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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5월 20일 서명된 소파 합동위원회 각서. 반기문 당시 외무부 미주국장(우측 아래)의 서명이 선명하다
1991년 5월 20일 서명된 소파 합동위원회 각서. 반기문 당시 외무부 미주국장(우측 아래)의 서명이 선명하다 ⓒ <뉴스위크> 한국판
청와대가 반기문 전 청와대 외교보좌관을 신임 외교통상부 장관으로 임명한 것에 대해 외부 비판이 거세다. 외교통상부 직원들의 '친미 사대주의'를 문제삼아 윤영관 전 외교통상부 장관을 경질한 뒤 오히려 그 보다 더 친미적인 인사를 임명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후폭풍이 몰아닥칠 것으로 알고 움추렸던 외교통상부 직원들은 반 장관 임명에 "살았다"는 안도감을 느끼며 환영하고 있다.

특히 반 장관은 한국이 천문학적인 용산미군기지 이전 비용 전액을 미국의 요구대로 부담하기로 한 1990년 양해각서와 합의각서의 법적 효력이 문제가 되자, 지난 1991년 외무부 미주국장으로 재직할 당시 이 각서들의 법적 효력이 있다고 한 소파합동위원회 각서에 사인을 한 인물이다. 이 소파합동위원회 각서는 지난해 10월20일 발매된 <뉴스위크 한국판>에 전문이 실려있다.

17일 취임식 직후 연 기자회견에서 반 장관은 "91년 외무부 미주국장 때 당연직 소파 합동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사인을 한 것은 관계 기관 사이에 다 합의된 것을 행정적으로 처리한 것에 불과하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그의 해명은 '반 미주국장이 미국의 압력을 받고 사인했다'는 91년 5월 당시 안기부 문건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지난해 10월20일 현 열린우리당 안영근 의원(당시는 통합신당)이 국회 질의 때 이 안기부 문건을 들고 나와 반기문씨를 비판했었다.

안 의원은 "불평등하고 위헌요소가 다분한 90년 합의각서와 양해각서를 법적으로 유효한 문서라고 인정한 사람이 현재 청와대 외교 보좌관으로 있다"며 "현재의 외교안보팀으로는 불평등한 한미관계를 지속시켜 바람직한 한미동맹관계를 해치게 되고, 국익도 지키지 못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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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년 소파합동위원회 각서(본문)

1.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 제2조 2항은 대한민국과 미합중국 정부는 시설과 구역이나 그 일부가 대한민국에 반환되어야 할지의 여부나 추가 시설과 구역을 제공하여야 할 것인지의 여부에 대하여 합의할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2. SOFA 제5조 2항은 대한민국은 SOFA의 유효기간동안 미국에게 부담을 과하지 아니하고 제 2·3·4조의 규정에 따라 모든 시설과 구역, 통행권을 제공할 것임을 규정하고 있다.

3. 위 1·2항에 따라 합동위원회는 1990년 6월 25일 주한미군사령관과 한국 국방장관이 서명한 '서울도심지소재 미군부대의 이전을 위한 기본합의에 관한 대한민국 국방부와 주한미군사령부간의 합의각서'라는 이름의 합의가 SOFA 제2조와 5조 하에 시설과 구역을 제공하기 위해 합법적이고 구속력이 있다는 것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이 합의는 합의각서(MOA) 제9조의 적절한 용어에 따라 제169차(SOFA)합동위원회 의사록에 기록될 것이다. 더불어 기본 합의각서(MOA)와 이의 양해각서(MOU)는 SOFA 규정에 따라 유효할 것이다.
소파합동위 각서가 더 문제

국내 언론들은 외교통상부 북미국이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가는 용산미군기지 이전 협상에서 대미 굴종적인 자세를 취했고 이에 외교통상부 조약국이 반발한 것을 '자주파-친미파' 갈등의 핵심으로 보도했다.

이 문제의 근원은 한국이 미군기지 이전비용 전액을 부담하기로 한 지난 1990년 용산미군기지 이전과 관련된 한미 양해각서와 합의각서는 물론 이 각서들이 법적 효력이 있다고 반기문 현 장관이 1991년 사인해준 소파합동위원회 각서에 있다.

지난 1990년 용산 미군기지 이전과 관련된 한미 양해각서와 합의각서는 한국이 미군기지 이전과 관련된 모든 비용과 용역, 서비스까지 다 부담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내용은 △모든 건물은 미국 기준에 맞춰 건설 △이전하는 동안 발생하는 미군 기지 안 각종 복지·휴양 시설의 손실을 한국이 금전 보상 △기지 이전 중 미국 요원 및 한국 고용인 등이 입은 손실에 대해 금전 보상 △주한 미군 가족 및 모든 정규·비정규 고용인들의 이사 비용 한국 부담 △문서 번역료 등 행정경비까지 전액 한국 부담 등이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1990년 당시 용산기지를 정상적으로 이전할 경우 비용이 16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됐다"며 "그러나 이 각서대로 진행된다면 이전 비용은 당시에도 6배나 늘어난 96억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됐다"고 말했다.

