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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을 가득 머금고 있는 묵사발과 산정호수 전경
가을을 가득 머금고 있는 묵사발과 산정호수 전경 ⓒ 이종원
송 교수가 남과 북의 경계인이라고 자처했지만, 계절도 여름과 가을과 경계선이 있나보다. 신록과 낙엽이 함께 공존하고 있다. 주인을 기다리는 도토리묵 사발들이 가을바람을 맞고 있다. 가을까지 음미하라고 낙엽까지 얹어 있어 더욱 푸짐하다. 이걸 묵사발이라고 불러야하나.

조용함을 즐긴다면 하동 주차장에 차를 세우는 것이 좋다. 댐을 한가로이 거니는 맛이 일품이다. 다리가 아프면 나무의자에 앉아 한 푹의 그림을 감상해 보라. 산과 호수가 나를 위해 존재하고 있음을 발견할 것이다.

호수를 한바퀴 도는데 1시간 반이 걸린다. 촉촉한 흙을 밟는 것에 고마움을 느낀다. 가끔 낙엽길도 거닐 수 있는 행운도 얻는다. 호수가를 거닐고, 숲속에 들어가고 멋진 다리까지 건너갈 수 있다. 이렇게 호수길은 밋밋하지 않아 좋다. 특히 아침 물안개가 피어날 때가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고 한다. 이때 연인들이 데이트를 하면 성공 확률이 높다고 현지인이 귀띔해 준다. 아마 그는 이 곳에서 데이트하다가 아내를 얻었나보다.

호수를 바라보고 있는 연인
호수를 바라보고 있는 연인 ⓒ 이종원
가을 호수를 바라보면 왠지 시인이 되고싶다. 연인과 의자에 앉아 사랑을 얘기해 보자.혹시 이 사람들… 삼각관계는 아니겠지? '한림각'이란 식당이 호수 위에 둥둥 떠 있다. 물위에서 식사하면 얼마나 기분이 좋을까? 그 옆엔 보트장이 있다. 쾌속보트를 타고 시원스레 물살을 가를 수도 있고, 백조 보트를 타고 노를 저으며 호수 구석구석을 둘러 볼 수 있다.

아이들 시선을 끌어당기는 놀이 동산이 있다. 놀이동산에 빠지게 되면 등산은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

"우리 산에 다녀와서 놀이동산 가자."

산정호수를 서둘러 둘러보고 명성산에 올랐다. 명성산에 오르는 길은 두 가지 코스가 있다. 거리는 짧지만 경사가 급한 자인사코스와 완만한 등룡폭포 코스가 있다. 후자를 강력히 권한다.

등산로 조금 올라가면 비선폭포가 나오고 그 옆엔 운동시설이 가득 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지압길이다. 하산할 때 등산화를 벗고,이 곳을 거닐면 피로가 가실 것이다.

붉은 단풍과 파란 하늘이 잘 어울립니다.
붉은 단풍과 파란 하늘이 잘 어울립니다. ⓒ 이종원
산에 오르면서 여러 번 계곡을 넘나들 것이다. 철다리를 건널 때마다 단풍나무가 손짓한다. 수줍은 새악시의 빨간 볼처럼 고운 빛깔을 보여준다. 파란 하늘과 단풍이 참 잘 어울린다. 한참을 올라가면 등룡폭포가 나온다. 거대한 바위가 폭포를 만들어 낸다. 수량이 많았다면 좋은 비경을 연출했을 텐데, 가뭄이 심한가보다.

조금 더 올라가니 틈틈이 억새가 보여 사진을 찍었다. 하산하는 사람이 지나가면서 외친다.

"여기서 찍으면 필름 낭비예요.올라가면 더 좋은 곳 많아요."

얼마나 좋은 곳이 있길래, 잔뜩 기대를 해본다.

산 전체가 억새밭이다.
산 전체가 억새밭이다. ⓒ 이종원
산에 오른지 1시간 30분이 지났을까?
나무 터널에서 벗어나더니 주위가 환해진다. 그리고 드러난 억새밭과 나의 감탄사가 함께 어우러진다.

"아-"

산 전체가 억세밭이다.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그 장쾌함을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이다. 빨리 마음속에 간직하자.

"별빛이 흐르는 다리를 건너 아름다운 갈대 숲을 지나…."

이 멋진 곳을 거닐었을 때 왜 윤수일의 '아파트' 노래가 생각나는지 모르겠다.

어른키만한 갈대숲
어른키만한 갈대숲 ⓒ 이종원
어른키 만한 억새밭 사이를 거니는 기분이 참 좋다. 정글 숲을 헤쳐 나갈 때 이런 기분이겠지. 왜 여자 마음은 갈대라고 할까? 아마 이렇게 예뻐서 그럴 것이다.

