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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 산골아이들은 놀이하는 재미로 산다. 지들끼리 어울리다 싸우고, 웃고, 놀면서 하루해를 넘기는 것이다. 가끔 시장에서나 백화점에서 파는 장난감이 필요하기도 하지만 금방 싫증을 내고 만다. 하지만 아이들과 가을들판으로 나가보면 표정은 금새 살아나고 잊었던 놀이를 찾아내고 재미에 푹 빠져서 해질때까지 집에가자고 보채는 아이들은 없다.

가을 들판으로 가서 아이들이 처음 만나는 것은 형형색색의 가을 나뭇잎들이다. 크레파스보다 더 이쁜 색들이 나무에 메달려 있기도 하고 땅에 떨어져서 아이들 손에 쉽게 닿는 곳에 있다.
"선생님 밟아도 되나요? "

빨강, 노랑, 연두, 초록, 갈색. 아이들은 손에 가득 나뭇잎들을 모은다. 열심히 은행잎을 줍던 민준이가 갑자기 "애들아, 소리가 나"라고 말한다. 은행잎을 한주먹 나란히 줍고 흔들어보인다. 모두 흔들면서
"정말이네"라며 신기해 한다. 작은 은행잎 협주를 한다. 나도 열심히 흔들어봤다. 가을에 미처 몰랐던 또 하나의 소리에 아이들이 날 이끌어 줬다.

'세상에 이런 소리도 있었구나!'
'사그락 사그락'

가는 길 중간에 전라도 아줌마 집에 들려 말려 놓은 고추를 들고 흔들어 봤다. 옹기종기 들어 있을 고추 씨앗이 이리저리 흔들리면서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가을의 소리 우리 아이들은 그 고추소리를 '삭삭삭 삭삭삭'이라고 한다.

가을 들녘에 서서 가장 가을 다운 소리는 들깨소리다. 그냥 밟아도 좋고 들깨 가지 하나 꺽어서 귀에 대고 흔들면 소리에 묻혀 들깨 냄새도 따라와 코까지 흔든다.

'슥슥슥 슥슥슥'

아이들은 들깨 더미에서 놀다가 성에 안차는지 벌렁 들어누워 지들끼리 웃고 얘기하고 가을 하늘도 올려다 본다. 할머니께서 곱게 말려놓은 들깨에 우리 아이들 손을 찍어 보고 마음까지 거기 눌러 놓고 앉았는지 가자고 해도 일어날줄 모른다.

가을 소리 중에 가장 강력한 소리는 콩대를 흔들어 볼 일이다. 아이들은 콩을 흔들면서 바로 노래가 나온다.
'달그락 달그락'
"아니요. 난 콩콩콩 콩콩콩 인데요."
유등이의 콩은 그렇게 들린단다.

산 밑에 할머니네 집엔 언제나 이 가을 우리 아이들에게 훌륭한 소리여행지다. 하지만 올해는 도라지씨앗이 안보인다. 도라지 씨앗소리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데…. 우리 아이들은 그 소리를 뭐라고 했을까?

돌아오는 길에 바람에 풀잎들이 부딪쳐서 나는 소리를 들었다. 모두 쪼그리고 앉아 숨을 멈추고. 그렇게 우린 하나가 되었다. 이 가을날.

▲ 단풍잎보다 내가 더 이뻐요.
ⓒ 신영숙


▲ 세상에 크레파스보다 더 이뻐요
ⓒ 신영숙


▲ 은행잎도 모으면....
ⓒ 신영숙


▲ 봄에 새순나던 그 단풍나무가 요술을 부렸어요
ⓒ 신영숙


▲ 은행잎이 사그락사그락
ⓒ 신영숙


▲ 고추를 흔들면 정말 소리가 나요
ⓒ 신영숙


▲ 들깨를 흔들면 사그락사그락
ⓒ 신영숙


▲ 들깨야, 밟아서 미안해!
ⓒ 신영숙


▲ 누리야, 너도 누워봐.
ⓒ 신영숙


▲ 콩을 흔들면 달그락 달그락
ⓒ 신영숙


▲ 들깨에 내 손을 찍어보자.
ⓒ 신영숙


▲ 내손을 들깨가 간지럽혀.
ⓒ 신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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