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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1 TV 좋은나라 운동본부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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탤런트 최재원씨가 서울시청 지방세 징수 전담반인 '38팀'과 함께 행동하며 그들의 어렵고도 힘든 임무 수행 과정을 담은 그림이었다.

납세 의무를 계속 기피하고 있는 고액 체납자들의 집을 찾아가서 문전 박대를 당하는 장면, 체납자를 만나기 위해 잠복을 하는 장면, 납세 요건 형성 과정과 세금 체납의 성격과 규모, 오랜 잠복 끝에 드디어 체납자를 만나는 장면, 체납자의 발뺌과 실랑이, 그리고 체납자의 행패 등을 적나라하게 담은 그림이었다.

최재원의 양심추적 '고액체납과의 전쟁' 중 한 장면
최재원의 양심추적 '고액체납과의 전쟁' 중 한 장면
물론 체납자의 얼굴을 명확히 볼 수는 없고, 목소리도 원음을 들을 수는 없었다. 체납자들의 행태가 너무도 뻔뻔스럽고, '공무집행방해'라는 범법의 범주 안에 들 수 있는 행동을 보이기도 했지만, 그들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얼굴을 가리고 목소리도 변조를 할 수밖에 없는 사정이 적이 얄궂게 느껴졌다.

고액 체납자들은 시가 수십 억 원에 이르는 저택에서 살고 있었다. 그리고 기사가 딸린 외제 승용차를 타고 다니고 있었다.

올해 나이가 70이라는 한 체납자는 서울시청 38팀 직원들에게 처음부터 반말을 했다. 그리고 마구 욕설을 퍼부었다. 그러다가 먼저 집안으로 들어간 그는 부인이 대신 상대하고 있는 38팀 직원들을 향해 호스를 이용하여 담장 밖으로 물을 퍼붓기까지 했다.

그 장면을 보며 우리 가족은 경악했고, 혀를 차며 한숨을 쉬었다. 우리나라 수도 서울에서, 그것도 세상이 알아주는 부자 동네의 호화 저택 앞에서 그런 몰상식한 일이 벌어지리라고는 누구도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저렇게 물까지 뿌려대는 것은 '공무집행방해'에 해당되는 것 아닐까? 사진까지 찍어 증거를 확보했으니 사직 당국에 고발을 해야 하는 것 아닐까?"

그 장면을 보면서 내가 중얼거리자 아내가 대꾸했다.
"저 집에 세금 낼 돈은 없어도 물은 아주 많은가봐요. 넓은 정원의 수목을 잘 가꾸고도 밖으로 마구 물을 내버리는 걸 보니…."

나는 괜히 심사가 불편해서 아내에게 핀잔을 했다.
"세금허구 물허구 무슨 상관이라나?"
"저 사람들은 돈을 저렇게 물 쓰듯이 쓰며 살 게 아니냐는 뜻이에요, 내 말은…."
"그런감…."

나는 괜히 무안해져서 입을 다물었는데, 아들녀석이 끼어 들었다.
"저런 좋은 집에서 살고 외제 승용차를 굴리고 살면서도 세금 낼 돈이 없다면, 속은 거지라는 얘기 아니에요? 겉보기는 그럴 듯한데 속은 빈 것을 보고 뭐라고 하지요? 그걸 가리키는 말이 있지요?"

"있지. '속 빈 강정'이라는 말두 있구, '빛 좋은 개살구'라는 말두 있어."
"그러니까 저 부자들은 속 빈 강정이고 빛 좋은 개살구예요. 그죠?"
"저 사람들은 속은 거지여서 세금을 내지 않는 게 아니라, 도둑놈 심보를 갖구 살기 때문에 그런 겨."
"속은 거지가 아니라도, 그렇다면 더욱더 저 사람들은 속 빈 강정이고 빛 좋은 개살구예요."
"그건 왜?"
나는 호기심을 머금은 눈으로 아들녀석을 보았다.

"저렇게 많은 재산을 갖고 잘 살면서도 세금을 내지 않는다는 건 사회를 위해 별로 좋은 일을 하지 않고 산다는 뜻도 되잖아요."
"그려, 맞어. 그런 경우를 일러서 속 빈 강정이라구 허구, 빛 좋은 개살구라구 해야 더 말뜻이 사는 겨. 흐흐흐. 우리 아들, 보통 똑똑한 게 아니네."
그러며 나는 중학생 아들녀석의 엉덩이를 두어 번 두드려 주었다.

"어이그, 아들 말이라면 그저 좋아서…."
아내는 싫지 않은 기색으로 내게 눈을 흘겼지만, 어머니는 사랑스러운 눈으로 손자녀석을 보며, "우리 아들이 그렇게 똑똑헌 말을 허는디, 애비가 좋아허지 않을 수 있남"하고 나를 거드셨다.

"그런디 어머니. 서울시청 직원들헌티 욕지거리를 허구 물을 뿌리구 행패를 부린 그 사람의 올해 나이가 일흔이래요."
텔레비전을 좀더 가까이에서 본 내가 어머니께 굳이 그런 말을 했다.

"그려? 나이 칠십이면 떠날 날이 별로 많이 남지 않었구먼 뭔 욕심이 그리두 많디야. 세금 안 내구 돈을 꼭 움켜쥐구 살다가 떠날 때 가지고 갈라구 그러나."

"돈 욕심이야 사람이 죽을 때까지 버리지 뭇허는 거니께 그렇다구 치구, 저는 그 일흔 나이가 참 아깝게 느껴지네요. 그 나이에두, 사는 풍모와 달리 너무 철이 안 들었다 싶구…."

"그려. 내가 보기에두 철이 안 든 것 같어. 칠십 평생을 어떤 식으로 살어 왔는지두 훤히 짐작이 되는 것 같구…. 아까는 저렇게 잘 사는 집두 있구나 싶었는디, 부러워헐 것 하나두 읎어. 그건 절대루 잘 사는 게 아녀."

그리고 어머니는 몸을 일으켰다. 볼만한 프로를 잘 봤으니 이제 또 김장 준비를 해야 한다고 하시며….

아내도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저녁부터 잡숫고 하세요, 어머니."

으리으리한 저택의 번쩍거리는 삶을 또 한번 보았지만 그것을 부러워하지 않는 우리 집의 오붓한 평화는 조금도 변함이 없는 것이었다. 세금을 안 내고도 큰소리치는 사람, 고액 체납자 처지에서도 오히려 관계 공무원들에게 행패를 부리는 철없는 부자 노인, 그 속 빈 강정과 빛 좋은 개살구들에 대한 경멸의 시선도 재미롭게 챙기는 가운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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