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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잡이 배가 잠시 쉬고 있다
고기잡이 배가 잠시 쉬고 있다 ⓒ 느릿느릿 박철
교동에 들어와 산 지가 꼬박 7년이 되었습니다. 가끔 사람들이 어떻게 해서 교동에 들어와 살게 되었냐고 묻습니다. 그러면 나는 어정쩡하게 대답을 합니다. 어떻게 하다 보니 예까지 오게 되었다고 대답하면 기자들은 더 꼬치꼬치 캐묻습니다. 내가 교동에 무슨 특별한 사명을 갖고 온 줄로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하루는 낮잠을 자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교동에서 목회하고 있던 후배 윤 목사의 전화였습니다. 윤 목사가 대뜸 "형, 교동에 와서 목회하고 싶은 생각 없어요?"하고 물었습니다. 그냥 지나가는 말로 한 말이었습니다. 그때 내가 경기도 화성군 남양면에서 목회하고 있었는데 거기서도 만7년을 넘게 살고 있을 때였습니다. 후배가 나를 불러 주어서 교동에 오게 되었습니다.

교동에 오기 바로 직전에 사실은 기존의 제도권 목회를 그만두고 처가의 고향에 내려가서 농사를 지으며 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나같이 농사가 몸에 배지도 않고 천성이 게으른 사람이 무슨 농사꾼이 되겠습니까? 그럼에도 내가 하도 집요하게 그 문제에 집착을 했더니 아내도 선선히 내 생각을 따라 주었습니다.

마침 처가 쪽에서 시골에 남에게 도지를 준 논과 밭이 있으니, 내 힘으로 할 만큼만 농사를 짓고 어느 정도 목에 풀 칠 할 정도가 되면 작은 수도원 공동체, 일종의 가톨릭의 피정의 집 같은 걸 하고 싶었습니다. 장인 장모께서도 쾌히 승낙을 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잘 될 줄 알았던 일이 어찌된 영문인지 일이 꼬이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여기 다 적을 수도 없겠고 결국은 일이 틀어져 모든 계획이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조금 허탈했습니다.

우리 어머니가 살고 계신 작은 토담집
우리 어머니가 살고 계신 작은 토담집 ⓒ 느릿느릿 박철
바로 그때 후배 윤 목사가 나를 불러 준 것입니다. 해서 교동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교동에 와서 제일 많이 받아 본 질문은 "교동에 와서 살아보니 어디 살 만합니까?"였습니다. 그럼 뭐라고 대답을 하겠습니까? "그냥 그럭저럭 살지요"하고 대답할 수밖에요. 교동에 이사 온 지 서너 달 지나서 공책에 적은 놓은 다음과 같은 낙서를 발견했습니다.

"교동엔 공장이 하나도 없어서 좋다. 차가 많지 않으니 좋다. 지나가다 오줌 마려우면 아무 데고 눈치껏 처리할 수 있어 좋다. 길에 중앙선도 없고 신호등이 없어서 좋다. 돈 쓸 일이 없어서 좋다. 바다 구경 실컷 하게 되어서 좋다. 북녘 땅이 지척에 있어서 좋다. 숲이 많아서 좋다. 들이 넓으니 속이 시원해서 좋다. 물이 오염되지 않아서 좋다. 쌀이 좋으니 좋다. 도둑이 없으니 좋다. 애들 학교가 가까워서 걸어 다닐 수 있으니 좋다. 태풍도 피해가는 곳이라니 좋다. 이도성씨가 오토바이 타고 씩하고 웃으며 지나가니 좋다. 앞으로 더 살아보아야 하겠지만 사람들도 친절한 것 같으니 좋다."

처음 교동에 대한 감상문이 지금은 어떠한가? 그게 중요하겠지요. 교동은 사방(四方)이 바다고 섬이 주는 독특한 느낌은 7년 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아니 더욱 친숙해졌다고 하겠습니다. 돌아다니기 좋아하고 장돌뱅이 기질이 있는 내가 어지간하면 외출을 안 하려고 하는 걸 보아서 절반은 섬사람이 되었는가 봅니다.

교동 들놀이 연습 장면
교동 들놀이 연습 장면 ⓒ 느릿느릿 박철
교동에 온 지 며칠 안 되어 처음으로 식사 초대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야말로 상다리가 휘어질 정도로 음식을 차려 놓았습니다. 감사 기도를 하고 제일 먼저 손이 가는 반찬은 역시 김치였습니다. 김치를 입에 넣는 순간부터 코끝에서 대단히 역겨운 냄새와 느낌이 전달되었습니다. 점잖은 체면에 그걸 상위에 뱉을 수도 없고 씹지도 못하고 우물거리다 간신히 삼켰습니다. '고수'라고 하는 향신료였습니다.

꼭 당근 이파리같이 생겨서 돼지고기를 구워 싸먹기도 하고 김치를 담글 때 양념 재료로 넣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 말이 "고수를 못 먹으면 교동 사람 아닛시다"고 합니다. 아직까지 고수를 즐겨먹을 만큼 되지는 않았지만 이맛살을 찌푸릴 만큼 고역은 아닙니다.

