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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매화(풀매화)
물매화(풀매화) ⓒ 이선희
물매화는 범의귀과로서 습기가 많은 곳에서 자라고 꽃이 매화를 닮았다는 데서 그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중국에서는 물매화를 매화초(梅花草)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물매화는 '풀매화'라고도 불리우죠.

저는 올해 처음으로 식물도감이 아닌 자연의 상태에서 물매화와 '안녕!'하고 가슴 떨리는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습지에 산다는 물매화를 만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제주에는 그렇게 많지 않는 습지를 찾아 여기저기 다녀도 보이질 않더니만 어느 날 오름을 산책하는데 갑자기 하얀 물매화가 억새풀밭 사이에서 내게로 다가왔습니다.

전혀 예상 밖의 장소에서 만난 물매화가 너무 예뻐서 다음날 아이들과 아내를 데리고 그 곳을 다시 찾았습니다.

그리고 그 근처에서 마치 꽃눈이 내린 듯 들판을 수놓은 물매화의 멋진 행렬을 보았습니다. 마침 꽃향유가 들판을 보랏빛으로 물들이고 있던 터라, 보랏빛 들판에 흰눈이 내린 듯했습니다.

처음 얼굴을 보여주기까지는 그렇게 꼭꼭 숨어있더니만 이제 눈길 돌리는 어느 곳에서든지 방긋방긋 웃고 있습니다.

ⓒ 김민수
이유미님의 한국의 야생화를 보니 옛 사람들은 꽃을 보는 기준이 있었다고 합니다. 꽃을 보는 기준은 사군자(四君子-梅蘭菊竹) 가운데 가장 먼저 나오는 '매화(梅花)'였던 것이 아닌가 추측을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황매화, 돌매화는 분류학적으로 유사점이 없는데도 5장의 흰 꽃잎이 달려 매화를 연상시켰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 아닐까 유추하기도 한답니다.

그러고 보니 물매화도 꽃잎이 다섯 장, 흰색, 다섯 개의 수술, 5개의 헛술 등 다섯과 관련된 것뿐만 아니라 흰색에 이르기까지 '매화'라고 불릴만한 자격이 있습니다.

그리고 예로부터 아름답고 향기로운 꽃에는 '매화'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고 합니다. 매화의 이름이 붙은 꽃들을 찾아보니 금매화, 황매화, 돌매화 그리고 오늘 소개해 드리는 물매화에 이르기까지 종류가 많습니다.

어떤 분들이 이런 질문을 하십니다.

"어째서 그렇게 꽃을 좋아하십니까?"
"그냥 좋아서요. 그런데 사실 그냥 좋다기보다는 꽃을 보면서 세상살이의 이치를 배우고, 사람 사는 도리도 깨우치지만 더 좋은 것은 신앙인의 한 사람으로서 창조세계를 통해서 듣는 그 분의 음성이 무궁무진하기 때문에 좋아한답니다."
"그런데 너무 좋아하는 거 아니에요?"
"지나치면 안 될 일이 있고, 지나쳐도 좋을 일이 있는데 제 일을 하는데 도움이 되니 지나쳐도 될 일 같아서요."

ⓒ 김민수
꽃 그림을 예쁘게 그려주시는 이선희 선생님에게는 물매화를 처음 만났을 때의 에피소드가 있답니다.

"물매화 보려면 장화 신어야 하나요?"
"네, 물 한가운데 있어서 수영복 입어야 합니다."
"난 수영복 안 가져왔는데…."
"그럼 백색 수영복이라도 입으셔야 물매화 보실텐데…."

그런데 등산화를 신고 물매화를 보셨다나요.

저의 경우도 물매화를 만나기 전까지는 그것을 보기 위해 수련과 연꽃이 있는 연못(물) 근처만 배회를 했었으니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물매화는 내게로 다가온 이후 겨울의 초입까지도 들판과 오름 곳곳에서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득 깊은 산 속의 귀한 약초같은 꽃이 있다면 바로 이 '물매화'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귀하고 아름다운 꽃이 자기만의 이름을 가지지 못하고 '…를 닮은 꽃'으로 불려야 한다는 것이 조금 이상했습니다.

조금 우스운 이야기지만 "이제 사람들이 차범근의 아들이라고 하지 않고 차두리의 아빠라고 합니다"하는 광고문구가 있었습니다.

자기만의 이름이 있습니다. 그런데 자꾸만 '누구누구의'라는 수식어가 붙어 다니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누구누구'는 좋을지 모르겠지만 당사자는 조금 불편할 수도 있겠죠.

"너 이름이 뭐니?" 하고 물었을 때 "네, 누구를 닮은 아무개입니다"가 아닌 "네, 아무개입니다"라고 대답할 수 있는 이름이 있다는 것도 참 소중한 일인 것 같습니다.

물매화는 너무 예뻐서 자기만의 이름을 갖지 못한 꽃인가 봅니다. 그래도 그 이름과는 상관없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꿋꿋한지 모릅니다. 누구라도 한번 보면 한참을 바라볼 수밖에 없을 아름답고 깨끗한 꽃입니다.

ⓒ 김민수
그런데 더 숙연하게 만드는 것이 있답니다.

물매화는 돌담으로 둘러 쌓인 무덤가에 많이 피어있었습니다. 마치 망자들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듯, 아니면 망자가 물매화로 피어나 생전에 마음껏 보지 못했던 하늘, 듣지 못했던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와 바람소리를 듣는 듯합니다.

그래서인지 가을의 끝자락을 잡고 씨앗을 맺는 모습도 당당합니다.
그 가녀린 줄기가 땅에 눕는 법 없이 꿋꿋하게 서서 자신의 또 다른 생명을 품고 있습니다.

맨 처음에는 한 송이 보는 것만으로도 온 마음이 두근거리고 떨렸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흰눈이 내린 듯 여기저기에 피어있는 물매화에 마음을 빼앗깁니다. 그리고 이제 그 흰빛을 거두고 씨앗을 맺으며 억새풀과 같은 갈색으로 변해가면서도 끝까지 꼿꼿한 물매화를 보면서 군자의 삶이란 어떤 것인지를 봅니다.

아, 나의 삶의 마지막이 저렇게 숙연하고 아름다우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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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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