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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는 한밤중에 달리기를 했습니다. 김밥집 야간 아르바이트로 일하는 시간이었으니 남들처럼 운동을 위해 거리를 뛰었을리는 만무합니다. 네온 사인이 반짝거리는 거리에서 뛸 수밖에 없었던 것은 돈을 내지 않고 뛰어가는 손님을 잡기 위해서였습니다.
술을 많이 마신 것 같았던 그 손님은 가게로 들어와서는 혀가 꼬인 목소리로 김밥 한 줄을 달랬습니다. 술에 취한 손님들은 다른 손님과 달리 주문한 내역을 다시 확인해야 합니다. 종종 시비거리로 번지기 때문입니다. 그 손님에게 다시 "김밥 한 줄 포장해 드릴까요?"라고 물으니 말 없이 고개를 끄덕입니다. 김밥 한 줄을 꺼내 썬 다음 알루미늄 호일로 쌌습니다. 그 다음 단무지와 함께 건내려고 돌아서니 그 손님이 테이블에 앉아 젓가락을 들고 있더군요.
여기서 드시고 갈거냐고 물으니, 죄송하다며 그렇게 하겠답니다. 포장을 풀어 다시 접시에 담고 깍두기와 장국을 내어드렸습니다. 쉼 없이 울려대는 휴대폰 벨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을 보니 술을 많이 마신 모양이었습니다. 급기야 술기운에 몸을 앞으로 밀어 멀쩡한 테이블을 주르르 밀기까지 합니다. 제가 "손님!"하고 부르니 놀란 듯 머리를 한 번 흔듭니다. 그리고는 김밥을 하나 집어 입속으로 넣어 버립니다.
잠시 뒷마당에 물건을 가지러 갔다 왔더니 그 손님이 테이블 위에 엎드려 있더군요. 저는 빨리 다가가서 손님을 불러 깨웠습니다. 몇 번을 부르고 테이블을 잡아 당기니 그제야 고개를 듭니다. 그러더니 죄송하다고 하고는 남아 있는 김밥을 먹어치우기 시작했습니다.
가게에서 뻗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고, 뒤돌아서는 순간 갑자기 그 사람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는 가게 문쪽으로 걸어갔습니다. 저도 그 손님 뒤를 따라 계산대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무슨 일입니까? 계산대 앞에서 서야 하는 그 손님이 곧장 문을 열고 나가더니 마구 뛰기 시작하는 게 아닙니까.
그 손님의 갑작스런 행동에 놀라 저도 바로 따라 뛰었습니다. "손님! 계산 안하셨는데요!"라고 외치면서 말입니다. 저보다 약 10m가량 앞서 달리던 그 사람은 제 말을 듣고도 멈출 생각을 안합니다. 제 목소리가 컸는지, 아니면 한밤중에 앞치마를 휘날리며 달리는 풍경이 웃겼는지 지나가던 몇몇 사람들이 멈추어서 저를 쳐다봅니다.
정말 황당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다시 한번 소리를 지르니, 거리에 서서 그 광경을 보던 어떤 사람이 뛰어가던 그 사람을 향해 "어이, 총각! 계산하고 뛰소!"라고 말을 합니다. 그때서야 사태를 파악했는지 그 사람은 멈춰 서서 뒤를 돌아봅니다.
그리고는 저에게 걸어와서 지갑을 뒤집니다. 천원짜리 한 장을 찾는 것 같았는데, 잔돈이 없는지 계속 지갑을 이리저리 뒤지더니 오천 원짜리 한 장을 저에게 건넵니다. 저는 그 돈을 받아들고 가게로 걸어와 잔돈을 챙겼습니다. 그 손님은 잔돈을 받기 위해 가게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김밥 먹고 계산하는 것을 까먹은 사람이 잔돈 받는 것은 어쩜 그렇게 잘 기억하는지 신기할 따름입니다.
잔돈을 건내니, 역시나 취기가 약간 오른 듯한 구경꾼이 저에게 박수를 칩니다. 무슨 용감한 시민이나 된 것 같습니다. 잔돈을 건네고 가게로 다시 들어오니 나오는 것은 웃음뿐입니다.
술이 뭔지 술에 취한 손님들의 계산을 할 때 종종 일이 생깁니다. 주방의 일이 바빠 거들고 있을 때에는 주방으로 돈을 건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동을 한 그릇 먹고는 얼마냐고 물어서 "2000원입니다"라고 하니, 주머니에서 천 원짜리를 한 장 꺼내 선반 위에 올려 놓고는 잘 먹었다고 하고 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슬쩍 보았을 때는 2000원으로 보였는데 나중에 확인해 보니 1000원이더군요.
하루는 음식을 다 드시고는 너무도 당당하게 "잘 먹었습니다"라고 말하고 문쪽으로 걸어가는 손님이 있었습니다. 간혹 선불로 계산하는 분들이 있기도 하고, 제가 여기저리 왔다 갔다하는 사이 주방 이모에게나 사장님에게 계산을 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그 분도 그런 경우인가 싶었습니다.
그래도 혹시나 해서 조심스럽게 "손님, 계산 하셨습니까?"라고 물으니, 그 분은 "아차!"이러면서 돈을 꺼냅니다. 그 사람은 술에 취한 상태도 아니었고, 노쇠로 인한 기억력 감퇴를 걱정할 나이까지는 안되어 보였습니다. 이게 다 세상이 너무도 빨리 돌아가니 깜빡깜빡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정말로 깜빡 잊고 지갑을 들고 오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한 분은 준비해 둔 음식을 그대로 두고서는 다시 집으로 가서 돈을 들고 오셨습니다. 음식이 식었을 것 같아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제가 얼굴을 아는 분이 아니니 말입니다.
제일 기억에 남는 분은 2000원 짜리 음식을 포장하고는 지갑을 깜박 잊고 왔다면서 1400원을 주시고는 나머지는 내일 주시겠다고 한 분입니다. 그 '내일'이 지난 지 한 10일은 되어가는 것 같은데, 그분은 다시 오시지 않습니다. 사실 1400원에 음식을 내어 줄 때도 그렇게 큰 기대를 한 것은 아니었지만, 약간 실망스러운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그래도 혹시 압니까? 몇 년이 지나서 익명의 편지와 함께 들어있는 600원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르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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