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아우성 센터 구성애 소장의 양성평등 특강 '네 잘못이 아니야'가 27일 오후 4시 서강대학교에서 열렸다. 구 소장은 성문화의 흐름이 어떻게 바뀔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다는 등의 근황을 전하며 강연을 시작했다. 이번 강연에서 구 소장은 어린이 성교육에서부터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스와핑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를 넘나들며 성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거침없이 피력했다.

성의 사각지대, 미성년자들의 성생활

ⓒ 송민성
구 소장은 "요즘의 신세대들은 성교육을 필요로 하지않는 세대"라고 말한다. 일찍 조숙해진데다 이미 성에 대해 알만큼 아는 신세대들은 인터넷을 통해 궁금증을 풀고 '문제'가 생기면 자기네들끼리 해결한다. 그러다보니 왜곡된 성지식을 가지고 있거나 자신의 몸을 쉽게 생각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똑같이 낙태를 해도 10대에 낙태를 하면 불임이 될 확률이 훨씬 높습니다. 그만큼 몸이 많이 상한다는 거죠. 낙태를 하고나서도 산후조리를 하듯 몸을 보살펴야 해요. 그러니까 더더욱 부모님과 의논해야 할텐데 아마 내게 상담하는 학생들 중 1%도 말씀 안드릴 겁니다."

구 소장은 "현실에서 드라마 <노란 손수건>은 없다"고 단언한다. 결혼하지 않은 여자가 아이를 낳는 것도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런 여자를 감싸주는 가족도 드물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이 한해 200만 명의 태아가 낙태되는 현실을 낳았다.

"프랑스에서는요, 미혼모라도 축복 속에서 아이를 낳습니다. 산모가 학생이면 아이 업고 학교가고 수업받는 동안 탁아소에 맡길 수 있습니다. 공부도 하고 학교도 다니고 아이도 돌보죠. 그러나 우리는 어떻습니까? 누가 그들을 받아줍니까?"

그는 임신이 아닌데도 의사로부터 낙태 권유를 받은 한 고등학생의 사례를 소개했다.
"돈 몇십만 원 벌자고 아무 것도 모르는 학생들에게 거짓말 하는 겁니다. 학생들이야 의사가 임신이라고 하는데 믿지않고 배깁니까? 그렇다고 부모한테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고."

성폭력, 네 잘못이 아니야

구 소장은 열 살 때 친오빠처럼 따르던 옆집 오빠에게 성폭력을 당했다.
"부모님이 교회에 가셔서 집에는 나 혼자밖에 없었어요. 그때 오빠가 들어와서는 재밌는 걸 가르쳐준다 그러더라구. 평소에 장난도 많이 치고 놀던 터라 좋다고 했지. 그런데 속옷을 벗기려고 하는 거야. 그 어린 나이에도 속옷을 함부로 벗으면 안되는건데 싶어서 싫다고 하는데도 막무가내야."

그리고 그는 그때의 성폭력을 몇 개의 이미지로 기억한다. 밑이 함부로 헤집어지는 고통, 오빠의 헉헉거리는 숨소리, 소리를 지르자 얼굴을 누르던 커다란 손, 그리고 찝찝한 무언가….

오빠가 오늘 일을 절대로 말하지 말라며 돈을 쥐어주고 나간 후에야 어머니가 돌아왔다.

"뭔가 이상했겠지, 하나씩 하나씩 물어보는 거야. 나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른 채 대답을 했고. 어머니도 떨려서 나를 똑바로 보질 못하시더라구."

어린 그는 오로지 부모님께 혼나지 않을까 두렵기만 했다.
"그때 어머니가 안아주시면서 한마디 하셨어. 성애야, 네 잘못이 아니야."

그 이후에도 그가 '순결을 잃었다'는 따위의 이유없는 죄책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던 것도 그 한마디 덕분이었다. 그러나 고통은 쉽사리 가시지 않았다.

"성폭행을 당하면 반드시 씻지않고 병원으로 가야합니다. 정액검사는 물론이고 찰과상 여부까지 다 기록해두어야 해요."
그때 병원에 가지않은 탓에 그는 성병에 감염되었고 생리 불순에 시달려야 했다. 급기야 29살 되던 해에 자궁적출 수술을 받았다. 구 소장은 분노와 복수심에 사로잡혔다. 그 오빠를 죽이고 싶은 생각에 뒷조사까지 했다.

"당시 김부남씨 사건(1991년 김부남씨가 21년전 자신을 강간한 이웃집 아저씨를 살해한 사건)을 보면서 전율을 했죠. 아, 내가 계획했던 걸 저 여자는 실행했구나 싶었으니까."

"함부로 용서하라는 말은 하지마"

그런 그를 구한 것은 아버지와 자신의 아들이었다. 자신을 아끼고 믿어주는 아버지와 또 하나의 가해자가 될 수도 있는 자신의 아들을 보면서 그는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때부터 소년원을 돌기 시작했어요. 9살짜리를 강간한 소년수를 붙잡고 울면서 이야기했어요, 성폭력은 나쁜 거라고. 그것이 아우성의 시작이기도 했구요."

그리고 그는 얼마전 그때의 경험을 책으로 써냈다.
"4개월동안 고민했어요. 남편도 막연하게 내가 성폭력을 당했다는 것만 알지 구체적으로는 잘 모르거든. 머리로는 나를 이해하더래도 온 몸으로 나를 안을 수 있을까 그것부터 걱정되더라구."

결국 그는 쓰는 쪽을 택했다. 자신처럼 고통받는 여성들이 너무 많았으며, 그 피해자들이 제대로 치유과정을 거치지 못하면 또 다른 가해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성폭력의 후유증이 사람을 얼마나 피폐하게 만드는지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기에 더더욱 써야 했다.

"난 아직도 수영을 못해. 숨이 가빠오면 내 입을 막던 오빠의 손이 떠오르거든. 마음으로는 잊었다고 해도 세포가, 내 몸이 기억하고 있는걸."

구 소장이 다른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기까지 꼬박 38년이 걸렸다. 남편이 감옥에 붙들려가 고문을 당하고 옥바라지를 하던 시절도 웃으며 회고할 수 있지만 그 경험만큼은 아직도 그렇지 못하단다.

"물론 마지막은 용서로 끝나야겠지. 하지만 그건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야. 나도 그런 시간들을 다 겪고나서야 아우성 센터의 구성애가 될 수 있었던 거구. 그렇게 하는데 38년이나 걸렸어. 그러니까 피해자들에게 쉽게 용서하란 말은 하지마."

생명, 사랑, 쾌락이 조화된 성을 위하여

구 소장은 성의 3요소로 생명, 사랑, 쾌락을 꼽는다. 그는 이 세 요소의 지수가 높아진다면 우리 삶도 훨씬 아름다워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우리의 생각부터 바꾸어야 한다. 특히 생명과 사랑의 모델로서만 인식되어 있는 부모의 성을 쾌락의 모델로 상정하는 노력도 중요하다고 덧붙인다.

"성을 단순한 육체적 행위로, 성기중심으로 생각하는 한 우리는 누구나 성폭력의 피해자, 가해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는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연인들을 위한 '아우성 프로포즈', 군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좋은 아빠/신랑되기 프로젝트' 등을 준비하고 있다.

"우리 성 문화의 현실은 어둡습니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 희망을 발견하고 이야기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일까, 특유의 편안한 말투와 웃음으로 4시간여의 강연을 쉼없이 진행한 그의 표정은 그래서 더욱더 밝아보였다.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