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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삶에 사랑이라는 감정이 일으키는 파장은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습니다. 준비 없이 찾아오는 사랑이기에 감당할 수 없는 행복에 몸둘 바를 모르다가도 서로에게 멀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몸살을 앓게 됩니다. 그래도 우리는 사랑을 하게 되는데요. 60억이 넘는 사람들 속에서도 특별한 누군가를 사랑하게 됩니다. 왜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것일까요?

알랭 드 보통의 소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는 사랑에 대한 깊이 있는 개론서와 같은 구실을 합니다. 단순한 남녀 사이의 러브 스토리가 아니라, 한 남자가 한 여자를 사랑하게 되면서 겪게 되는 심리적인 변화를 이성적으로 파헤쳐 나간 그런 소설이지요.

주인공은 자신이 왜, 클로이를 사랑하게 되었는지 모릅니다. 그것에 대한 이유를 발견하려 해도, 쉽게 찾아지지 않죠. 그저 신만이 아는, 인간이 어쩔 수 없는 불가역적인 것으로 판단을 내립니다. 그와 그녀의 만남의 우연을 5840.82분의 1이라는 수학적 분석을 바탕으로 말이죠. 그는 이렇게 말을 해요.

"사랑에 빠지는 일이 이렇게 빨리 일어나는 것은 아마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사랑하는 사람에 선행하기 때문일 것이다. 요구가 해결책을 발명한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출현은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은 (대개는 무의식적인) 요구, 사람의 출현에 선행하는 요구의 제 2단계에 불과하다."

우리는 언제나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어합니다. 또한 그 사랑을 받고 싶어하구요. 그런 작용으로 말미암아, 눈에 들어오는 사람을 자신에 대응시켜 자신과 맞는 사람으로 만들어버리게 됩니다. 우리는 그렇게 사랑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가 시작한 사랑은 달콤하기만 합니다. 그녀는 그의 사랑을 부담 없이 받아들이고, 최선을 다해 그를 아끼고 받아들입니다. 이제 서서히 서로에게 동화되어 가는 것이죠. 하지만 둘은 육체적인 언어로 사랑을 표현했지만, 말로 "사랑한다"고 하지는 못했습니다.

클로이가, 그 말을 싫어하고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말이 문제를 일으킨다고 믿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그는 그녀에게 그 말을 해주고 싶은데, 어떻게 할까 고민합니다. 그녀의 생일날이 되었습니다. 그는 그녀와 함께 저녁식사를 하며, 사랑을 표현할 수단을 발견하게 됩니다.

"내가 클로이의 손을 잡고, 험프리 보가트와 로미오에게 눈을 찡긋하며, 그녀에게 아주 중요한 이야기가 있다고, 나는 너를 '마시멜로' 한다고 말하자, 그녀는 내 말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 같았다. 그녀는 그것이 자기가 평생 들어본 가장 달콤한 말이라고 대답했다."

사랑이라는 닳은 말보다는 상큼하고 달콤한 이 '마시멜로'가 그 둘의 사랑을 더욱 깊게, 그리고 특별하게 만들었습니다. 사랑이란 말 대신 이렇게 다른 사물로 불러 보는 것도 참 좋은 것 같죠? 전 '된장국'이 떠오르네요. 어머니의 품과 같이 푸근하면서, 은근히 피어오르는 그 맛처럼, 사랑도 따뜻하면서, 은근히 이어졌으면 해서 말이죠.

또한, 그 둘은 둘만의 소통 수단을 만들게 됩니다. 사무실에서, 사람들 사이에서 불려지는 정치적인 이름이 아닌, 둘만이 알 수 있는 그런 의미있는 이름으로 서로를 부르게 된 것입니다.

""나는 주어진 이름을 가진 너를 발견했다. 그러나 나는 너에게 새로운 이름을 줌으로써, 너라는 존재가 나에게 주는 의미와 다른 사람들에게 주는 의미 사이의 차이를 표시하고자 한다. 너는 사무실(정치적인 공간)에서는 X라는 이름을 가질 수도 있으나, 내 침대에서는 늘 '나의 당근'이 될 것이다."

