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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그리워하면서도 한번도 만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늘 가보고 싶어 하면서 한번도 가보지 못한 곳도 있다. 무등산 규봉암이 내게는 그런 곳이었다.

주변에 잘 아는 사람도 없었고 가끔 본 지도나 책에서 규봉암은 너무나 멀었다. <암자 가는 길>이라는 책에서 규봉암을 처음 만난 이후로 그 곳은 내 마음속에 늘 그리운 절집, 가까이하기엔 너무나 먼 당신(?)이었다.

창밖에 희끗 희끗 눈발이 날린다. 문득 그 눈 속에 잠겨있을 규봉암엘 가보고 싶어졌다. 마음이 변하기 전에 주섬주섬 챙겨 입고 서둘러 길을 나선다.

무등산장 코스, 장불재 코스, 이서 코스. 지도를 보니 이서 쪽에서 올라가는 길이 그래도 제일 쉬워 보인다. "그래 이서 코스다!" 수만리를 지나 만연산과 안양산 자락을 끼고 돌면서 구불구불 이어지는 이서 가는 길이 환상의 드라이브 코스라는 생각도 힘을 보탰다.

길을 못 찾아 돌아다오기를 몇 번. 시골 노인네를 붙잡고 길을 묻기를 또 몇 번. 드디어 등산로를 찾아 오르기 시작한다.

앞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쭉쭉 뻗은 솔밭이 장관이다. '무등산에 이런 원시림이 있었구나.' 새삼스럽다. 눈 온지가 며칠이 지났건만 토끼 길 같은 산길에는 눈이 그대로다. 인적 하나가 없다. 무섭도록 조용한 산길. 그저 재를 넘는 바람 소리만 가득하다.

그 눈길에는 20센티가 넘을 것 같은 짐승 발자국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꽤나 큰 놈 같다. 어떤 짐승일까? 이런저런 생각을 붙잡고 산을 오르는데 사람 발소리가 반가운 듯 山竹이 자꾸 옷소매를 부여잡는다.

아무도 가지 않은 눈길을 걷는 기분이 상쾌하다. "비록 눈이 내린 들판을 가더라도 발걸음을 흐트러뜨리지 말지니, 오늘 내가 가는 길은 바로 뒤에 오는 사람들의 이정표가 될 것이니...."(踏雪野中去 不須胡亂行 今日我行跡 遂作後人程)라고 했던 사명대사의 말씀이 생각나 따라오는 발자국을 돌아보곤 했다.

발목이 빠질 만큼 나뭇잎이 쌓인 길. 발끝에 느껴지는 촉감이 기분 좋다. 허나 이내 길이 가파르게 치달으면서 숨이 턱에 찬다. 속옷이 땀에 물초를 한다. 아무데나 걸터앉아 바람에 헝클어진 머리를 감으며 마시는 커피 향이 진하다. 가슴을 데워오는 그 따스함이 더욱 좋다.

쉬다가 걷다가 쉬다가 걷다가…. 잘 모르는 초행길이라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길이다. 슬슬 지루할 때쯤 저기거니 싶은 일군의 바위들이 보인다. '고지가 바로 저긴데…' 갑자기 불끈 힘이 솟는다.

드디어 '규봉암 20미터'라는 안내판과 함께 만나는 세 갈래길. "다 왔구나". 엄청난 바윗돌들. 열 명은 족히 둘러앉아도 좋을 듯한 바위들이 판자처럼 평평하다. 반석들이 서로 베고 누운 이 돌밭이 이름 그대로 광석대. 광석대는 입석대, 서석대와 더불어 무등산 3대 석대의 하나로 손꼽힌다.

서석, 입석이란 '섰다'는 우리말과 한자어가 짬뽕으로 만들어진 이름들이다. 규봉에는 광석대 이외에 송하, 광석, 풍혈, 장추, 청학, 송광, 능엄, 법화, 설법, 은신 등 십대(十臺)가 있으며 광석대 뒤쪽에는 지진으로 윗 부분이 부러진 채 관음석이 버티고 서있다.

쳐다보니 계단 위에 우뚝 마주 서는 범종루. '무등산 규봉암'(無等山 圭峯庵). 멋들어지게 쓴 편액이 지친 나그네를 반갑게 맞는다. 규봉 입구 왼편에는 수직으로 곧게 뻗은 두개의 돌기둥이 나란히 서있다. 여래존석과 미륵존석. 그 두 기둥 위에 일부러 올려놓은 듯 걸려있는 바위 하나가 관음존석. 더불어 삼존석(三尊石)이란다.

원래는 이 삼존석을 규봉이라 불렀을 만큼 깊은 뜻이 숨어있는데 관찰사나 고을 현감이 이 돌기둥에 커다랗게 이름을 새겨 다녀간 흔적을 남겨 놓았다.(同福守金棋中) 한말에 동복 현감을 지냈던 그 이름의 주인은 고려대학교의 설립자이자 이 나라 부통령을 지냈던 인촌 선생의 양부란다. 그 바위에 깊이 새겨진 이름에서 예나 지금이나 세속의 욕심을 만난다.