90년 합의·양해각서가 작성되자마자 국가나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조약 등은 국회의 동의를 얻도록 한 헌법 제60조를 위반해 위헌이라는 의견이 강력하게 제기됐다.

또 주한 미군에게 시설과 구역을 제공하려면 소파 합동위원회를 통해 협의하고 양국 대표가 서명해야 하는데도 이들이 아닌 당시 이상훈 국방부 장관과 존 메네트레이 주한 미군사령관이 직접 서명했다. 이는 기관상의 약정일 뿐 국가간의 약정이 될 수 없어 무효라는 논란이 일었다.

이런 논란을 의식한 한미 양국은 이미 존재하는 소파의 규정에 따라 90년 합의·양해 각서가 법적 효력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각서를 체결했다. 이 각서에 소파 합동위원회 한국 대표인 반기문 당시 외무부 미주국장과 로널드 포글먼 주한미군 부사령관이 서명한 것이다.

90년 합의·양해 각서에는 한국이 최악의 상황을 피할 수 있는 조항이 있다. 90년 합의각서 '제9조 유효일시'는 "만약, 하기(下記) 최종 서명 이후 어느 한쪽이 정부내 검토결과 본 합의각서 또는 어떤 부분을 수용할 수 없다고 하면, 합의각서 전체를 법적 효력이 없는 것으로 간주한다"는 규정이 있다.

그러나 91년 소파 합동위원회 각서는 "1990년 6월 25일 서명된 미군 부대 이전을 위해 한미 양국이 서명한 합의각서가 합법적이고 구속력이 있는 것으로 인정한다"며 "기본합의각서(MOA)와 이의 양해각서(MOU)는 소파 규정에 따라 효력이 발생할 것"이라고 규정했다. 즉 소파합동위원회 각서는 90년 합의각서의 9조 조항을 무력화시켰다.

미국이 용산미군기지 이전 협상에서 '절대 양보할 수 없다'며 배짱을 부렸던 것은 90년 각서보다는 오히려 91년 소파 합동위원회 각서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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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 신임 외교통상부 장관
반기문 신임 외교통상부 장관 ⓒ 오마이뉴스 이종호
"반기문씨가 미 압력에 굴복 사인"

91년 당시 외무부 미주국장이었던 반기문씨가 사인한 것은 과연 단지 '관계 기관 사이에 다 합의된 것을 행정적으로 처리한 것'에 불과했을까? 그러나 1991년 5월 작성된 안기부 정세보고 문건은 전혀 다른 상황을 기술하고 있다.

91년 5월 안기부가 작성한 '용산미군기지 이전 합의각서관련 대책 필요'라는 제목의 문건에 의하면, 한국 외무부 내부에도 각서가 법적인 효력이 없다는 의견이 강했다. 그러나 소파 합동위원회 한국 쪽 대표인 반기문 당시 외무부 미주국장이 미군으로부터 협박을 받고 견디다 못해 서명한 것으로 나와있다.

안기부 문건은 당시 정황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이번 합의각서의 미측 실제 서명권자인 포글만 주한 미군 부사령관은 5.13 외무부 반기문 미주국장을 방문해, '외무부 내에 동 각서가 법적인 효력이 없어 무효라는 주장이 있다는데, 청와대에 공식 항의하겠다'면서 동 각서의 합법성을 인정한다는 내용(미군측이 일방적으로 작성)의 서류에 서명할 것을 강요했다.

반 국장은 그간 국방부가 '군사비밀'을 이유로 외무부에 이첩을 보류해 오다 최근에야(5.8) 합의각서의 사본을 전달, 아직 검토중임을 들어 서명을 거절해 왔으나, 미군측의 반발을 의식하여 5.20 서명했다.

(외무부 안에서는) 88.7 '주한 미군숙소로 무상대여한 내자호텔을 반환받는 조건으로 48억원을 지급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맞서온 유광석 미주국안보과장이 미군측의 로비로 전보(일본연수)된 바 있어, 반 국장도 같은 사례로 피해를 입을 것을 우려하여 서명할 수밖에 없었다는 자조적인 분위기마저 산견(散見)되고 있다."


즉 △미군 쪽이 반기문 국장에게 각서의 합법성을 인정하라고 자신들이 일방적으로 만든 서류에 서명할 것을 강요했으며 △반 국장은 처음에는 검토중이라며 서명을 거절했으나 △결국 미국의 압력에 굴복해 서명했으며 △외무부 안에서는 미국의 불합리한 요구에 저항했던 한 과장이 좌천된 사례가 있어 반 국장이 자신도 이같은 피해를 입을까 두려워 서명했다고 본다는 것이다.

소파 합동위원회 각서는 91년 5월 15일 한국과 미국 쪽 소파 합동위원장이 체결한 것으로 되어있다. 그러나 반기문 미주국장이 서명한 것은 그로부터 5일 뒤인 91년 5월 20일이다. 따라서 소파 합동위원회 각서에 "1991년 5월 20일 긴급조치에 의해 승인되다"는 문구가 들어있다.

