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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아! 드디어 끝났습니다. 그동안 버거운 짐을 짊어지고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끙끙 앓았는데, 드디어 그 일이 끝났습니다. 더불어 여러분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제가 짊어진 짐을 조금이라도 가볍게 해보고자 <오마이뉴스> 독자분들께 ‘최고의 한국음식을 찾습니다’라고 광고까지 했잖겠습니까.

그 광고는 잉걸에 머물렀는데도 2천명이 넘는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셨고, 비빔밥을 비롯해 삼계탕, 갈비찜, 잡채, 해물파전, 떡볶이, 닭갈비, 불고기, 구절판 등의 여러가지 메뉴를 추천해 주셨습니다. 도움을 주신 분들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 요리를 마치고 시식할 준비가 되었습니다.
ⓒ 장영미
석달 동안 끙끙 앓다

제가 참가하고 있는 전입부인들의 모임(이 지역으로 새로 이주해 온 주부들의 모임)에서 제게 한국요리를 가르쳐 달라고 제의해 온 건 지난 9월의 일이었습니다. 일본 공민관의 교양강좌에서 출발해 자습그룹으로서 갖는 첫 모임에서 였습니다.

불행히도 저는 9월의 첫모임에 불참을 했는데, 모처럼 회원 중에 한국인이 있으니 한국 본고장의 맛을 배워보자고 했다는군요. 제가 굳이 마다한다면 공민관 측에서 다른 한국인 요리강사를 섭외해 줄 것이었습니다.

그동안 제가 올린 글들을 읽어 오신 분들이라면 눈치 채셨을 겁니다. 제게 다가오는 이런 새로운 경험의 기회를 마다할 리 없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런데 제가 가진 무기라고는‘한국인’이라는 것, ‘한국에서 한국음식을 삼십여년 간 먹었다’는 것과 ‘경력 9년 차의 주부’라는 것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인 단점은 바로, 스무 명이 넘는 사람들을 상대로 요리를 가르칠 수 있을 만큼‘요리에 재능이 있는 사람은 못된다’는 것과 ‘전무후무 하다시피한 경험’입니다. 그런데도 뜬금없는 자신감과 사명감에 불타서 그 모임의 제의를 냉큼 받아들였습니다.

할 줄 아는 요리도 별로 없으면서 어정쩡하고 비리비리해 보이는 요리는 싫고, 뭔가 폼 나는 게 없을까 머릿속에 고민만 가득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한 달이 지나고, 급기야 10월 모임에서 몇 명에게 어떤 요리를 배우고 싶은지 물어보게 되었습니다.

삼계탕을 배우고 싶다는 사람, 크리스마스나 정월 초하루에 어울릴만한 요리는 없느냐는 사람, 아무 생각도 없는 사람…. 결국은 강사인 내 맘대로 하는 수 밖에 없을 것 같더군요. 대충 비빕밥과 콩나물국, 전류를 만들까 생각 중이라고 했더니, 누군가가 다음달 모임에는 레시피(요리법)를 가져왔으면 좋겠다는 겁니다.

그 사람은 바로 그 모임의 회원인‘진짜 요리강사’였습니다. 아마도 제가 부담스럽게 여겼던 이유의 70%는 아마 그녀 때문일 겁니다. 그녀는 양식과 일식 요리를 가르치는 진짜 요리 선생님이었습니다. 한국요리에 대해서는 물론 저보다 아는 게 없습니다만, 요리 전반에 관해서는 줄줄 꿰고 있었거든요.

거침없는 성격의 그녀가 무심코 내게 던지는 질문들이 초보인 제 가슴에 비수처럼 박히는 것이었습니다. 감히 초보인 제가‘프로’와 맞먹으려 했다는 게 우습지만, 결코 그녀에게 만만히 보이고 싶지 않았으니 부담스러웠을 수 밖에요.

드디어 차림표를 정하다

또 한 달을 끙끙 앓던 끝에 <오마이뉴스> 독자 분들께 S.O.S를 쳤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의 의견을 취합해보니 비빔밥과 콩나물국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더군요. 독자의견을 참고해 인터넷을 뒤져보니 비빔밥도 꽤 역사적인 음식이고, 경쟁력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제가 알고있던 것처럼 단지 남은 음식을 처리하기 위해 생긴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비빔밥의 유래와 종류 등을 설명하고 만들어 본다면 유익한 시간이 될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비빔밥’이라면 주부 경력 9년의 경험을 살려 도전해볼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독자의견을 남기신‘비빔밥 매니아’님의 의견을 살려‘바지락을 넣은 맑은 콩나물국’을 끓이기로 했구요, 곁들이로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부침게 중에서 제가 많이 해 본‘해물파전’을 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본격적인 난관은 이 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좀처럼 레시피(요리법)를 쓸 수가 없었습니다. 다른 일들에 쫓겨 시간도 없고, 왠지 마음이 어수선해서 집중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재료까지는 적겠는데 분량을 적자니 직접 만들어 보는 수 밖에 없을 것 같고, 그럴 시간은 없고, 정말 애가 탔습니다.

