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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아들이 태권도장에서 집으로 돌아올 시간이 되어 저녁을 준비하고 있는데 갑자기 아래층에서 크게 우는 소리가 들린다. 울음소리로 보아 아들 녀석이 분명한데 태권도장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방금 내려서 집으로 돌아오는 중일 텐데 무슨 저렇게 통곡할 일이 있나 싶어서 급히 현관문을 열어 주니 녀석은 사뭇 울음이 북받쳐서 흐느끼기까지 한다.

"진수야, 왜 그래. 무슨 일이니? 뭐 큰일이라도 있었니? 사범님한테 야단 맞았어? "

녀석은 대답도 않고 더 큰 소리로 엉엉 울어대기만 할뿐이다. 평소에 녀석은 장난이 심해서 웬만한 일들은 다 장난으로 넘겨 버리고 사람 복장 터지게 할 만큼 헤헤거리며 장난에 열중한다. 심약한 성격 탓에 잘 삐치기까지 하므로 한 살 위의 누나는 '삐질이'라는 별명까지 붙여 준 터였다.

그런 녀석을 어르고 달래서 대답을 들어보니 전에 이 빌라에 살다가 가까운 곳으로 이사 가서 같은 태권도장에 다니고 있는 쌍둥이 형제로부터 구타를 당하고 그 쌍둥이 형제의 이웃에 사는 형까지 가세해서 함께 때렸다는 것이다. 그것도 셔틀버스에서 내릴 때 집중 공격을 당했기에 자신은 미처 손 써볼 틈도 없이 당한 것이 심하게 억울하고 분한 모양이었다.

더구나 그 싸움이 한 번 있었던 것이 아니라 연속해서 이루어진 일이라고 분함을 호소하면서 마구 흐느낀다. 안 되겠다 싶어서 태권도장으로 전화를 하니 태권도장에서는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한다.

쌍둥이 형제는 유치원도 같이 다닌 아들녀석의 둘도 없는 친구인데 이런 일이 계속되면 서로 곤란해질 것 같았다. 그 형제의 엄마와는 같은 빌라에 살면서 친분도 있었고 길에서 만나면 서로 반기는 처지이므로 수화기를 들었다.

"수근이 엄마, 나 진수 엄만데 우리 진수가 통곡을 하면서 태권도장에서 돌아왔어요. 수근이, 수빈이와 그 동네 사는 형이 합세해서 태권도장 차에서 내릴 때마다 때린다고 하네요. 어떻게 된 건지 알아보려는 거니까 수근이 좀 바꿔 주세요."

수근이 엄마는 아들에게 수화기를 넘겨주기가 영 못미더워하는 눈치이다. 아들이 받지 않으려 한다는 핑계를 대면서 거북해 하기에 혼내 주려고 그러는 것이 아니니 제발 좀 아이들을 바꿔달라고 하고는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아이에게 전화 넘겨주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아이의 소리가 들린다.

"수빈이구나. 진수가 심하게 울고 있는데 다음부터는 때리지 말아라. 아줌마가 보기엔 진수가 무슨 잘못이 있었던 것 같지만 그래도 셋이서 한 아이를 때리면 안 되겠지? 다음부터는 사이좋게 지내자. 엄마 좀 다시 바꿔 주겠니?"

그런데 그게 실수였던 모양이다. 아이들 일이니 앞으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타일러 달라고 부탁하려던 참이었는데 대답부터가 영 기분이 상해있다는 투다. 진수가 친구와 함께 수근이를 놀렸다고만 계속 말할 뿐 아이를 타일러 보겠다는 말은 전혀 없었다. 말을 듣고 있다보니까 점점 마음이 격해지는 것이었다.

"수근이 엄마, 나도 이 전화 끊고 나면 진수를 타이르려던 참이에요. 어쨌든 셋이서 한 아이를 때린 거 아니에요? 그러면 미안하다고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가만히 듣고 있으려니까 자꾸 화가 나려고 하네요."

"진수가 우리 아이를 자꾸 놀리니까 그런 일이 일어난 거지요. 수근이 머리 상처자국을 보고 '짝퉁'이라고 놀렸다면서요. 그런데 내가 왜 미안하다고 해야 해요?"

아이 싸움이 어른 싸움된다고 하더니 목소리가 자꾸 높아지고 하지 않아야 할 말들을 하면서 급기야는 상대방에게 반말까지 듣게 되자 머리끝까지 부아가 솟구친다. 도저히 수화기를 더 들고 있기가 힘들어서 수화기를 내려놓고 생각하니 분노를 어떻게 다스려야 할지 모를 지경이 되었다.

쌍둥이 엄마는 나보다 나이가 한참 아래인 젊은 엄마다. 그걸 모르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해가 가겠는데 알면서 먼저 반말까지 했다는 것이 용서가 안되는 것이었다. 사람이 화가 나면 어떻게든 상대방의 자존심을 짓밟아야만 성이 차는 것일까 싶었다.

그러면서 곰곰 내 행동을 되짚어 보았다. 아무래도 아이 싸움에 너무 많은 참견을 한 것이 아닌가 싶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저희끼리 해결하도록 할걸 그랬다는 후회가 밀려든다. 아들녀석은 이젠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배고프니 어서 밥이나 달라고 성화다.

"야 임마, 왜 친구는 놀려서 싸움을 크게 만들어놔."
"엄마, 걔도 나 놀렸단 말야. 그럼 놀려도 참아야 돼?"

"그래도 친구의 약점을 가지고 놀리면 못써요."
"엄마가 목소리만 낮추었어도 싸우지 않았을걸?"

오늘은 완전히 망가지는 날인가보다. 좀 참으면서 두고 볼걸…. 그래도 그렇지. 잠든 녀석의 얼굴을 보니 눈퉁이가 멍들어 있는 것이 보인다. 맞은 자국도 아프고 마음도 아프고 그로 인해 어른들 싸움도 보았으니 녀석도 오늘은 완전히 망가진 날이었을 게다. 언성을 높였더니 목도 아프고 기분이 영 엉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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