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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사촌'이라는 말이 있다. 또 '먼 사촌보다 가까운 이웃이 낫다'라는 말도 있다. 아직은 이런 말들이 내 주변에서 왕성하게 살아 있음을 느끼곤 한다.

적어도 나의 경우는 그렇다. 이웃 간에 이런저런 사정을 훤히 알고 지낸다. 누구네 집의 숟가락이 몇 개라는 것까지 훤히 알고, 서로 흉허물없이 지낸다. 온 이웃이 서로 돕고 협력하는 일도 많다. 그래서 이웃 간의 정은 참으로 소중하며, 각박해지기 쉬운 현대 사회에서는 '이웃사촌'의 실체적 질감이 더욱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사는 연립주택은 모두 3개 동으로 되어 있다. 한 개 동에 여덟 집이 있으니 24개 가정이 이웃사촌이 되어 살아가고 있다. 내가 과거 여러 해 동안 친목회의 총무 노릇을 한 적도 있다. 이사도 잦고, 전세로 사는 집들도 많아 이런저런 애로가 없지 않지만, 이웃 간의 정은 대체로 잘 유지되고 있다.

그런 연립주택의 가운데 동에서 나는 살고 있고, 뒷동에는 동생 집이 있다. 동생 집은 204호, 2층의 맨 끝 집이다. 동생은 1989년에 집을 장만했는데, 동생이 과거 거제도 삼성조선소에서 일할 때 모은 돈에다가 누님이 1천만 원을 도와주고 내가 5백만 원을 보태 집 값 2천5백만 원을 해결할 수 있었다.

집을 장만한 이듬해 동생은 결혼을 했고, 셋방이나 전셋집이 아닌 자기 집에서 신혼생활을 하는 것을 큰 다행으로 여겼다. 몇 년 후 집을 누구에게 담보 제공을 해준 탓에 험악한 보증 덫에 치어 집이 법원 경매로 넘어가는 수난을 겪기도 했다. 동생 집을 되찾기 위한 그 과정이 얼마나 눈물겨웠는지,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새삼스럽게 가슴이 아려온다.

동생은 적금이고 보험이고 모두 해약을 하고 돈을 긁어모아 집을 겨우 되찾을 수 있었는데, 결국 두 번 산 셈이고 눈물겨운 사연이 어려 있는 그 집을 동생은 아끼고 사랑했다. 어느 정도 평정이 왔을 때 동생 부부는 기분 전환을 위해서인지 그 집을 대대적으로 뜯어고치고 도배까지 상큼하게 새로 했다.

그러나 지은 지 어느덧 20년 가까이 되고, 본래 튼튼하게 잘 지어진 집이 아닌 탓인지 최근에 뜻밖의 문제가 발생했다. 집 어딘가에서 물이 새어서 아래층 집에 큰 불편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평소 한 집같이 지내는 동생네와 아래층 슬기네는 피해가 더 커지지 않도록 신속하게 대처했다. 슬기 엄마가 잘 아는 전문업체에 연락을 했다. 기술자가 와서 살펴보더니 물이 어디에서 새는지 찾으려면 공사가 클 것 같다며 1백만 원이 넘는 견적을 제시했다.

동생 부부는 공사비 1백만 원 이상의 지출을 각오하고 있는데, 슬기 아빠가 견적 금액이 너무 많다며 다른 업체에서 와보도록 연락을 하고, 자신이 스스로 물이 새는 곳을 찾는 일을 했다. 대형 화물차를 운영하는 슬기 아빠의 눈과 감은 정확했다. 그는 동생 집의 욕실 한곳에서 물이 새는 것을 알아냈다.

그 덕에 공사비는 34만원으로 줄었고, 동생 부부는 한바탕 집안이 엉망이 되고 한 이틀 온 몸이 뻐근하도록 바빴지만 흔쾌한 마음으로 34만원을 지출했다.