우뚝 우뚝 선 바위 기둥들이 병풍처럼 암자를 둘러싸고 있는 규봉암 마당에 서니 화순 모후산, 순천 조계산, 장흥 제암산, 광양 백운산…. 남도의 명산들이 겹겹이 운해 속에 섬처럼 아련히 떠있다. 방랑시인 김 삿갓으로 유명한 김병연이 손 때 묻은 지팡이를 안고 마지막 숨을 거두었던 물염적벽은 건너뛰면 닿을 듯이 저만치 내려다보인다. 해돋이나 해넘이 장소로서 그만일 것 같다.

앞으로는 일망무제의 산, 산, 산…. 뒤로는 바위, 바위, 바위…. 지금껏 내가 무등산을 허트로 보았구나. 내가 아는 무등은 무등이 아니었구나. 후회의 마음들이 성난 고기 비늘처럼 일제히 일어선다. '금강산을 보지 않고는 고려를 보았다고 말하지 말라'는데 이 곳 규봉이야 말로 '규봉암을 보지 않고는 무등산을 보았다 말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규봉은 자로 잰 듯 마름질한 돌기둥이 솟아있어 입석대와 닮았지만 돌기둥의 폭이 큰 것이 특징. 마치 옥을 깎아 병풍처럼 둘러놓은 것 같은 선돌과 바위틈에서 자라는 소나무와 5월이 되면 갖가지 색깔의 옷을 입은 철쭉이 흐드러지면 그야말로 선경일 것 같다. 이런 비경이야말로 긴 고행 끝에나 만날 수 있는 것이어야 마땅하다.

일찍이 이곳을 찾았던 육당 최남선은 '세계적으로 이름난 금강산에도 부분적으로는 여기에 비길 경승이 없으며, 특히 서석대는 마치 해금강의 한쪽을 산 위에 옮겨 놓은 것 같다'고 극찬하기도 했다.

의상대사가 창건했다는 이 암자는 규봉이 두 팔을 벌려 감싸 안고 있는 듯한 형국. 의상대사는 암자 뒤에 있는 바위틈에서 쉴 새 없이 물이 흐르는 것을 보고 이곳에 절터를 잡았다고 한다. 이렇게 높은 곳(해발 950m)에 암자를 세운 것도 충분한 물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보조국사 지눌과 진각국사 혜심이 주변에 있는 삼존석과 십대에서 불도를 닦았다고 전하는 것을 보면 상당히 유서 깊은 고찰이다. 비록 지금 규모는 작지만 조선시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규봉사라고 적고 있는걸 보면 고려 후기에는 상당히 큰 사찰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암자 뒤 석간수에 목을 축이니 속세에서 묻은 때를 깨끗이 씻어내리는 듯 이름 그대로 청정수다. 처마 끝에 매달린 풍경이 운다. 대웅전 기둥에 기대 서서 그 소리를 듣는다. 설편에 묻어오는 태고적 음향에 귀 기우리노라니 신선이 된 듯 어깨 밑이 간지러워 온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날자. 다시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

스님이 황토를 비벼 직접 지었다는 귀틀집 요사채. 좁은 안마당은 그대로가 너럭바위다. 절 방을 데울 장작 벼늘이 눈발 속에 정겹다. 마루에 걸터앉아 물끄러미 어지럽게 날리는 눈발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옛날 외우고 다녔던 김진섭의 백설부의 일 절을 떠올린다.

"…온 천하가 얼어붙어서 찬 돌과 같이도 딱딱한 겨울날의 한가운데, 대체 어디서부터 이 한없이 부드럽고 깨끗한 영혼은 아무 소리도 없이 한들한들 춤추며 내려오는 것인지 비가 겨울이 되면 얼어서 눈으로 화(化)한다는 것은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규봉에 살으리랏다. 규봉에 살으리랏다. 운무 더불고 규봉에 살으리랏다.' 규봉이 좋아 이십 년도 넘는 세월을 이 후미진 암자에 살고 있다는 스님은 황토방 구들 놓던 이야기 끝에 불쑥 한마디를 던진다.

"명예가 어디 있어. 그게 무슨 소용이야. 그거 다 사람들이 만들어낸 것이지 없어." 암자 마당에서 만난 어떤 분이 내게 "저 양반 체구는 저렇게 작달만하지마는 대단하신 분입니다." 우리나라 불교계 전체에서도 끗발이 아주 세서 저 양반의 사인이 없이는 돈 한 푼 쓸 수 없다고 귀 뜸 해준 터라 더욱 그 말이 가슴에 와 닿았다.

무등산은 경지가 가장 높아서 더불어 견줄 것이 없는 무유등등(無有等等)의 존재, 즉 부처님을 뜻한다고도 하고, 태조 이성계가 나라를 얻기 위해 전국 명산을 돌며 기도할 때 산신이 현몽하여 사람 간에 차등이 없는 나라를 세우라고 한데서 유래가 되었다고도 하는데, 어느 것이 맞는지는 내 실력으로는 알 수도 가늠해 볼 수도 없다.

아무튼 무등산은 큰 산이다. 그러면서도 백두나 한라처럼 민민한 산이다. 해발 1200이나 되는 매우 높은 산이지마는 산행 길은 산책길처럼 완만한…. 그래서 어머니 같은 산이다.

실제 광주의 어머니 산이다. 그래서 그 품은 언제나 넓고도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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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전공은 광고크리에이티브(이론 & 실제)이구요 광고는 물론 우리의 전통문화나 여행 그리고 전원생활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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