교동은 사계절의 모습이 확연히 구분됩니다. 봄에 모내기를 한 풍경은 중학생 신입생들이 머리를 빡빡 깎고 보름쯤 지난 모습 비슷합니다. 그러나 일단 모내기를 한 논은 매일 그림이 달라집니다. 그러나 추수 때가 되면 온 논이 황금 물결을 이룹니다. 들판을 바라보기만 해도 부자가 된 듯합니다. 그러나 가을걷이를 마친 논은 바둑판처럼 논의 경계가 드러나고 겨울 철새들이 떼를 지어 하늘을 비행합니다. 빈 들판을 바라보노라면 인간의 욕심이나 허명이 다 사라지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우리집 식구들 단체 출사. 교동향교 앞에서
우리집 식구들 단체 출사. 교동향교 앞에서 ⓒ 느릿느릿 박철
교동이 내게 전해주는 가장 익숙한 화두는 '기다림'입니다. '기다림'이 친구처럼 느껴져야 합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기다림'을 동반합니다. 뭍으로 나가거나 교동으로 들어오려면 배를 기다려야 합니다. 배를 기다리는 것은 여느 대중 교통 수단을 기다리는 것과는 조금 다릅니다. 요즘은 물때와 상관없이 배가 다니지만 3년 전만 해도 물때에 걸리면 보통 한 시간 이상 어느 때는 서너 시간을 배를 기다려야 할 때도 있었습니다.

교동 사람은 크게 지루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기다림이 몸에 배어 불편하게 느끼지 못할 정도로 익숙해 있습니다. 또 섬 지역이다 보니 태풍이 불거나 안개가 심하면 배를 운항할 수 없습니다. 바람이 잦아질 때까지 안개가 걷힐 때까지 무작정 기다려야 합니다.

어느 때인가는 인천에서 아들 결혼식이 있어서 바다 건너 창후리에 대절 버스를 대놓고 동네 사람들이 배터에 나왔는데 안개가 심해서 배가 다니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서너 시간이 지나서도 안개가 걷히지 않자 하는 수 없이 결혼식에 가는 건 포기하고 대신 대룡리 식당에서 피로연을 한 적도 있었습니다.

7년 동안 달라진 것도 많습니다. 우리가 처음 교동에 왔을 때 건강하게 걸어 다니시던 분들이 지금은 허리나 다리가 아파 걸어 다니지 못하고 절절 매십니다. 세상을 떠나신 분들도 대략 20명이 넘습니다.

그때 우리집 은빈이가 돌도 안 지났는데 내년에는 초등학교 2학년에 올라갑니다. 그때 30대 젊은이들이 이제 다 40대가 넘었습니다. 40대 초반이던 나도 이제 곧 50대에 진입하게 됩니다. 애들을 더는 낳지 않으니 초등학교 애들 숫자가 점점 줄어듭니다. 이제 지석초등학교 학생수 절반도 더 줄어 전교생이 40명밖에 되질 않습니다.

넝쿨이와 은빈이. 초등학교 2학년 때 이사온 넝쿨이가 이제 중학교 2학년이 된다
넝쿨이와 은빈이. 초등학교 2학년 때 이사온 넝쿨이가 이제 중학교 2학년이 된다 ⓒ 느릿느릿 박철
섬 생활은 단순합니다. 자연의 리듬에 내 몸을 맡기면 내 삶이 편안해 집니다. 아내와 아이들도 섬 생활에 잘 적응하는 것 같습니다. 아내는 얼치기 농사꾼인 나에 비해서 훨씬 부지런합니다. 농사지식도 많이 늘었습니다. 작은 텃밭을 가꾸면서 땅이 가져다주는 생명의 신비와 재미에 빠져듭니다.

내가 땀 흘려 가꾼 것을 거두어들이는 기쁨은 해보지 않은 사람은 잘 모릅니다. 감자 씨를 뚝뚝 잘라 얼마 안 심었는데, 하지(夏至) 지나 감자를 캘 적에 감자가 주렁주렁 달려 나오는 걸 보면 그 기쁨을 뭐라 표현할 수 없습니다.

새벽 미명(未明) 차츰 어둠이 걷히는 순간, 번잡한 생각은 다 물러가고 나의 내면은 깨끗한 기운과 고요함으로 충만해 집니다. 아침이면 우리집을 찾아오는 반가운 손님이 있습니다. 까치입니다. 어느 때는 한낮에도 찾아옵니다. 좀더 정확하게 얘기하면, 우리집에서 키우는 개(방울이) 집을 찾아옵니다. 개 집 앞, 방울이 밥그릇에 남은 밥찌꺼기를 먹으러 찾아옵니다. 방울이와 까치는 친구가 되었습니다. 까치가 자기 밥을 먹어도 방울이는 절대 짖지 않습니다.

까치가 밥을 먹는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습니다. 까치도 방울이를 전혀 경계하지 않습니다. 방울이가 자기 집에서 나와 서성거려도 까치는 방울이 밥을 먹습니다. 얼마나 평화롭고 정겨운 아침풍경인지 모릅니다. 아침에 "까까~"하는 소리가 들리면 까치가 방울이 집을 방문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방울이와 까치가 밥을 나누어 먹는다
방울이와 까치가 밥을 나누어 먹는다 ⓒ 느릿느릿 박철
교동에 들어와 산 지 만 7년 사람들이 "교동에 와서 살아보니 어디 살 만합니까?"하고 묻는다면 처음보다 대답할 말이 많아졌습니다. 이제 반쪽이 아니라 온전한 교동사람이 되도록 이제 더 긴 호흡을 하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덧붙이는 글 | 위 기사는 월간잡지 해피데이스에 송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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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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