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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자꾸 옛날이야기를 합니다. 그만큼 옛이야기에는 아련한 서정과 추억이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18년 전 얘기입니다. 그때 전국적으로 민주화에 대한 열기가 고조되고 각 지역마다 데모가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었습니다. 나도 그 틈바구니에 슬며시 끼어 있었습니다.
초여름 어느 날, 친구들과 함께 같은 정선지역 내에 있는 사북읍에 가서 그곳 광부들의 명분 있는 노동쟁의를 지지하며, 몇 장의 성명서를 대신 써주고 선평교회 손인선 전도사네 집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습니다. 긴 초여름 밤, 몇 명의 전도사들은 비분강개(悲憤慷慨)하며 앞으로 전개될 시국의 양상에 대하여 또 우리가 앞으로 할 일에 대하여 열띤 토론이 벌어졌습니다.
밤 10쯤이었습니다. 손 전도사 서재의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렸습니다. 불현듯 불길한 예감이 들었습니다. 아내로부터 걸려온 전화였습니다. 아내는 한참 뜸을 들이며 오늘 있었던 일을 얘기하는 것이었습니다.
“여보! 나, 오늘 뱀에 물렸어! 묵은 논에서 돌미나리 뜯다가 손등이 뜨끔해서 보니까 뱀이잖아!”
처음에는 그 소리를 듣고 숨이 멎는 것 같았습니다. 아내는 시골에서 살면서 뱀과 쥐를 제일 무서워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했어. 지금 괜찮아?”
“수건으로 손목을 묶고 김진해씨가 오토바이를 태워줘서 정선병원에 가서 치료받았어요. 손목이 좀 붓고 손등에 뱀 이빨자국이 남았는데 괜찮은 것 같아!”
나도 모르게 화도 나고 눈물이 났습니다. 친구 전도사들도 함께 걱정을 해주었습니다. 서울서 고생 한번 안 해본 여자를 강원도 첩첩산중 두메에 갖다놓은 것도 미안한데, 한달 5만원 사례비에 반찬 살 돈이 없어 땡볕에 나물을 뜯고 있을 아내를 생각하니 측은지심이 들었습니다. 선평교회 예배당에 들어가 아내를 위해 기도를 하는데 어찌나 눈물이 쏟아지던지….
차편이 없으니 한밤중 달려갈 수도 없었습니다. 밤을 꼬박 새웠습니다. 날이 밝자 첫 버스를 타고 정선으로 가는데 버스가 엄청나게 느리게 가는 것 같았습니다. 나는 정선 터미널에서 내리자 이십 리 길을 내처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정선에서 내가 살던 덕송리까지는 버스가 없었습니다. 숨이 턱턱 막히지만 아내가 걱정되어 달렸습니다.
많은 생각이 흑백영화처럼 지나갔습니다. 아내를 만나게 되었던 일, 아기를 가져서 좋아했다 몸이 약해 유산했던 일, 남편만 믿고 시골에 내려왔는데 발도 온전히 펼 수 없는 작은 집에서 살며 밤마다 쥐 때문에 소동일 피우는 일, 서울 친정에 다녀오고 싶어도 여비가 없어 가지 못했던 일 등….
동네가 거의 먼발치에서 보일 만큼 가까워지자 누군가가 동구 밖에 나와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아내가 동구 밖 느티나무 서낭당 앞까지 나와 환한 얼굴을 하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내는 다행히 독사에게 물린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손목에 뱀 이빨자국이 선명하게 나 있었습니다. 아내의 건강한 모습을 보자 모든 근심이 물러가고 졸음이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지금도 시골에서 살면서 가끔 뱀과 마주칩니다. 뱀이 방으로 들어오기도 하고, 집 근처에 뱀이 출현하기도 합니다. 어느 때는 아내가 밖에서 빨래를 하다가 뱀이 빨래 위를 지나가는 경험을 하기도 했습니다. 나물을 뜯거나 상수리를 줏으러 산에 올라갔다 뱀이 발 위를 지나가서 기절초풍할 뻔했던 적도 있습니다. 시골에서 살다보니 경험하게 되는 일들입니다. 뱀하고 친구하자고 하면 뱀이 덜 무서울 까요? 뱀하고 친하게 지내는 방법을 아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