그와 비슷한 일이 2년 전에 우리 집에서도 있었다. 위층 집에서 물이 새어 책이 꽉 차 있는 작은 방의 위 문지방에서 계속 물방울이 떨어지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래 문지방에다 노상 수건을 놓고 물먹은 수건을 대야에 대고 짜는 일을 수시로 반복해야 했다. 물이 많이 떨어질 때는 아예 그릇을 놓고 받아야 했다.

피해는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작은 방의 문 쪽 벽으로 물이 흘러내려 벽의 모듬에다 못을 박고 걸어놓은 문서철이며 여러 책이 젖었다. 주방과 면한 작은 방 벽 모듬의 틈에서는 흙이 배어 나왔고, 그 위에 버섯 같은 곰팡이도 생겨나 덕지덕지 앉게 되었다.

위층은 전세로 사는 집이었다. 집 주인에게 연락을 했고, 집 주인이 업체에 연락하여 기술자가 와서 집을 살펴보았지만, 우리 집의 작은 방과 욕실의 천장만 뚫어놓았을 뿐 물이 새는 곳을 찾지 못했다.

쉽사리 수리를 하지 못하는 가운데 시간이 흐르더니, 위층 집 주인 부부에게 불화가 생겨 이혼을 하고 어쩌고 하느라 집 고치는 일은 안중에도 없게 되었다. 일이 그쯤 되자 위층에 전세를 사는 유경 아빠(중학교 교사)가 자기 돈을 들여 욕실을 뜯어고치는 대공사를 했다. 그래서 결국 6개월만에 우리 집의 수해는 해결을 보게 되었다.

(그 상황을 6개월이나 참고 견디고 산 나도 어지간히 앙칼지지 못한 사람이다.)

그런데 유경 아빠는 2년 전에 신축 주공아파트로 이사를 가면서 내게 5만원이 든 봉투를 주고 갔다. 물이 새어 벽지가 많이 상한 작은 방의 도배라도 다시 하게 되면 보태 쓰라는 뜻이었다.

지금 초등학교 2학년인 첫 아이 유경이가 태어나던 해부터 내가 일주일에 한 번씩 해미성지의 좋은 물을 길어다가 두 통씩 넣어주는 것을 무척 고마워한 사람이었다. 명절마다 보답을 하곤 해서 내가 오히려 미안할 지경이었다. 그만큼 우리는 서로 좋은 이웃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며칠 전에 동생 집의 욕실을 수리한 전문업체 사람으로부터 놀라운 말을 하나 들었다.

우리 읍내 어느 곳에 00연립이라는 데가 있다고 했다. 3층 연립인데, 3층의 어느 한 집에서 물이 새어 가운데층 집과 아래층 집이 피해를 보고 있다고 했다. 피해를 입는 두 집이 위층 집에 가서 사정을 말하고 방도를 내줄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그랬는데도 며칠이 지나도록 위층 집에서 아무런 성의를 보이지 않아 피해를 보는 두 집이 전문업체에 연락하여 사람을 오게 했고, 견적을 받고서는 공사비를 세 집이 공평 분담하는 형식으로 공사를 하자고 제의를 했다고 한다.

그런데 위층 집 여자가 고개를 젓더란다. 가운데층 집과 아래층 집의 그 누수가 자기네 집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이라고 하더란다. 누수 피해를 보는 두 집에서 물이 새지 않도록 방도를 찾고 살면 되지 않겠느냐고 하더란다.

그래서 벌써 석 달이 지나도록 그 집 공사를 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을 하면서 그 기술자는 혀를 찼다. 세상에 그런 경우를 다 보았다며….

우리네 상식으로는 있기가 어려울 듯한 그런 경우 없는 일도 이 세상에는 분명히 존재하는 모양이다. 그런 경우 없는 일이 우리 동네에서, 가까운 곳의 한 연립주택에서 벌어지고 있다니, 왠지 믿고 싶지 않은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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