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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아파트 투기에 관한 얘기를 들었다. 집도 있고 절도 있고 돈도 있는 사람들이 부를 쌓는 재미에 혈안이 되어 새로 짓는 아파트마다 쫓아다니며 분양권을 따낸 다음 집을 장만하려는 사람에게 웃돈을 받고 팔아 넘기는 짓을 일삼는다는 것은 오래 전부터 세상이 다 아는 일이다.
아파트 분양권 웃돈 전매라는 것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주요 치부 수단이 되어온 것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불로소득에 혈안이 된 사람들이 많은, 몰염치한 사회인가를 잘 말해 주는 사례일 것이다.
처음에는 이른바 '복부인'이라고 불리는 돈 많은 아줌마들이 소일거리 삼아 그런 짓을 하고 다녔다. 그러더니 점점 더 수효가 늘어나 급기야는 일부 복덕방까지 그런 사업에 나서서 '떴다방'이라는 별칭까지 얻게 되었다.
옛날 '복덕방 할아버지'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어연번듯하고 날쌘 제비 같은 부동산 중개업자들 중에는 정말이지 떴다방 노릇에 주력하여 단기간에 엄청난 돈을 거머쥔 사람들이 꽤 많은 모양이다. 그들이야 그 투기 차익은 가만히 앉아서 손 안대고 코 푸는 식으로 챙기는 불로소득이 아니라고 우길 수도 있다. 또 자본주의 경쟁의 원리를 십분 활용하는 확실한 사업 수단이라고 강변을 할 수도 있겠지만, 세상의 온갖 투기들 중에서도 아파트 투기는 가장 추악하다.
가만히 앉아서 손 안 대고 코를 푸는 것이든 아니든, 그 투기 차익은 불로소득의 범주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복권 당첨처럼 완전히 행운인 것도 아니다. 그 부당한 이익은 집이 꼭 필요한 사람을 골탕 먹이고 속여서 갈취한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고, 남의 큰 손실과 피해로 말미암은 것이다.
그런 아파트 투기꾼들의 존재와 행태를 들어서 일찍부터 잘 알면서도 그동안은 그런 사람들의 행동거지를 면전에서 직접 보지 않고 사는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그런 삭막한 풍경들은 아파트 수요가 계속 증가하는 서울 등 대도시 같은 데서나 있는 것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아파트 전문 투기꾼들이 행정수도 이전과 관련하여 충청도 땅에도 어지간히 출몰했던 모양이다. 최근 여러 일간지들은 행정수도 이전 후보 지역인 충남·북에서 편법으로 미등기 아파트 100여 채를 가계약해 웃돈을 받고 판 부동산 중개업자 및 땅투기 사범 등이 검찰·경찰과 국세청의 내사를 받고 있다는 보도를 했다.
'행정수도 투기꾼 무더기 적발'이라는 기사 제목도 큼지막하고, '미분양 아파트 싹쓸이 중개업자 등 10여 명 내사', '대전국세청 땅 거래 200명에 130억 추징'이라는 중간 제목도 크게 보인다. 검찰 경찰과 국세청이 잘한다 싶고, 사회 정의 차원에서, 특히 사람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의식주'의 하나인 집을 상대로 하는 투기는 반드시 근절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된다.
그러면서도 나는 보도에서 보게 된 투기 적발 지역이 같은 충청도 땅이긴 해도 내가 사는 고장에서는 먼 곳이라서 조금은 구경을 즐기는 기분이었다. 그저 남의 동네 일인 것으로만 알았다.
그러나 아파트 투기 바람은 드디어 내가 사는 고장에서도 실체를 드러내고 말았다. 그 사실을 나는 최근에 몸으로 직접 체험하고 확인했다. 지난달 신축 공사 시작과 함께 28일부터 분양에 들어간 '태안 OOOO파크'의 모델 하우스에 출입하며 청약 신청에 따른 추첨을 하고 계약을 하는 과정에서 아파트 투기의 얄궂은 실상을 체감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추첨을 하던 날의 풍경과 투기 바람 침투 감지, 그리고 분양 계약을 하던 날의 투기꾼 접근 등에 관해서는 지난번의 글 '난생 처음 아파트 청약 전쟁을 치르고' 안에 소상히 기록했으므로 여기에서는 언급을 피한다.
