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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강훈
옷매무새 가다듬기가 끝나면 교문으로 들어간다. 우리 학교의 경우, 조금 높은 지형에 위치해 있던 터라 올라 갈수록 교문이 보이고, 그리고 교문을 지난 학교의 정경이 조금씩 보인다.

교문을 조금 지난 곳에 항상 그분이 계셨다. 체육선생님. 그분의 별명은 꽤나 겁이 난다. 그 별명은 다름 아닌‘조폭’. 그분의 명성 만큼이나 무서운 분이시라는 것, 중학교를 갓 졸업한 신입생 녀석들이 아니라면 전교생 모두 다 아는 사실이다.

교문을 향해 조금씩 조금씩 걸어 올라가다 보면 그분의 모습이 더 잘 보인다. 매를 들고 날카로운 눈매를 빛내며 학생들을 하나하나 꼼꼼히 뜯어보시는 모습. 상황이 이렇다 보니 매일 아침 긴장하지 않을 수 있는 학생들이 얼마나 될까.

그러나 어차피 통과해야 할 관문, 오히려 교문 앞에 다다르면 학생들의 발걸음은 빨라진다. 그 이유는 앞에 가던 아이가 걸리면 당장 그 아이는 학교 안으로 도망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앞에 가던 한 친구가 선생님께 부름을 받았다.

“야! 너 이리와 봐”

선생님께 호명된 치는 순간 표정을 일그러뜨린다. ‘아! 걸렸구나.’ 그 다음 순서는 확연하다.

“너, 머리가 이게 뭐야. 지저분하잖아. 안 되겠어. 이리 따라 들어와.”

교문 바로 앞에 있는 수위실로 그 친구는 따라 들어간다. 그리고 그때부터 선생님의 가위질은 시작된다. 그러나 소리는 난잡하지 않다. “철컥!” 청아하기까지 한 그 짧은 금속음은 단 한번뿐이다. 선생님은 가운데 머리 몇 가닥을 모아 한줄기를 만드신 다음 싹둑 자르실 뿐이었다.

선생님의 의사는 단호한 것 같았다. 꼭 말씀을 하시지 않아도 그 단호함은 이렇게 말해주는 듯했다. “자식이, 저렇게 가운데를 짧게 잘렸는데 다른 곳을 안 자르고 배기겠어?”라고.

그렇게 가운데 머리가 싹둑 잘린 친구는 교실에 가서 인기인이 된다. 웃음거리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억지로 머리를 잘린 데다 놀림까지 받는 기분은 오직 당사자만이 알 수 있을 것이다(나 자신도 당사자다).

학교에서는 두발 단속을 당한 아이에게만큼은 손쉽게 조퇴증서를 끊어주었다. 관대하게도 어서 그 보기 싫은 머리를 잘라버리고 타의 모범이 되는 머리 모양을 가지라는 의미에서 그런 것일까?

조퇴하고 머리를 말 그대로 빡빡 밀어버린 친구가 교실에 들어온다. 한 친구는 그 모습을 보고 “빡빡아 머리 감자!”라고 한다.

ⓒ 서강훈
다른 친구는“어쩜 그리 시원하게도 잘랐냐. 보는 내가 시원하다야. 근데 춥지 않냐?” 한다.

“그만 놀려!”

머리를 잘린 친구는 다른 치들을 뿌리치며 그냥 웃고 만다. 친구들이 건 얄궂은 농에 화를 내지 못하고, 웃음으로 받아넘기고 마는 것이다. 그런데 웃지만 말자. 친구의 웃음은 쓴웃음이다.

올해에도 선생님들은 학교 후배들의 단정함을 위해서 항상 애쓰실 것이다. 비꼬는 것이 아니라 그분들도 지침을 받고 어쩔 수 없이 교칙을 위반하는 학생들을 처벌하시는 것이다. 학생인 나로서도 이해할 수 있다. 다만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질서를 유지하기에 앞서 우리의 입장이 되어서 한번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선생님들은 또 우렁찬 목소리로 한 아이를 겁먹게 만들 것이고, 강제로 머리를 자를 것이다. 부디 이제는 머리를 잘리는 비애와, 머리를 잘렸을 때 선생님을 바라보는 반목의 눈빛을 의식하시길 바란다.

우리는 선생님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어리지 않다. 적어도 불만을 강하게 느낄고, 현 상황의 문제점을 직시할 만큼의 생각할 능력을 가지고 있다. 다만 우리는 선생님들을 존경하기 때문에 과거에도 그랬지만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어려서 머리를 기를 이유가 없다고 여기는 선생님들이 서 계시는 교문. 어느 학교나 별로 경우가 다르지 않다고 하는 그곳은 우리에겐 적어도 아침 만큼은 두려운 곳이다. 두려운 곳을 매일 지나쳐야 할 후배들이 우리들이 느꼈던 비애감 만큼이나 가엾게 느껴진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인터넷신문 하니리포터와 아크로넷에도 송고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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