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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제일 맛있다는 돼지갈비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는 돼지갈비 ⓒ 느릿느릿 박철
아내와 결혼한 지 만 19년이 되었다. 아내와 결혼하고 나서 1년쯤 구들장 신세를 지다가 강원도 정선에서 첫 목회를 시작했다. 그때 아내와의 약속이 우리가 아무리 가난하게 살더라도 한달에 한번 외식을 하자는 것이었다. 애들도 없었을 때였다.

교회에서 한달 5만원 생활비를 받던 시절, 아내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찾은 곳은 중국집이었다. 주머니 사정상 자장면 아니면 짬뽕을 즐겨 먹었다. 질보다는 양이 우선이었다. 정선읍내에서 양을 제일 많이 주는 곳을 찾았다. 한 달에 한번 외식하러 갈 때면 아내의 표정이 밝아진다. 아내를 오토바이 꽁무니에 태우고 속력를 낸다. 천하에 부러울 것이 없었다.

그로부터 애들이 줄줄이 사탕처럼 생겼다. 한달에 한번 외식은 계속되었다. 정선에서 4년을 조금 넘게 살다가 경기도 화성으로 이사 가서도 중국집을 찾았다. 거기에서도 일단 양을 많이 주는 중국집을 찾았다. 오토바이 휘발유통에 큰아들 아딧줄을 태워 기저귀로 내 허리에 묶고, 오토바이 짐받이에 아내가 넝쿨이를 포대기로 업고 탄다. 그렇게 하고 자장면을 먹으러 우리가 살던 동네에서 남양읍내로 나갔다.

아저씨! 여기 자장면 곱빼기요!

▲ 갈비를 맛나게 먹는 은빈이

외식하면 우리집 식구는 언제나 ‘자장면 짬봉’이었다. 결혼한 지 만 19년, 지금까지 꽤나 외식을 했다. 목회 초, 강원도 정선에서 살 때도 남편과 외식을 했다. 십리 길을 걸어서, 짐 자전거 뒤에 타고, 또 오토바이 뒤에, 승합차에…. 탈 것은 바뀌었지만 메뉴는 언제나 같았다. 결혼 초 둘이서도 애들이 하나 둘 셋일 때도 메뉴는 동일했다. 그래서 애들도 외식하면 당연히 중국집인줄 안다.

남편은 외식은 자장면 짬봉 아니면 안되는 줄 아는 모양이다. 남편의 자장면에 대한 신념에는 이런 일화도 있다. 정선에서 살 때였다. 내가 처녀 적에 좋아했던 '함박스테이크'도 '하이라이스'도 먹고 싶다고 했지만 가는 곳은 항상 허름한 중국집이었다.

남편이 또 자장면을 시킨다. 내가 “또 자장면이야? 우리 수준 좀 높이자”고 했더니 “그래? 알았어.” 선선히 대답을 한 남편의 다음 말, “여기 자장면 곱빼기요!” 아이고, 손들었다. 그 다음부터 ‘자장면 곱빼기’는 외식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등장하는 나의 단골 메뉴가 되었다. / 김주숙
아이들이 자장면이나 짬뽕을 얼마나 잘 먹던지 국물까지 다 먹는다. 넝쿨이가 7살 때였다. 자기 취향대로 자장면이나 짬뽕을 먹는데, 넝쿨이는 얼큰한 짬뽕을 좋아했다. 음식을 맛있게 다 먹고 나왔는데 넝쿨이 표정이 심상치 않다. 아내가 넝쿨이에게 묻는다.
“넝쿨아. 너 표정이 왜 어둡니? 어디 아프니?”

어리버리한 넝쿨이가 말을 잘 안한다. 아내가 자꾸 되묻자 넝쿨이가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조금 전에요. 짬뽕 국물을 남겼거든요. 사실은 국물이 먹고 싶었는데 아빠가 빨리 나가자고 해서 그냥 나왔어요.”