이번에는 지난 5일 국민은행으로부터 아파트 중도금 7천만 원을 대출 받는 서류를 작성하고 인지 대금 7만 원을 내는 일로 모델 하우스에 다시 갔을 때의 일을 기록하고자 한다. 바로 그날 오늘의 이 글을 쓰게 만든 아파트 투기꾼들과 그 협력자들의 공공연한 작태를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하고 또 겪었기 때문이다.
그날 나는 점심 시간에 아내의 학교로 가서 점심 식사를 서둘러 마친 아내를 태우고 아파트 분양사무소(모델 하우스)로 갔다. 점심 시간 안에 일을 끝내고 아내를 다시 학교로 데려다 주어야 하니 다소 쫓기는 기분이었다. 그러자니 과거 '보증 덫'에 치어 금융기관의 '신용불량자' 리스트에 오른 죄로 아파트 하나 내 이름으로 계약할 수 없는 딱한 처지가 새삼 서글퍼지는 기분이기도 했다.
그런데 모델 하우스의 정문으로 들어서는 순간 나는 문 옆에 버젓이 세워져 있는 광고판 하나를 발견했다. 광고판의 위치상, 또 모양상 당연히 저절로 눈이 간 것인데, 처음에는 그게 뭔지 몰랐다.
이른바 '떴다방'이라는 부동산중개업자, 전문 투기꾼이 영업을 하고 있음을 알리는 광고판이었다. 자신이 골고루 확보한 여러 개 집을 평형 별로 동수와 층수를 기재한 다음 'P 200만원', 'P 300만원', 'P 500만원' 등으로 금액을 구분하여 게시해 놓고 있는 것이었다.
어리석게도 나는 눈을 몇 번 끔벅이고 난 다음에서야 영문 알파벳 'P'가 프리미엄을 표시하는 것임을 겨우 알아차렸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전문 투기꾼에 의한 아파트 분양권 웃돈 전매의 실상을 내가 지금 분양사무소의 정문 앞에서 보고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아무리 아파트 투기가 없을 수 없는 세상이라 하더라도 그렇다. 그것이 암암리에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또 모를까, 이렇게 공공연하게 벌어질 수 있는 것일까? 이래도 되는 것일까?
그 광고판의 한쪽 모서리에서는 부동산 중개업자의 명함 한 장이 끼워져 있었다. 화려하게 칼라로 인쇄된 그 명함에는 부동산 중개업소의 이름과 대표 이름이 명확하게 찍혀져 있었다. 우리 고장에 적을 두고 있는 부동산 중개업소가 아니었다.
나는 그 명함을 빼들고 모델 하우스 안으로 들어가서 소리를 쳤다.
"이게 뭐 하는 짓이야? 이럴 수 있는 거야? 분양사무소 정문 앞에 투기꾼의 프리미엄 전매 광고판이 버젓이 서 있는 이유가 도대체 뭐냐고? 누구든지 고발을 할 수 있으면 하라는 거야, 뭐야?"
나는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파트 건설회사 직원들의 묵인과 방조가 너무도 분명한 일이었지만 단순히 그것으로만 그치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뇌리에서 왕왕거렸다.
안면이 있는 직원 한 사람이 다가오더니 내 손에서 명함을 빼앗아 품에 넣었다. 돌려줄 것을 요구했지만 그는 도리질을 했다. 그러며 그는 회사 이미지에 나쁜 영향이 미치기 때문에 명함을 돌려줄 수 없다는 참으로 묘한 말을 했다.
나는 이미 그 명함에 찍힌 상호와 부동산 중개업자의 이름을 외운 상태였다. 그까짓 명함이야 수많은 사람에게 뿌려지니 구하자면 쉽게 구할 수도 있을 터라 분양사무소 직원과의 실랑이를 포기하고 밖으로 나갔다. 차 안에서 카메라를 꺼내 가지고 와서 그 광고판을 촬영했다.
그리고 다시 들어와서 국민은행 직원과 볼일을 보면서 바로 옆에 있는 분양사무소 직원들과 설왕설래를 했다. 그 과정에서 그들로부터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들었다. 직원 한 사람은 분양권 프리미엄 전매가 불법은 아니지 않느냐는 말을 했다.
