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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오늘 저는 한밤중에 달리기를 했습니다. 김밥집 야간 아르바이트로 일하는 시간이었으니 남들처럼 운동을 위해 거리를 뛰었을리는 만무합니다. 네온 사인이 반짝거리는 거리에서 뛸 수밖에 없었던 것은 돈을 내지 않고 뛰어가는 손님을 잡기 위해서였습니다.

술을 많이 마신 것 같았던 그 손님은 가게로 들어와서는 혀가 꼬인 목소리로 김밥 한 줄을 달랬습니다. 술에 취한 손님들은 다른 손님과 달리 주문한 내역을 다시 확인해야 합니다. 종종 시비거리로 번지기 때문입니다. 그 손님에게 다시 "김밥 한 줄 포장해 드릴까요?"라고 물으니 말 없이 고개를 끄덕입니다. 김밥 한 줄을 꺼내 썬 다음 알루미늄 호일로 쌌습니다. 그 다음 단무지와 함께 건내려고 돌아서니 그 손님이 테이블에 앉아 젓가락을 들고 있더군요.

여기서 드시고 갈거냐고 물으니, 죄송하다며 그렇게 하겠답니다. 포장을 풀어 다시 접시에 담고 깍두기와 장국을 내어드렸습니다. 쉼 없이 울려대는 휴대폰 벨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을 보니 술을 많이 마신 모양이었습니다. 급기야 술기운에 몸을 앞으로 밀어 멀쩡한 테이블을 주르르 밀기까지 합니다. 제가 "손님!"하고 부르니 놀란 듯 머리를 한 번 흔듭니다. 그리고는 김밥을 하나 집어 입속으로 넣어 버립니다.

잠시 뒷마당에 물건을 가지러 갔다 왔더니 그 손님이 테이블 위에 엎드려 있더군요. 저는 빨리 다가가서 손님을 불러 깨웠습니다. 몇 번을 부르고 테이블을 잡아 당기니 그제야 고개를 듭니다. 그러더니 죄송하다고 하고는 남아 있는 김밥을 먹어치우기 시작했습니다.

가게에서 뻗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고, 뒤돌아서는 순간 갑자기 그 사람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는 가게 문쪽으로 걸어갔습니다. 저도 그 손님 뒤를 따라 계산대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무슨 일입니까? 계산대 앞에서 서야 하는 그 손님이 곧장 문을 열고 나가더니 마구 뛰기 시작하는 게 아닙니까.

그 손님의 갑작스런 행동에 놀라 저도 바로 따라 뛰었습니다. "손님! 계산 안하셨는데요!"라고 외치면서 말입니다. 저보다 약 10m가량 앞서 달리던 그 사람은 제 말을 듣고도 멈출 생각을 안합니다. 제 목소리가 컸는지, 아니면 한밤중에 앞치마를 휘날리며 달리는 풍경이 웃겼는지 지나가던 몇몇 사람들이 멈추어서 저를 쳐다봅니다.

정말 황당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다시 한번 소리를 지르니, 거리에 서서 그 광경을 보던 어떤 사람이 뛰어가던 그 사람을 향해 "어이, 총각! 계산하고 뛰소!"라고 말을 합니다. 그때서야 사태를 파악했는지 그 사람은 멈춰 서서 뒤를 돌아봅니다.

그리고는 저에게 걸어와서 지갑을 뒤집니다. 천원짜리 한 장을 찾는 것 같았는데, 잔돈이 없는지 계속 지갑을 이리저리 뒤지더니 오천 원짜리 한 장을 저에게 건넵니다. 저는 그 돈을 받아들고 가게로 걸어와 잔돈을 챙겼습니다. 그 손님은 잔돈을 받기 위해 가게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김밥 먹고 계산하는 것을 까먹은 사람이 잔돈 받는 것은 어쩜 그렇게 잘 기억하는지 신기할 따름입니다.

잔돈을 건내니, 역시나 취기가 약간 오른 듯한 구경꾼이 저에게 박수를 칩니다. 무슨 용감한 시민이나 된 것 같습니다. 잔돈을 건네고 가게로 다시 들어오니 나오는 것은 웃음뿐입니다.

술이 뭔지 술에 취한 손님들의 계산을 할 때 종종 일이 생깁니다. 주방의 일이 바빠 거들고 있을 때에는 주방으로 돈을 건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동을 한 그릇 먹고는 얼마냐고 물어서 "2000원입니다"라고 하니, 주머니에서 천 원짜리를 한 장 꺼내 선반 위에 올려 놓고는 잘 먹었다고 하고 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슬쩍 보았을 때는 2000원으로 보였는데 나중에 확인해 보니 1000원이더군요.

하루는 음식을 다 드시고는 너무도 당당하게 "잘 먹었습니다"라고 말하고 문쪽으로 걸어가는 손님이 있었습니다. 간혹 선불로 계산하는 분들이 있기도 하고, 제가 여기저리 왔다 갔다하는 사이 주방 이모에게나 사장님에게 계산을 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그 분도 그런 경우인가 싶었습니다.

그래도 혹시나 해서 조심스럽게 "손님, 계산 하셨습니까?"라고 물으니, 그 분은 "아차!"이러면서 돈을 꺼냅니다. 그 사람은 술에 취한 상태도 아니었고, 노쇠로 인한 기억력 감퇴를 걱정할 나이까지는 안되어 보였습니다. 이게 다 세상이 너무도 빨리 돌아가니 깜빡깜빡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정말로 깜빡 잊고 지갑을 들고 오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한 분은 준비해 둔 음식을 그대로 두고서는 다시 집으로 가서 돈을 들고 오셨습니다. 음식이 식었을 것 같아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제가 얼굴을 아는 분이 아니니 말입니다.

제일 기억에 남는 분은 2000원 짜리 음식을 포장하고는 지갑을 깜박 잊고 왔다면서 1400원을 주시고는 나머지는 내일 주시겠다고 한 분입니다. 그 '내일'이 지난 지 한 10일은 되어가는 것 같은데, 그분은 다시 오시지 않습니다. 사실 1400원에 음식을 내어 줄 때도 그렇게 큰 기대를 한 것은 아니었지만, 약간 실망스러운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그래도 혹시 압니까? 몇 년이 지나서 익명의 편지와 함께 들어있는 600원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르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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