단풍과 갈대는 묘한 조화를 이룬다. 화려함을 쫓는 사람은 단풍 빛에 눈이 멀게 되지만 담백한 갈대 덕분에 잃은 시력을 회복한다. 그래서 단풍과 갈대는 함께 보는 것이 좋으리라.

궁예 약수터
궁예 약수터 ⓒ 이종원
억새밭 중간쯤에 궁예약수터가 자리잡고 있다. 키 큰 억새에 가려 약수터 찾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꼭 이곳의 물을 마셔야 한다. 궁예의 눈물이기 때문이다. 명성산은 궁예가 왕건에게 패하여 이 곳까지 쫒겨와 크게 울었다고 하여 '울음산'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명성산도 울 鳴(명), 소리 聲(성) 을 쓰지 않았던가?

여느 약수처럼 물이 콸콸 쏟아지는 것이 아니라 찔끔찔끔 흘러 나온다. 망국의 한을 달래주기 위한 눈물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심한 가뭄이라도 그 눈물은 마른 적이 없다고 한다. 바로 건너편엔 포격부대가 포 쏘는 훈련을 하고 있다. 저 포성소리가 멈춰야 눈물이 멈추려나.

가을빛을 내고 있는 억새밭
가을빛을 내고 있는 억새밭 ⓒ 이종원
약수터를 지나 위쪽을 바라보면 팔각정이 나온다. 갈대밭과 팔각정이 잘 어울린다. 포근한 밍크이불을 덮고 살포시 얼굴만 내민 모습이다. 그제서야 가을 냄새를 물씬 맡을 수 있다.

팔각정에 올랐다. 어느 방향에 서 있든지 시원한 눈 맛을 보장해준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우리 땅은 참 아름답다. 석양이 길게 드리워진 그늘이 참 좋다. 하산은 자인사 쪽으로 했다. 거리는 짧지만 무척 급경사다. 돌계단이 부실하여 낙석도 우려된다. 무릎이 저려온다. 되도록이면 등룡폭포 길로 올라왔다가 다시 내려가는 것이 훨씬 좋을 것이다.

산정호수 전경
산정호수 전경 ⓒ 이종원
그래도 자인사 코스가 좋은 점이 딱 하나 있다. 산정호수를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저 곳도 고지대일 텐데 호수가 있다니 참 신기하다. 그래서 '山井湖水'(산정호수)인가 보다. 저 멀리 한화콘도가 조그맣게 보인다.

자인사
자인사 ⓒ 이종원
자인사다. 도무지 우리나라 절잡 같은 기분이 들지 않는다. 중국 소림사처럼 보인다고 할까. 미륵상이라고 하는데. 배부른 달마대사처럼 보인다. 자인사는 궁예가 자주 기도를 드린 곳이다. 궁예가 죽으면서 쇠퇴한데다 거란침략, 몽고침략, 6.25까지 전쟁이 일어 날 때면 늘 폐허가 되어야 하는 수난을 겪었다. 그 아픈 곳을 화려하게 꾸미고 싶은 마음씀씀이를 이해한다. 납골묘가 아파트처럼 길게 놓여 있어 숙연한 느낌이 든다. 자인사에서 가장 멋진 곳이 있다면 나는 오솔길을 추천한다. 소나무 향이 코 끝을 벗어날 때 나는 산행을 마치게 되었다.명성산 억새밭은 11월 중순까지 볼 수 있다고 한다. 내년을 위해 억새를 태운다고 한다.

그 힘든 산행을 했으니 갈증나고 허기진다. 근처에는 산채비빕밥을 하는 식당이 참 많다. 산에서 직접 캐온 산채로 밥상을 꾸민다. 이동막걸리 역시 포천에서 마셔야 제 맛이 난다. 걸쭉한 막걸리 한사발로 피로를 풀어보자.

피곤에 지친 아이들
피곤에 지친 아이들 ⓒ 이종원
맛있는 밥상을 앞에 두고 성수는 골아 떨어졌다. 얼마나 추위에 떨었으면 볼이 빨갛다. 그래도 추위와 배고픔을 이기고 산행을 마친 우리 아이들이 참 대견스럽다.

산정호수와 명성산 교통정보

* 대중교통

서울 -의정부까지 전철을 탄다.
의정부-운천 신철원행 시외버스 이용 (1시간 20분 소요)
운천-산정호수 시외버스 이용 (20분 소요)

* 자가용

1) 서울 -동부간선도로- 의정부-소흘-포천-만세교-43번 국도-새장터 삼거리(우회전)-문암 삼거리(우회전)- 산정호수 주차장 ...2시간 30분 소요
2) 서울-올림픽대로- 강동대교-구리-퇴계원-진접-내촌-일동-이동-산정호수(2시간 30분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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