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서울은 "청계천복원사업"이 한창이다. 지금의 복원사업에는 서양 작업복을 입은 사람들과 포크레인 등 중장비들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 조선 영조 때 했던 청계천 정비사업 때 일꾼들은 어떤 옷을 입었을까?
그것을 상상해볼 수 있는 단초가 들어있는 문헌으로 준천사업(물이 잘 흐르도록 개천 바닥을 깊이 파서 쳐내는 사업)을 기록한 <준천계첩(濬川稽帖)>과 그에 따르는 <수문상친림관역도(水門上親臨觀役圖)>, <영화당친림사선도(暎花堂親臨賜膳圖)>, <모화관친림시재도(慕華館親臨試才圖)>, <연융대사연도(鍊戎臺賜宴圖)>가 있다.
하지만 그 자료들도 한 사람 한 사람의 구체적인 옷들을 직접 그리고 자세히 볼 수는 없다. 그런데 이번에 그 옷들을 재현한 작품전이 열렸다. 바로 배화여자대학 전통복식디자인과 제14회 졸업작품전시회다.
배화여자대학 전통복식디자인과는 우리나라 대학 중 유일하게 한복을 제대로 전공하는 학과다. 교육과정을 보면 서양의상뿐 아니라 한복의 비중도 높다. 모 대학의 의상학과 교육과정을 보면 4년간 선택할 수 있는 총 43과목 중 단 2과목만이 한복관련이다. 하지만 배화여대 전통복식과는 2년간 38과목 중 무려 9과목이 한복과 직접 관련이 있는 과목이다.
3학점의 한재재단(삼회장저고리와 청·홍 홑치마 및 어린이용 색동두루마기의 옷감 소요량을 예측하고, 이에 따른 효율적인 마름질 및 구성법을 습득하며 올바른 착용법을 익히는 과목)을 포함 2학점인 한국복식사, 한국의복구성Ⅰ, 한국의복구성Ⅱ, 특수한복구성, 궁중의상, 한복디자인실습, 전통침선공예, 고급한복구성이 한복과 직접 관련있는 과목이다.
대부분 전문대학의 교과과정이 빡빡해서 학생들이 상당한 어려움을 겪지만 특히 이 과는 한복을 만드는 숙제를 하기 위해 토, 일요일까지도 꼼짝을 못하는 경우가 허다할 정도로 학습량이 많다. 어쩌면 이 학과의 학생들은 한복을 계승, 발전시키기 위한 소중한 인재들이 아닐까?
전통복식디자인과는 "우리나라 전통복식에 대한 이론적 이해와 실기교육을 통하여 전통복식문화를 재현할 수 있는 능력을 기능적, 예술적, 창의적으로 디자인하여 현대화할 수 있도록 하며 우리의 전통복식 문화를 이끌어 갈 수 있는 전문적인 지도자 양성에 목표를 두고 있다"고 소개한다.
졸업작품전을 찾아가 보았다. 먼저 찾은 곳은 '전통복식 재현' 마당이다. 여기엔 <수문상친림관역도>, <영화당친림사선도>, <모화관친림시재도>, <연융대사연도> 등을 보고 재현한 옷들이 전시되어 있다. <수문상친림관역도>는 영조가 개천에 있는 두 개의 수문 중 하나인 흥인문(興仁門 속칭 동대문) 남쪽의 오간수문(五間水門)에 행차하여 준천 현장을 둘러본 사실을 그린 것이다.
관심을 끄는 것은 영조나 양반들의 옷이 아닌 준첩공사를 직접 했던 서민들의 옷이다. 노랑색 소창의를 입고 패랭이를 쓰고 짚신을 신었거나 머리띠를 두르고 소색저고리를 입은 사람, 두건을 쓴 사람들로 다양하게 재현을 해보고 있다. 물론 관원, 사대부들의 복장도 다양하게 재현한다. 일꾼들의 원단은 무명천이었고 양반들은 견직물 종류들이다.
현대인의 옷과 조선시대의 옷이 이렇게 천양지차이다. 세상이 그렇게 변했다. 하지만 지금은 입지 않는 옷이 되었을지언정 분명 조선시대 우리 조상들이 입었던 옷은 우리의 문화다. 그 문화를 되돌아보고 되새겨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옆으로 발길을 옮기니 여긴 '염색표현기법'으로 천연염색 세상이다. 7월이면 청포(靑袍)를 입고 찾아온다는 그 포도를 가지고 학생들이 염색을 했다. 포도만 가지고도 매염제에 따라 이렇게 다양하고 아름다운 색깔들이 나오다니 천연염색의 세계는 무궁하다.
포도뿐 아니다. 누런 계열의 '치자', '황백', '울금'과 '양파', 갈색 계열의 '도토리'와 '홍차', 화사한 진달래 색깔의 '소목'과 '코치닐', 푸른 가을 하늘을 연상케하는 '쪽' 그리고 '쑥', '오배자', '황토', '자초', '먹' 등 정말화학염색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자연 그대로의 색깔은 그저 감탄을 연발할 수 밖에 없었다. 특히 아토피성 피부염에 걸린 사람들은 건강을 위해서도 천연염색이 좋다.
다음 방으로 걸음을 옮겨본다. 여기에는 한복에 서양디자인을 응용한 '한복디자인'과 서양옷에 한복의 기법을 응용한 '의상디자인'이 있고, '니트디자인'과 '의상삽화(패션일러스트레이션)'가 전시되어 있다.
우선 '한복디자인'에는 조선중기 치마와 무지기 치마의 형태를 응용하여 구성한 '연회복', 해녀들의 잠수복을 현대적인 느낌으로 응용한 '물소중이', 원래 속옷을 현대적인 실루엣으로 연출한 '단속곳', 말군을 기본으로 하여 풍성한 실루엣의 바지, 현대적인 느낌의 저고리를 디자인한 '말군', 15~19세기에 서양에서 입었던 귀족복식의 특징을 전통복식에 적용한 '동서양 귀족복식'이 있다.
그리고 '의상디자인'에서는 우리의 색동디자인을 중심으로 '색동과 조각잇기', '색동과 대님', '색동과 어린이', '색동과 아트웨어', '색동과 니트' 등의 색다른 표현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니트디자인'은 니트의 활동성과 따뜻한 느낌을 살려 캐드 시스템으로 디자인한 뒤 3D, 일러스트, 도식화 작업을 통해 디자인 과정을 종합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마지막으로 '의상삽화(패션일러스트레이션)'다. 패션일러스트레이션은 작가의 감성과 패션에 대한 상상력을 전달하는 미적 표현이다. 학생들은 패션디자인의 한 표현인 패션일러스트레이션을 우리의 예술적 감각과 독창성을 발휘해 전달하려는 의도임을 밝히고 있다.
이 졸업작품전을 여는 학생들은 "꽤 많은 날들을 뜬눈으로, 바쁜 손놀림으로 지새웠습니다. 그리고 더 많은 날들을 작품에 대해 고민하고 준비하며 보냈습니다"하며 초대한다. 졸업작품전 지도는 황의숙, 변정현, 김소현, 이윤주, 진선희, 김경상 교수가 수고해 주었다. 장소는 세종문화회관 미술관별관(광화문갤러리)이며 11월 4일(화)까지 전시된다.
이 가을 국내에서 유일하게 한복을 전공하는 대학생들의 땀방울이 서린 작품을 감상하고, 조선 영조 때의 사람들은 어떤 옷들을 입었는지 한번 눈여겨보면 어떨까? 그리고 일본의 기모노보다 훨씬 아름답고 훌륭한 우리의 전통복식에 대한 의미를 새겨보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