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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트라무로스(Intramuros)에서 식민지의 흔적을 보다

메트로 마닐라를 남북으로 가르며 흐르는 파시그강이 마닐라베이로 빠져나가는 곳에 자리한 인트라무로스(Intramuros)는 과거 필리핀을 통치했던 스페인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성벽도시의 형태를 지녔다.

1571년 마닐라 일대 이슬람교도들의 침공을 물리친 스페인 인들은 필리핀 사람들을 동원하여 석재로 성벽을 세우고 이 성벽 안에 성당, 학교, 병원 등을 비롯한 각종 편의시설을 짓고 그 안에는 총독을 비롯한 스페인 사람들만 살게 하였는데 우리나라로 말하면 해미 읍성이나 낙안 읍성보다 규모가 큰 성곽도시라 하겠다.

성벽 주위에는 물웅덩이(해자)를 파놓아 그 어떤 외부침입자도 함부로 이곳을 넘보지 못하였다지만 지금 그 모습은 볼 수 없고 파릇파릇한 골프장만이 보였다.

그 이유는 스페인에서 미국 식민지로 넘어가면서 성벽 주위를 둘러 팠던 해자 속 더러워진 물이 말라리아 모기의 온상으로 지목되자 미군이 해자를 멋대로 매립하여 지네들 편할 대로 골프장으로 만들어 버렸기 때문이다. 자기네의 기호로 남의 나라 땅을 맘대로 재단하고 파헤치는 것을 뻔히 바라보면서도 말 한마디 할 수 없는 운명, 이것이 바로 식민지 국민들의 아픔 아니었던가?

갑자기 묘한 동질감을 느끼며 인트라무로스 내로 들어갔다.

▲ 인트라무로스 내의 명물 칼레사(Calesa)라는 마차와 마부 ,사진 속의 아저씨는 손님이 있거나 말거나 항상 느긋한 표정이다.
ⓒ 김정은
성 안의 유명한 건물로는 성 오거스틴 교회와 마닐라 대성당, 그리고 산티아고 요새 등이 있는데 그와 달리 또 하나의 명물이 있다면 바로 칼레사(Calesa)라는 마차와 마부이다.

마차를 타고 성 안 일주를 하는데 보통 50-100페소 정도로 비싼 편이지만 일정한 자격을 갖추고 지정된 사람만이 인트라무로스 내를 운행할 수 있기 때문에 시내의 다른 탈 것보다는 안전하다고 한다. 그런 이유 때문일까?

사진 속의 마부아저씨는 산티아고 요새의 출입구 쪽에서 느긋한 표정으로 관광객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에게 있어서 손님이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존재인지 아니면 인트로무로스의 명물이라는 자긍심 때문인지, 마치 세월을 낚기 위해 낚싯줄 없는 낚싯대를 드리우는 강태공처럼 내가 산티아고 요새를 둘러보고 올 동안에도 여전히 빈 마차 그대로 그 자리에 무료하게 서있었다.

인트라무로스의 모든 칼레사 마부들이 모두 이 아저씨같은지, 아니면 그만의 개성인지는 알 수 없으나 타든 말든 상관없다는 식의 그 여유로움이 낯선 이방인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마닐라 대성당과 성오거스틴 교회

▲ 결혼 피로연을 준비하는 모습, 필리핀 사람들은 인트라무로스 내의 마닐라 대성당이나 성오거스틴 교회에서 결혼하는 것을 평생의 꿈으로 생각한다고 한다.
ⓒ 김정은
필리핀 사람들의 일평생 꿈이라면 바로 자신의 결혼식을 성 어거스틴 교회나 마닐라 대성당에서 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그만큼 인트라무로스 내에 있는 이 유명한 건물은 필리핀의 삶 속에 깊숙하게 자리잡고 있는 필리핀의 자랑이다.

특히 이 두 건물에서 결혼을 하면 평생 행운이 온다는 믿음 때문에 현재 결혼 예약일이 2년이나 밀릴 정도로 유명하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그런지 모르지만 곳곳에 결혼식 피로연 준비로 여념 없는 모습이 자주 눈에 들어왔다.

특히 성 어거스틴 교회(San Augustin Church)는 400년의 세월을 거치는 동안 7차례의 지진과 마닐라를 초토화시킨 1945년 2월의 일본군의 폭격에도 끄덕없는 기적의 교회로서 필리핀인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성 산티아고 요새에서 만난 은밀함과 자유분방함

▲ 산티아고 요새의 출입구, 감옥이 있는 무시무시한 시설답지 않게 예쁘다.
ⓒ 김정은
산티아고 요새는 인트라무로스의 북쪽에 자리를 잡고 있다. 과거 스페인 정복자들이 마닐라베이를 통해 쳐들어오는 적군들로부터 마닐라와 인트라무로스를 방어하기 위해 만든 요새로서 당시 최고의 전략적 요충지였다.

▲ 산티아고 요새내의 지하감옥, 현재는 지붕이 없는 상태이지만 제2차 세계대전중에는 일본군에 의해 수많은 필리핀 인과 미군포로가 이곳에서 수장당했으며 호세 리잘이 처형되기 전에 감금되었던 곳이다.
ⓒ 김정은
▲ 지하 감옥 옆에서 자유분방하게 놀고 있는 필리핀 아이들.. 그 옆의 음울한 모습의 감옥과 무척 대조적이다.
ⓒ 김정은
▲ 산티아고 요새 성벽 위에서 보이는 골프장, 미군들이 해자를 메꾸고 만들었다.
ⓒ 김정은
예쁘장하게 생긴 산티아고 요새의 입구를 들어가면 고풍스런 건물과 푸릇푸릇하고 단정한 잔디밭이 눈에 들어온다. 성벽 위로 올라가 성벽 밖의 세상을 살펴보니 현재 지붕은 없지만 미로처럼 보이는 예전 감옥이 지붕이 없어진 채 예전의 은밀함을 뽐내고 서 있었다.

이 감옥은 바다보다 낮게 파여 있어서 탈출이 거의 불가능한 구조 덕분에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일본군에 의해 수많은 필리핀 인은 물론 미군포로까지 이곳에서 수장 당했다는 악명 높은 곳으로 필리핀 독립의 아버지 호세 리잘도 근처의 리잘 공원에서 처형당하기 며칠 전까지 이곳에서 보냈다고 한다.

▲ 산티아고 요새 옆에 위치한 대학, 그 때문에 산티아고 요새는 평일에는 학생들의 데이트 코스로 변한다고 한다.
ⓒ 김정은
이처럼 역사적으로 악명 높은 곳이지만 지금은 근처 아이들이 잔디밭에서 한가롭게 물구나무서기 놀이를 하며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 모습에서 도저히 예전의 음울한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더군다나 바로 옆에 대학이 있어서 평일에는 학생들의 데이트 장소가 되어버린다는 설명을 들으니 더더욱 그랬다. 그러고보면 평화와 전쟁 또한 어쩌면 백지 한 장 차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백지 한 장의 차이가 불러일으키는 결과는 어마어마하게 다르지만….

천천히 한걸음 한걸음씩 처형장으로 향하는 리잘의 흔적을 쫓아 리잘공원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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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업을 그만두고 10년간 운영하던 어린이집을 그만두고 파주에서 어르신을 위한 요양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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