬이게 하고 있다"며 회사측의 전향적인 자세를 거듭 강조했다.
- 조선일보 사옥 앞으로 농성장을 옮긴 이유는?
"노조는 지난 8월 스포츠조선 사태가 시작된 뒤부터 줄곧 당사자 스스로 문제해결에 나설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회사측은 오히려 피해 여직원들을 계속해서 괴롭혀 왔고, 지난 9일엔 사원들을 동원해 농성장을 침탈하기까지 했다. 스포츠조선사 차원에서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없다는 게 분명해졌다. 그래서 하원 사장을 임명한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에게 직접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다.”
- 스포츠조선 노사대립 사태의 본질은?
"문제는 일부 회사 간부들이 여직원들의 인권을 유린한 데서부터 시작됐다. 그러나 회사는 오히려 이 사건을 노조탄압의 구실로 활용하고 있다. 지난해 연예계 촌지수수 사건이 터졌을 때 노조는 관련자들에 대한 징계를 요구했다. 회사는 노조의 요구를 수용했으나 여름 무렵 이들을 재임용할 움직임을 보였다. 그래서 노조에선 제작거부로 맞섰고, 이때 회사 간부들이 교체되면서 노조를 없애야겠다고 판단한 것 같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스포츠조선 사태는 그 연장선상에 있다.”
- 일련의 사태를 회사측의 '노조와해' 공작으로 보고 있는데.
“노조에 대한 탄압은 갈 데까지 갔다. 회사는 지난해 12월 지부 위원장 선거 때 회사측의 입맛에 맞는 후보가 당선될 수 있도록 뒤에서 지원했다. 노조의 동의 없이 윤전부를 없애고 해당 부서 조합원들을 전환 배치했다. 또 조합원을 개별적으로 불러 노조탈퇴와 파업불참 등을 요구하며 압박하기도 했다. 회사측의 부당노동 행위는 교묘한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노조는 일련의 노조와해 공작에 대해 지방노동사무소에 진정서를 냈다. 현재 근로감독관이 일부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한 상태다."
- 사태해결을 위한 노사간 대화는 있었나?
“처음부터 대화하면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하지만 하원 사장은 공식적인 자리에서 ‘이영식과 얘기 못하겠다. 나는 신학림 위원장하고만 얘기하겠다’고 말하는 등 나를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았다. 신학림 위원장은 하 사장의 이런 태도에 비춰 스포츠조선 사태에 있어 노사간 접점은 없다고 말하고 있다.”
- 노조의 요구 사안은?
“우선 성희롱 피해자들에 대한 공식적인 사과가 있어야 한다. 회사측은 노조가 침체에서 벗어나기 위해, 한 마디로 말해 ‘국면전환용’으로 성희롱 사건을 이용하고 있다고 선전한다. 노조를 와해시키기 위해 벌이고 있는 이 같은 치졸한 행태를 당장 중단해야 하며, 그간 자행했던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도 뒤따라야 한다. 구사대에 의한 농성장 침탈과 관련해 신학림 언론노조 위원장 등이 곤욕을 치렀는데 그 부분에 대해서도 충분히 사과해야 할 것이다.”
- 노조탄압에 맞서 싸우는 데 따른 어려움은?
“투쟁을 지속시켜나갈 자체 동력이 없다는 게 가장 큰 어려움이다. 조합원으로서 투철한 사명감을 갖고 있는 사람이 갈수록 적어지고 있다.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는 회사측은 끊임없이 조합원 사이의 갈등을 부추겨 노조를 고립시키려 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자칫 사태가 더 악화될 경우 '노-노' 갈등이 일어날 수도 있다. 만일 그런 상황이 벌어진다면 스포츠조선 노조는 희대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또 조선일보는 법적 하자가 없는 경우 외부의 정서적 공격에 대해선 입장 표명을 하지 않는다. ”
- 스포츠조선을 끝까지 사수하겠다고 천명했다. 왜 그런가?
“조선일보는 사회적으로 불신의 대상이 되고 있다. 노사가 건강한 긴장관계를 유지했다면 이렇게까지 됐겠나? 조선일보 노사는 현재 무조건적인 협력관계를 지향하고 있다. 반성이나 성찰, 철학 따위는 애초에 없다. 이 같은 분위기를 깨고 상식과 양심을 지킬 책임이 노조에 있다. 그래서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끝까지 가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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