안기부 문건은 "90년 합의각서가 소파 합동위원회에서 서명한 것이 아니어서 무효고 무엇보다 국회의 동의를 받지않아 위헌이라는 주장이 있다"며 "주한 미군도 90년 합의각서가 소파에 위배된다고 보고, 사후에라도 합법적 명분을 확보하기 위해 한국 외무부측의 자인서를 얻으려 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91년 5월 반기문 청와대 외교보좌관(당시 외무부 미주국장)이 미국의 압력에 굴복해 각서에 서명했다는 내용이 담긴 안기부 정세보고 문건
91년 5월 반기문 청와대 외교보좌관(당시 외무부 미주국장)이 미국의 압력에 굴복해 각서에 서명했다는 내용이 담긴 안기부 정세보고 문건 ⓒ 오마이뉴스

91년 5월 안기부 문건의 반기문 당시 미주국장 관련 부분
91년 5월 안기부 문건의 반기문 당시 미주국장 관련 부분 ⓒ 오마이뉴스
아리송한 자주파-친미파 논쟁

이렇게 문제가 많은 90년 양해각서와 합의각서, 91년 소파합동위원회 각서는 과거 정권은 물론 현 정권에서도 공개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이는 90년, 91년 협상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청와대의 외교·안보 라인을 장악한 탓으로 파악했다. 즉 자신들의 과거 잘못이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해 계속 감춰놓았다는 것이다.

반기문 장관은 직전까지 청와대 외교보좌관으로 재직했고, 김희상 청와대 국방보좌관은 과거 청와대 안보정책비서관 등으로 용산기지 이전 협정에 관여했다. 이런 상황인데 반기문 청와대 외교보좌관이 다시 외교통상부의 수장이 된 것이다.

지난 15일 정찬용 청와대 인사수석은 윤영관 장관을 경질한 배경가운데 하나로 "외교부에서 참여정부의 외교노선과 관련해 혼선과 잡음이 있었고, 최근의 일련 사태에 대해 지휘 감독 책임을 못했다"며 "과거의 의존적 대외정책에서 벗어나지 못한 일부 직원들이 참여정부의 자주적 외교노선을 이해하지 못한 채 공사석에서 구태적 발상의 발언들을 반복적으로 해왔다"고 설명했었다.

그러나 반 장관의 임명으로 청와대는 자기가 한 말을 뒤집었다. 윤 장관의 친미관을 비판해왔던 시민단체들은 윤영관 전 장관의 경질로 자주적인 외교 안보라인이 구축될 것을 기대했다. 그러나 반기문 새 신임장관 임명에 허탈을 넘어 분노하고 있다.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과 '민족화해자주통일협의회'는 17일 성명을 내고 "청와대는 외교부 안 사대주의자들과 큰 입장 차이가 있어서 문제가 발생한 것처럼 떠들었다"며 "반기문씨는 90년 용산 미군기지 이전 관련 각서의 불법성을 인식하고서도 이를 합법적인 것으로 조작하려는 미국의 강요에 순순히 굴복해 국익을 중대하게 훼손한 사람이다. 그를 윤 장관보다 더 숭미적인 반씨를 외교통상부 장관으로 임명하는 것은 국민에 대한 기만"이라고 비판했다.

이 단체는 "청와대는 윤 장관 경질을 겉으로는 대통령 뜻에 따라 '실용주의적 자주외교'를 못한 것에 대한 문책으로 포장하고 있다"며 "그러나 반씨를 외교부 장관에 앉힘으로써 그것이 대통령 모욕에 대한 화풀이와 군기잡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님을 스스로 고백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단체는 "청와대가 자주를 말하려거든 그에 걸맞는 모습을 보여주든지, 자주를 실현할 능력과 용기가 없다면 더 이상 국민을 우롱하지 말고 '자주'라는 용어를 더럽히지 말 것을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청와대가 왜 느닷없이 '자주파-친미파' 논쟁을 일으키면서 윤 장관을 경질했는지 의문이 남게됐다. 민주노동당이 지난 15일 윤영관 전 장관 경질과 관련해 낸 논평에 상당한 해답이 들어있는 것으로 보인다.

"과연 노무현 대통령이 현재의 외교부와 갈등을 빚을 만큼의 자주적 노선을 견지해 왔던가. 미국방문 때의 정치범수용소 발언, 이라크 파병결정, 북핵사태에 있어서의 미국 눈치보기 등 자주적 노선과는 현저히 멀었던 노 대통령이 갑자기 자주적 외교노선을 거론하며 윤 장관을 전격 경질한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동안 비자주적 노선으로 비판받아왔던 노 대통령이 윤 장관과 외교부를 희생양 삼아 자신을 자주적 대통령으로 포장하려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노 대통령이 진정으로 자주적인 대통령으로 평가받고 싶다면 본인부터 자주적 대통령으로 탈바꿈하고자 하는 노력을 하고, 향후 자주적 외교노선을 구현할 수 있는 후임 장관을 임명하는 등의 조치를 실행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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