왜, 김춘수 님의 <꽃>이라는 시가 떠오를까요? 아무 의미 없이 서있던 꽃이었는데, 내가 그 꽃에 의미를 부여하고 관심을 갖자 그것은 내게 다가와 이름 있는 꽃이 됩니다. 관심에 기초한 행위는 이렇게 상대를 특별하게 만들고, 또한 그로 인해 자신도 특별한 존재가 됩니다. 시인은 말하죠. 꽃이 의미 있게 다가오는 것처럼, 자신도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그들은 그들만의 이름을 만들어내면서, 의미 있는 서로가 됩니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것이죠. 그들 사이에도 파국은 찾아옵니다. 회사 동료에게 클로이가 마음을 빼앗겨 버린 것입니다. 그는 그 상황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합니다. 그것을 피하려고만 하죠. 그 고통이 그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는 사랑을 시작할 때, 그에게 주어진 운명을 찬탄하며 기쁘게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이별이 찾아오자, 신의 저주라며, 사랑을 했던 것을 후회하게 됩니다. 그는 사랑을 시작할 때, 준비 없이, 우연히 찾아왔던 선물이었던 것처럼, 이별도 그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클로이가 고통을 안고, 그에게 미안함을 표현하자, 분노하는 대신, 그런 그녀의 아픈 마음을 위로해 줍니다. 사랑을 의무로써 행한 것이 아니라, 내가 하고자 하는 마음에 따라 한 것처럼, 이별도 그녀의 마음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왔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이지요.

이성이 감정을 통제할 수 없는 부분인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떠난 그녀에게 복수를 준비합니다. 바로 자살을 결심하는데요. 자신이 죽음으로써, 그의 그녀에 대한 사랑을 보여주고, 그녀의 행동에 죄책감을 안겨주려는 목적에서입니다. 그러나 그 행위가 실패로 끝나고, 그는 클로이가 없는 새로운 삶으로 내맡겨집니다.

모든 것이 낯설고, 또한 의미 없게 다가옵니다. 주위 사람들은 시간이 흐르면 낫는다는 위안합니다. 그렇게 세월이 흐릅니다. 그는 철저히 금욕주의자가 되려고 하죠. 다시는 사랑을 하지 않겠다고 맹세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쩌면, 사랑에 상처를 받지 않겠다는 비겁한 마음의 소산일 수 있습니다. 상처에 인한 고통을 피해 보겠다고 인간 관계를 접어버리는 것은 사회적인 동물인 인간이 할 일은 아닙니다.

그렇게 그는 또 사랑을 시작합니다. 클로이처럼 촉촉하고 아름다운 눈을 가진 여인에게 마음을 빼앗겨 버린 것입니다. 그는 클로이에게 했던 것처럼, 그녀를 저녁 식사에 초대합니다. 다시 가슴이 떨려오기 시작합니다.

""어쩌면 우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보아주는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우리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하는 말을 이해하는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우리는 제대로 말을 할 수 없다는 것도. 본질적으로 우리는 사랑을 받기 전에는 온전하게 살아있는 것이 아니다."

그가 사랑을 다시 시작한 이유가 될까요? 사랑은 제 2의 창조입니다. 사랑을 통해, 나 자신이 상대에 의해 새롭게 부각되고, 열정으로 충만한 삶이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은 부러움과 질투를 느꼈습니다. 사람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행위가 퍽 마음으로 와 닿았다고 할까요. 상대의 몸짓, 말 한마디에도 의미를 부여하며, 행복에 젖는 주인공이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이제 겨울이지요. 그런 만큼 사랑을 찾는 이들도 많아지는 때입니다. 왜 우리는 사랑을 할까요?, 그리고 왜 다른 누구도 아닌, '너'를 사랑하게 되는 것일까요? 이 책을 통해 사랑하는 사람과 그 이유를 찾아봄이 어떨른지요.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양장)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청미래(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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