예비모임 및 장보기

사실 초보인 제가 혼자서 다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습니다. 모임은 몇 개의 그룹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저를 포함하여 9명이‘요리그룹’에 속해 있었고 이들이 장보기 등의 일을 도와주기로 했습니다.

11월의 모임이 끝난 후, 차림표를 두고‘진짜 요리강사’와 요리그룹의 사람들이 모여서 의견을 나눴습니다. 어떤 재료들이 필요하고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릴 지 등을 상의했는데, 대부분은 저와‘진짜 요리강사’가 결정하게 되더군요. 역시 그녀는 프로였습니다. 척 보면 척이었요.

12월초에 겨우 레시피(요리법)가 완성되었습니다. 제 딴에는 최선을 다한 걸작이었습니다. ‘진짜 요리강사’가 그걸 검토해 주기로 했고, 그녀는 분량의 표기법, 일본어의 표현 등을 고쳐주었습니다. 그리고 아주 훌륭하다고 말해주었습니다. 그제서야 제 맘이 좀 편해지더군요. 짐을 한 가지 덜었다는 생각이 들면서 말입니다.

▲ 레시피 (요리법), 드디어 만들다.
ⓒ 장영미
12월 15일. 다함께 장을 보러 가기로 한 날이었는데 날씨가 몹시 추워졌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달려 내려가는데 손도 시리고 여간 추운 게 아니었습니다. 이미 도착한 사람들끼리 ‘진짜 요리강사’를 중심으로 구입해야 할 각 재료의 양을 계산하고 있었습니다. 그거라면 제가 이미 계산해서 프린트를 해왔지요. “우와-”

다함께 장을 보러갔는데 다들 싼 물건 고르는데는 도사들이더군요. 포장된 양과 가격을 비교해서 더 싼 것을 택하는 것이었습니다. 100엔숍에는 식품도 파는 데 그곳에서 식용유, 간장, 참기름, 설탕, 소금 등을 구입했습니다. 장을 본 후 각자 부담할 재료비를 계산해 보니 약 700엔이 되더군요.

저는 마늘을 집에 가져와 4통 정도를 까서 빻아놓았습니다. 고명으로 쓸 구운 김도 부셔서 통에 담아두었고, 시어머님 특제의 고추장과 고춧가루도 담아놓았습니다. 함께 나누는 것을 좋아하시는 시어머님께서 고추장과 고춧가루도 듬뿍 보내 주셨거든요. 이렇게 쓰일 줄은 모르셨겠지만 아마 무척 좋아하실 겁니다.

결전의 날이 밝다

12월 16일 아침 9시, 사회교육센터 조리실. 강습에 앞서 조별로 재료를 나누고, 쌀도 미리 씻어 놓느라고 이른 아침부터‘요리그룹’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일을 나누니 쉽게 끝나는 게 신기할 뿐입니다. 힘을 합치면 태산도 옮길 수 있다는 말을 실감하겠더군요.

그 날은 21명이 참가했습니다.‘진짜 요리강사’는 요리그룹도 아닌데 전날의 장보기까지 도움을 주었습니다. 바쁜 일이 있다며 당일엔 불참을 했는데 몹시 섭섭하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녀는 꼭 먹고 싶다며 일이 끝나는대로 가지러 올테니 자기 것을 남겨달라고 부탁을 하더군요.

오전 10시, 제가 소개되었고, 드디어 요리강사 데뷔전에 나섰습니다. 오늘이 처음이자 마지막 출전이 될 지도 모르니 최선을 다해야겠지요.

저는 먼저 일본 주부들에게 ‘비빔밥’의 발음부터 가르쳤습니다. 모처럼의 기회이니 정확한 한국말을 배워보는 것도 좋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제가 아무리 ‘비빕밥’이라고 해도 저쪽에서는 ‘비빈바’라고 하는 겁니다. 궁여지책으로 끝‘바’하고 벌리지 말고 입을 꼭 다물어 보라고 했더니 그제서야 제대로 된 ‘비빔밥’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더군요.

제 혀가 그렇게 빨리 일본어를 구사할 수 있었다니, 새로운 자아발견의 날이었습니다. 제 자신조차도 처음 들어보는 빠른 말투로 비빔밥의 유래와 종류의 설명을 끝내고, 만드는 법의 설명을 일사천리로 끝냈습니다. 시간이 촉박하다고 느껴지니 초능력이 생긴 것 같았습니다.

5명이 한 조가 되어 4조가 부지런히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음식을 많이 접해 본 사람이 있는 조는 순조롭게 진행이 되는데 어떤 조는 엉망이었습니다. 각 조를 돌면서 시범을 보이거나 간을 보아주고, 요령 등을 설명해주었습니다.