아뿔싸, 짬뽕국물이 먹고 싶었던 것이다. 넝쿨이 손을 잡고 3층 중국집으로 뛰어올라갔다. 다행히 그릇을 치우지 않았다. 남긴 짬뽕국물을 다 마시고 내려왔다. 아딧줄은 자장면을 잘 먹었다. 이 녀석은 자장면 면발을 다 집어먹고 나서 반드시 젓가락으로 남은 건더기를 하나도 남김없이 먹었다. 그리고 혓바닥으로 설거지가 필요 없을 정도로 나머지 국물도 다 핥아먹는다. 좀 심한 거 아닌가.

아내가 늦둥이 은빈이를 낳자마자 교동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교동에 와서도 한달에 한번 외식은 계속되었다. 여전히 중국집을 찾았고 메뉴도 자장면 짬뽕이었다. 중국집에 갈 때마다 자장면을 먹을 것이냐, 짬뽕을 먹을 것이냐 이것이 문제였다.

그러면 자장면 짬봉을 반반 시켜 반쯤 먹다가 바꿔먹는다. 주머니 사정이 좋으면 이따금 탕수육도 시켜 먹는다. 은빈이는 탕수육을 한점한점 먹을 때마다 ‘맛있다’는 말을 한다. 은빈이가 어쩌다 탕수육이 먹고 싶어 발동이 걸리면 며칠이고 탕수육 타령을 한다.

갈비먹으러 간다고 은빈이가 쫙 빼입고 애교를 떤다
갈비먹으러 간다고 은빈이가 쫙 빼입고 애교를 떤다 ⓒ 느릿느릿 박철

어제 저녁이었다. 설도 이틀밖에 남지 않았고, 아내와 애들에게 기분 좀 낼까 해서 갈비 먹으러 가자고 했더니 다 좋다고 한다. 그런 일이 처음이었다. 전에도 몇 번 갈비 먹으러 가자고 하면 은빈이를 제외하고, 두 아들은 머릿속으로 돈 계산을 하며 “안돼요. 우리 식구들이 배불리 먹으려면 돈이 얼만데 우리 고기 사다가 집에서 구워 먹어요” 해서 한번도 음식점에 고기를 사먹은 적이 없었다.

물론 손님들이 오셔서 음식점에 가서 삼겹살을 사먹은 적은 몇 번 있었지만 돼지갈비는 처음이었다. 은빈이는 갈비 먹으러 간다고 들떠 있었다. 은빈이가 내 서재에 들어와서 애교를 떤다.

“아빠! 나 이쁘지? 내가 분홍색을 좋아하는데 바지는 하늘색을 골라 입었어. 아빠! 나 좀 봐봐. 어울리지?”
“은빈아! 어울린다는 게 뭔데?”
“아빤 그것도 몰라? 어울린다는 말은 둘이 잘 어울린다는 거야.”


승합차를 타고 대룡리 음식점에 갔다. 이미 전화로 예약을 해서 음식상이 차려져 있었다. 숯불양념돼지갈비이다. 은빈이는 탕수육을 먹을 때처럼 또 ‘맛있다’는 말을 연발한다.

“엄마 아빠, 내가 세상에 태어나서 이렇게 맛있는 음식은 처음 먹어봐.”
“엄마 아빠, 우리 또 갈비 먹으러 오자”


가정의 행복이 갈비 한 저름으로도 만들어진다.
가정의 행복이 갈비 한 저름으로도 만들어진다. ⓒ 느릿느릿 박철

두 아들은 자기들 먹으랴 고기 굽는 엄마 싸주랴 바쁘다. 서로 아내를 주려고 해서 정체현상이 일어나기도 한다. 흐뭇하다. 이제 우리집 외식 메뉴를 자장면 짬봉에서 돼지갈비로 업그레이드해야 할 모양이다.

고기를 배불리 먹고 밖으로 나왔더니 함박눈이 쏟아진다. 기분이 좋은지 승합차안에서 모두 콧노래를 부른다. 모레가 설날이다. 새해에도 우리집 식구 모두 건강하고 화목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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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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