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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석
"보람이야 시민들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모시는 거지 별거 있겠어요?"

잠시 쉬던 장철우(59)씨의 얼굴에 이제야 여유가 묻어난다. 경력 27년의 베테랑 버스 운전기사라지만 운전대 앞에선 항상 긴장할 수밖에 없나 보다. 운전에 방해된다 생각해 라디오며 음악이니 하는 것도 일절 듣지 않는 그다.

ⓒ 김진석
그는 4·19국립묘지부터 동대문을 순환하는 127번의 버스 운전기사다. 127번 버스 노선을 책임진 지는 올해로 20년째다. 오늘은 한달에 한번 꼴로 돌아오는 첫차를 책임지는 날. 전날 밤 11시 30분까지 근무하고는 새벽 3시 55분 출발하는 첫차를 위해 집 대신 기숙사에서 잠을 청했다.

새벽길 나서는 첫차 버스기사에겐 새벽이 주는 '희망'과 첫차가 주는 '시작'의 의미보단 잠도 제대로 못자고 나서는 '고단함'이 더 크다.

"무엇보다 잠을 자지 못하니까요. 많이 자야 서너 시간이니 아무래도 힘들죠."

ⓒ 김진석
작년 한해 유난히도 버스 운전기사의 사건 사고가 신문에 자주 등장했다. 술 취한 승객들이 버스 기사를 폭행하는 일이 잇따랐고, 운전기사를 위한 보호 장치 이야기도 끊임없이 거론됐다.

"전 없어도 될 거 같아요. 요즘엔 많이 좋아졌어요. 예전에 진짜 심했죠. 차가 조금이라도 늦게 도착하면 욕부터 했어요. 도로 사정이 좋지 못해 차가 밀려서 늦게 왔지만 승객들이 어디 이해를 하나요? 그냥 듣고 있어야죠. 같이 싸우면 되나요?"

자식뻘 되는 승객들의 욕지거리에도 그는 말 한마디 못했다. 물론 남에게 싫은 소리 잘 못하는 그의 성격 탓이기도 했다.

ⓒ 김진석
"첫차 나가는 거죠?"

대기하고 있던 첫차에 올라타는 승객이 한마디 한다. 첫차 이용객의 대부분은 노인분들이나 빌딩 청소 또는 길거리 상인들이라고 한다. 캄캄한 어둠 속으로 두 명의 승객을 태운 월요일 첫차가 그렇게 출발한다.

"요즘은 손님이 정말 없어요. 물론 노선이 좋은 데는 다르지만요. 마을버스가 구석구석 다 다니는 데다가 지하철을 많이 이용하니까 이제는 정말 손님을 찾으러 다니는 거라니까요."

지난 27년의 세월 동안 참 많은 것이 달라졌다. "오라이"를 외치던 버스 안내원이 사라졌고, 몇 십 원이었던 서울 시내버스 요금은 700원으로 올랐다. 그와 함께 서울의 모습도 많이 달라졌을 텐데 그는 그저 "높은 빌딩이 무척 많아진 것이 가장 많이 변한 거 같다"고 말한다.

ⓒ 김진석
동대문을 거쳐 한바퀴 돌고 종점에 도착했을 때는 5시 40분경. 승객이 다 내린 것을 확인한 그가 마지막으로 내린다. 말을 붙이려는 찰나 갑자기 그가 뛰기 시작한다. 그가 뛰어들어간 곳은 구내 식당. 식판 가득 밥을 담아온 그가 숨 돌릴 틈도 없이 숟가락을 놀리기 시작한다.

다음 차 시간까지는 고작 이삼십 여분 정도 여유가 있을 뿐이다. 식사하고 커피 한 잔 마시기엔 빠듯한 시간이다. 그나마 첫차인 덕분에 정체가 없어서 그렇지 평상시엔 화장실 가기도 바쁘단다.

ⓒ 김진석
"아마 83년이었지요. 그때 길음 시장에서 손님 한 분이 시장 바구니를 두고 내렸어요. 그걸 학생들이 가지고 내리려는 것을 보고 내가 가져왔는데 그 손님이 버스를 따라왔더라고요. 시장 바구니를 돌려줬더니 그 자리에 앉아 엉엉 울더라고요.

알고 보니 2700만원이 들어있었던 거예요. 당시 돈 2700만원이면 정말 큰 돈이었죠. 부부가 10년 동안 모은 돈으로 집을 장만하려고 가던 길이었데요. 그런 돈을 찾아줬으니 뿌듯했죠. 그 일이 가장 기억에 남고 아직까지도 잊혀지지가 않아요."

ⓒ 김진석
내후년엔 그도 운전대를 놓고 정년퇴직을 한다. 지난 시간 돌아보면 나쁜 일보다는 좋은 일이 더 많았기에 그는 그리 헛되이 살진 않았다고 믿는다. 단지 안타까운 건 당뇨병으로 고생하는 아내다. 그렇기에 그는 평생의 소원이 아내가 하루 빨리 낫는 것이란다.

마지막으로 그가 조심스럽게 꼭 간직해뒀던 꿈 하나를 고백한다.

"예전에 길거리에서 부모가 버린 아이를 고아원에 데려다 준 적이 있어요. 그때 너무 마음이 아팠어요. 그때부터 언젠가는 고아원을 설립해서 아이들을 돌봐주고 싶은 꿈이 생겼어요. 꿈이 이루어지면 얼마나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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