전반적으로 진행은 순조로웠는데 마지막에 보니 다진 파와 다진 마늘의 양을 너무 많이 계산한 것 같았습니다. 각 조에서 만든 양념고추장과 양념간장을 보니, 언뜻 보기에도 파와 마늘이 두드러져 보이더군요. 무생채에도…. 순간 눈 앞이 아찔했습니다. 저 냄새를 어쩌면 좋습니까? 그 양의 1/10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은데, “우째 이런일이…”

제가 만든 레시피(요리법)는 4인분을 기준으로 작성했는데 실습에서는 6인분 정도를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분량을 조금 씩 늘려 넣으라고 얘기했던 게 화근이었나봅니다. 레시피 상으로도 파와 마늘의 분량이 좀 많다 싶었는데 거기에 다들 듬뿍듬뿍 넣기까지 했으니….

드디어 시식 시간이 되었습니다. 무생채, 콩나물무침, 표고버섯볶음, 고사리볶음, 고기볶음, 소금에 살짝 절여 짠 오이, 흰색과 노란색의 달걀지단, 김가루, 고추장 양념을 얹은 오색 찬란한 비빔밥이 완성되었습니다. 굴과 새우를 넣은 파전, 바지락 콩나물국이 곁들여졌습니다.

또한 공민관의 직원 한 분으로부터 두툼한 달걀말이를 협찬받았습니다. 그리고 후식으로는 시어머님께서 다량으로 보내주셨던 작은 약과를 한 개씩 돌렸습니다. 이리하여 영양만점의 푸짐한 식탁이 차려졌습니다.

그런데 그곳 조리실에는 비빔밥을 담을 만한 넓직한 그릇이 없었습니다. 할 수없이 일본의 돈부리(일본식 덮밥) 그릇에 담은 조도 있고, 카레라이스 접시에 담은 조도 있었습니다. 비벼야하는 관계로 후자 쪽의 선택이 탁월했지요.

저도 함께 먹었고, 여기저기서 맛있다는 얘기가 들렸지만 제 신경은 온통 파와 마늘에 가 있었습니다. 한국인인 제게도 몹시 강하게 느껴졌는데 익숙하지않은 일본 주부들은 오죽했을까요. 식후에 몇몇이 껌을 꺼내 씹더군요.

일본 주부들의 반응

모두들 저를 비롯한 요리그룹에서 몇일에 걸쳐 꼼꼼이 준비한 것에 대해 감격해했습니다. 특히 제가 빻아 간 마늘과 고추장이 담긴 병을 신기하게 쳐다보며 이것저것 묻더군요. 어떤 이는 제게 고추장 담그는 법을 가르쳐 달라하질 않나, 심지어 약과를 만들 줄 아느냐고 물어서 곤혹스러웠습니다.

와중에 제가 조별 사진을 찍었는데 이메일로 보내주면서 한마디 씩 감상을 얘기해 달라고 했더니 몇 명에게 답이 왔습니다. 대부분 맛있었고, 고마웠다는 말과 함께 당장 만들어 먹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음식점에서 먹었던 것 보다 훨씬 맛있었다는 얘기, 어린 아이들도 고추장까지 넣어 먹었다는 얘기, 채소를 싫어하는 아이도 비빔밥에 넣은 채소는 남김없이 먹었다는 얘기, 돌솥을 사서 돌솥비빔밥도 만들겠다는 얘기, 해물파전도 만들어 먹었다는 얘기, 다른 한국요리도 배우고 싶다는 얘기, 그리고 ‘마늘 냄새가 독했지만’이란 토를 단 글도 있었습니다. 좀 찔끔 하더군요.

대부분 아주 만족스러웠다고 얘기해주었습니다. 다른 친구에게도 가르쳐주겠다고 하는 이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들 고추장에 관심이 많더군요. 시중에 나와있는 고추장은 너무 달고 비싸다고요.

‘진짜 요리강사’에게도 메일이 왔습니다. 제가 먼저 감사하다는 메일을 보내려고 했는데 재빠른 그녀가 그 날 저녁에 당장 메일을 보내왔더군요. 불참해서 미안하다고, 정말 맛있었다고, 다른 요리도 가르쳐달라고, 특히 고추장이 맛있었다고(마늘, 파 범벅이었는데), 수고했다고요. 정말 고마웠습니다. 내내 그녀를 부담스럽게 생각했지만 사실 그녀에게 물심양면으로 많은 도움을 받았지요.

몸져눕다

강습이 끝난 후 다들 차를 마시러간다는데 도무지 기력도 없고, 아이가 돌아올 시간도 되어서 저는 그냥 거기서 헤어졌습니다. 집에 돌아오니 온 몸에서 진이 다 빠져나간 것 같고, 맥이 탁 풀리는 게 느껴졌습니다. 석달 동안 짓눌렸던 짐을 벗어던지고나니 몸이 붕 뜨는 것 같고, 힘이 없었습니다.

소파에 누워 가벼운 잠에 빠졌는데 몹시 추웠습니다. 그리고는 곧바로 몸살감기를 앓기 시작했지요. 몸은 부들부들 떨리고, 두통에 코막힘까지, 밤새 잠을 설치기를 며칠 째 하고 있습니다. 남편 생일에다 크리스마스도 끼었는데 정말 죽겠네요.

‘다시는 요리강사 안한다’고 굳게 다짐을 하긴 했는데, 누군가 다시 저를 부르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마늘 냄새 안나는 참신한 비빔밥을 가르치러 나서야하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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