그게 불법이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당신은 법만 가지고 이 세상을 사느냐고 내가 물었다. 법보다 더 중요한 게 뭔지 아느냐, 당신은 법으로 금지된 것만 아니라면 양심도 도덕도 중요하지 않고 그 무엇에도 구애받을 필요가 없다는 생각으로 이 세상을 사느냐고 말하면서도, 별 시답지도 않은 그런 소리를 하는 내가 스스로 우습게만 느껴졌다.
또 한 명의 직원이 더욱 우스운 말을 했다.
"분양권 프리미엄 전매가 이루어진다는 것은 그만큼 이 아파트가 인기가 있다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그건 지역 주민들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지요."
"나는 머리가 나빠서 도저히 그 말을 이해 못하겠는데, 듣고 보니까 포복절도에다가 요절복통을 할 말이라는 것은 얼른 알겠네요."
그때 아내가 내 옆구리를 집적거렸다.
"그런 씨도 안 먹히는 얘기 뭐 하러 해요. 투기꾼 혼자 하는 사업이 아니라는 것만 알면 됐지."
나는 정작 마누라로부터 한방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머쓱해진 기분으로 아내에게 이끌려서 자리를 뜨는데, 정문 밖 그 광고판 옆의 의자에 젊은 한 남자가 앉는 것이 보였다. 그러자 어느새 밖에 나가 있는 분양사무소 직원이 떴다방 직원인 듯한 그 청년의 어깨를 툭툭 치며 등을 떠밀었다. 잠시 자리를 뜨라는 사인인 것 같았다.
나는 밖으로 나와서 그 광고판을 다시 보았다. 어느새 그 광고판의 프리미엄 금액들은 말끔히 지워져 있었다.
지난번의 글 '난생 처음 아파트 청약 전쟁을 치르고'를 우리 고장에서 사시는 분들도 많이 읽은 것 같다. 신축 아파트를 청약하고 계약한 여러 분들이 '독자 의견'과 '쪽지'를 보내 주셨다. 프리미엄을 주고서라도 맘에 드는 동과 호수를 사고 싶다는 간절한 집 장만 의지를 적으신 분도 있고, 내가 정작 분양 받고 싶었던 105동의 중간층을 얻게 된 한 분은 투기꾼이 접근하여 105동은 큰 찻길 옆이라 시끄럽고 갯바람도 닿기 쉬우니 조용하고 아늑한 103동으로 바꾸라고 여러 차례 권유했던 사실을 적기도 했다.
지난 6일자 <대전일보>는 '수도권 투기꾼 원정 의혹'이라는 큰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태안 OOOO파크 분양률 예상밖 이상과열', '서해안고속도로 개통 후 발전 가능성 노려' 등을 중간 제목으로 뽑은 기사는 우리 고장에서는 처음으로 나타난 아파트 투기 의혹을 비교적 상세히 보도했다.
수도권과 대전, 천안 등에서 전매 차익을 챙기려던 투기꾼들이 그 지역이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된 이후 청약 통장을 활용할 수 없게 되자 투기과열지구에 포함되어 있지 않으면서 발전 가능성이 큰 서해안 지역으로 눈을 돌리는 것도 '이상과열'의 한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태안군 관계자는 "아파트 계약자들을 분석한 결과, 실수요자와 투기꾼으로 보이는 외지인들이 5.5 대 4.5 정도로 나타났다"며 "투기꾼들로 인해 지역 주민들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 중"이라고 말했다고 <대전일보>는 전했다.
사후 약방문이요,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이 될지도 모르지만, 태안군 당국이 아파트 투기 의혹 상황을 면밀히 파악하고 있고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니 다행이다. 정말이지 지역 주민 실수요자들이 피해를 보는 일은 절대로 없어야 하겠다.
대낮에 분양사무소 정문 옆에 버젓이 광고판을 세워놓고 공공연히 프리미엄 작태를 연출하는 투기꾼들의 각성을 촉구한다. 그리고 아파트 건설회사 직원들은 그것의 묵인 방조를 넘어 이미 한 통속이라고 보는, 일반적인 의심을 늘 경계하면서 절대로 그런 일을 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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