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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에게 무척 잘 어울리는 트레이닝 패션을 보여주지 못함이 아쉬울 따름입니다. 헤어지기 전 찍은 친구의 모습.
ⓒ 김대홍
"야. 너 거기 한 번 가봐라. 애경 구로백화점에서 양복 한 벌 싸게 팔거든. 아래 위 합해서 3만원 밖에 안하는데 정해놓은 기간 동안에는 품절되지 않고 판매한다."

어제 저녁을 함께 먹기로 한 친구인 광호가 저를 만나자마자 대뜸 내뱉은 말입니다. '짠돌이'라고 불리는 친구인지라, 알뜰시장에 대한 고급정보를 인사말로 내민 것이지요. 경기가 어려울수록 더 빛이 나는 게 바로 이 친구의 짠 생활입니다.

이날 그가 입고온 12만원짜리 양복은 8년째 입고 있는 옷입니다. 이 옷은 엉덩이가 낡아서 다려도 줄이 서지 않을 정도랍니다. 결혼식 이전까지 신던 구두도 아버지가 2년 신던 것을 기워서 3년을 더 신은 것입니다.

"12만원이면 너무 고가 아냐?"하고 놀렸더니 6만원짜리 양복이 있다고 털어놓더군요. 할인점에 가서 윗도리 한 벌, 아랫도리 두 벌에다가 우겨서 조끼까지 구입했으니 한 벌 반에 해당하는 가격입니다. 의류점에 가서 옷값을 깎다가 도저히 불가능하면 옷걸이라도 얻어오는 친구니 그 모습이 상상이 되더군요.

그의 알뜰함은 때로 엽기적인 생활를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양복 아래바지가 오래돼 아랫단이 너덜너덜해졌는데 그걸 스탬플러로 박아서 다닌 적이 있습니다. 청바지가 오래돼 흰 실이 드러났을 때는 파란 수성펜으로 깜쪽같이 칠했는데 그날 저녁 허벅지에 퍼렇게 물이 들어 한동안 고생했다는 일화도 있습니다.

차에 얽힌 일화도 엽기에 가깝습니다. 대학 졸업후 꽤 괜찮은 직장에 입사했던 그는 얼마 뒤 티코를 구입했습니다. 주위 동료들이 "아반떼 정도는 타야지" "아무리 낮게 잡아도 프라이드는 타는 게 좋겠는데"하고 이야기했지만 친구는 "티코면 과분하다"며 회사에서 유일한 티코 드라이버가 됐습니다.

그 뒤 차 뒷부분에 달린 날개가 부러진 적이 있었는데 이 친구는 수리비를 아낀다며 아예 날개를 뽑아버렸습니다. 백미러가 부러졌을 때는 타이어용 고무로 동여매고 다닌 적도 있습니다.

이러한 짠돌이 정신이 있었기 때문에 20대에 집도 구입하고 아버지에게 버스도 사드릴 수 있었겠지요. 통장 여섯 개를 갖고 있던 이 친구는 점심값을 아끼기 위해 집에 가서 밥을 먹고 오는 부지런함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요즘에는 자전거로 출퇴근을 한다는 군요.

친구는 알뜰함이 세상을 즐겁게 사는 한 방법이라고 말합니다. 적은 돈으로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에 경제불황과 상관없이 자신의 삶을 이어갈 수 있다는 것이지요.

운동을 무척 좋아하는 친구는 헬스클럽 한 번 다니지 않고도 근육질 몸매를 뽐내고 있습니다. 회사 내에 3만원대의 잘 갖춘 헬스장이 있지만 장갑 끼고 동네를 달리는 것으로 대신합니다. 책을 잔뜩 집어넣은 배낭을 드는 것을 포함해 그에게는 갖가지 근육훈련 방법이 있습니다.

그의 알뜰함은 때로 어머니를 괴롭히기도 합니다. 일회용 기저귀 비용을 아껴야겠다고 결심한 친구가 '아토피성 피부염'의 위험성을 들며, 면 기저귀 사용을 은근히 권유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알뜰함이란 결국 쓰레기를 줄이는 것이기 때문에 환경운동과도 통한다며 친구는 목소리를 높입니다.

그의 알뜰함 때문에 회사 동료들도 고통(?)을 당합니다. 팀 서무인 그가 회비를 관리하기 때문에 회식도 마음놓고 하기 힘들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한 때 '시어머니'라는 별명을 가진 적도 있답니다.

이처럼 알뜰하던 친구도 서울 생활을 한 뒤에는 많이 약해졌다고 털어놓습니다. 회사에 입사해서 100만원이 넘는 봉급을 받았을 때는 저축만 열심히 하면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답니다. 그런데 서울에 와서 어마어마한 물가를 경험한 뒤로는 쓸 때는 쓰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든답니다. 그래서 요즘은 어디에 꼭 써야 할지를 많이 고민한답니다.

많이 녹록해졌지만 친구의 짠돌이 생활은 앞으로도 계속될 듯합니다. 진정한 짠돌이 예찬론을 펼치는 친구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 있었거든요.

"진짜 짠돌이에 비하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야. 자신에게는 엄격하고 남에게는 후한 사람이 진짜 짠돌이지. 삶에 대한 강인한 의지와 생에 대한 즐거움을 잃지 않는 그런 짠돌이가 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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