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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3일 김대중도서관 개관식에서 만나 얘기를 나누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3일 김대중도서관 개관식에서 만나 얘기를 나누고 있다.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설을 맞이해서 민심을 잡기 위한 정치권의 치열한 '총력전'이 펼쳐지고 있다.

정국 운영의 패를 쥐고 있는 정부여당은 '선물 보따리'를 한꺼번에 풀어헤치는 고전적인 수법을 쓰고 있고, 힘없는 야당은 배수진(背水陣)의 '극약 처방'으로 맞서고 있다. 고속철 4월1일 조기 개통 및 고령화 사회 대책으로 포장한 '정년 60살 강제 적용', 그리고 병역 추가 단축 검토 및 병역특례 유지 같은 조처들이 전자(前者)라면, 조순형 민주당 대표의 '대구 출마' 선언과 김홍일 의원의 민주당 탈당 및 무소속 출마 선언은 후자에 해당한다.

그 중에서도 특히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의 '호남표'를 잡기 위한 신경전이 가장 치열하게 전개되는 느낌이다. 현재의 의석 분포를 기준으로 보면 광주-전남(민주당)과 전북(열린우리당)으로 맞서 있는 듯한 호남의 근거지를 차지하기 위해서도 그렇지만 역대 선거 때마다 박빙의 승부를 벌였던 수도권에서 호남표의 향방은 대세를 가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설 앞두고 대북사면 특별사면 검토로 여론 떠보기

청와대가 설을 앞두고 일부 언론에 대북송금 관련자에 대한 특별사면 검토 가능성을 슬쩍 흘려서 여론 떠보기를 시도한 것도 호남표를 의식한 것이다. KBS가 지난 17일(토) 밤 9시뉴스에서 머릿기사로 내보낸 "노 대통령, 대북송금 관련자 특별사면 결심" 보도가 그것이다.

그러나 특별사면이 '총선용'이라는 비판이 적지 않고 정작 사면의 '수혜' 당사자인 김대중(DJ) 전 대통령 측에서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자 이 '특종'은 빛이 바랜 느낌이다. 보도 다음날까지도 "대북송금 관련자에 대한 사면을 추진하고 있다"고 보도를 뒷받침하던 청와대 관계자들이 그 이튿날부터 "아무 것도 확정된 바 없다"고 발을 뺐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사면 방침 자체가 없어진 것은 아니지만, 예상과 달리 역풍 또한 만만치 않다. 보수·반북(反北)당을 자처하는 한나라당과 자민련이 '반민족 행위에 사면이 웬말이냐'라고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예상했던 바이다. 민주당이 사면 그 자체에는 반대하지 않으면서도 "병 주고 약 주냐"고 시니컬한 반응을 보이는 것도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문제는 DJ 측근 인사들조차 노무현 정권이 남북관계를 고려한 전임 대통령의 고도의 통치행위를 정치적 판단에 따라 사법심사의 대상으로 끌어들였으니 그 매듭 또한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결자해지(結者解之)론을 내세우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다는 점이다. DJ는 말할 것도 없고, DJ의 언론 창구역인 김한정 비서관도 사면에 대해 "특별히 할 말이 없다"고 굳게 입을 다물고 있다.

DJ측의 이같은 기류는 내놓고 이야기하지는 않지만 정부의 방침에 대한 우회적 불만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DJ의 의중에 정통한 한 인사는 "박지원 전 청와대 비서실장에 대해 아무런 조치가 없는 특별사면은 진정한 의미가 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는 견해를 밝혔다.

@ADTOP@
DJ의 침묵은 박지원 제외 사면에 대한 우회적 불만 토로

이 인사는 "특검이 송금과 대출을 조사한다고 하더니, 비리 사건으로 변질시켰고, 처지가 자유롭지 못한 기업인들의 일방적 주장만 갖고 아무런 물증 없이 무리하게 기소해서 오늘까지 온 것이 아니냐"고 DJ의 불편한 심기를 대변했다. 이 인사는 또 "검찰이 돈을 주었다는 사람과 전달했다는 사람은 처벌하지 않고, 해외에 있는 사람도 소환하지 않은 채 무리하게 재판을 진행하지 않았느냐"고 항변했다.

박지원 전 실장의 한 측근은 "대북송금 특별검사가 박 실장을 DJ를 대신한 대북송금 사건의 정점이자 총기획자로 규정해 놓고 그 '주역'인 박 실장에 대한 조치 없이 이미 구치소에서 나와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만 특별사면을 하겠다는 것은 정부의 '생색내기'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DJ는 박지원 전 실장의 무죄 주장을 신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DJ는 박 전 실장의 악화된 건강을 무척 걱정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따라서 DJ측의 이같은 우회적인 불만 표출은 현 정부에 대한 일종의 압박 성격을 띠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구속된 지 7개월째인 박지원 전 실장은 설 전전날인 20일 오랜 만에 검찰 조사나 법정 출정 목적이 아닌 '바깥 나들이'를 했다.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안과 정밀진단을 받기 위해서였다. 그 사흘 전인 17일 DJ 주치의인 장석일 박사가 안과전문의와 함께 서울구치소로 박지원 전 실장을 면회가 진찰을 한 뒤끝이었다.

DJ는 거의 1∼2주일에 한번 꼴로 김한정 비서관을 구치소로 보내 박 실장을 격려해왔다. 그러던 터에 박 실장이 수감 6개월째인 한 달 전부터 한쪽 눈의 안압이 높아지고 시신경이 손상되는 등 녹내장 징후를 보여 적기에 치료하지 않으면 실명할 위험이 있다는 얘기를 전해듣고서 자신의 주치의더러 안과 전문의를 대동하고 가서 박 실장을 진찰해 달라는 당부를 했던 것이다.

지난해 7월 4일 대북송금 첫공판이 열린 서울지방법원에 박지원 전 문화관광부장관이 출석하고 있다.
지난해 7월 4일 대북송금 첫공판이 열린 서울지방법원에 박지원 전 문화관광부장관이 출석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DJ, 주치의와 안과전문의 구치소 보내 박지원의 녹내장 징후 진찰

앞서의 박 실장 측근에 따르면 박 실장은 비서실장 시절인 2002년 추석 때도 장 협착증으로 서울대 병원에 3박4일 입원하는 등 평소에 장이 안 좋아 구치소에서 장출혈을 한 것을 빼놓고서는 계속 운동을 하고 건강을 잘 유지해 왔는데 한 달 전에 끝난 1심재판에서 12년형을 선고받고서 충격을 받은 탓인지 남은 한쪽 눈마저 시력이 크게 악화되었다.

또 박 실장은 본디 미국 체류 때부터 왼쪽 눈이 의안이어서 야당 시절부터 1년에 한번씩은 미국에 가서 정기검진과 치료를 받아왔는데 김대중 정부 들어서 쉬지 않고 일하느라 치료시기를 놓친 데다가 이번에 구치소 수감중에 남은 오른쪽 눈마저 시신경이 손상되어 눈에 대해 사실상 사망선고를 받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이 측근은 전했다.

사실 DJ는 지난 연말에도 김한정 비서관을 서울구치소에 보내 수감중인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과 박지원 전 실장에게 새해 인사를 전하며 위로했었다. 김 비서관은 이와 관련 "김 전 대통령께서 두 사람이 수감생활로 건강이 안 좋다는 얘기를 듣고 새해도 맞고 했으니 상황이 어떤지 살펴보고 위로의 말을 전하라고 해 면회를 다녀왔다"고 밝혔다.

그러나 두 사람이 각각 사안은 다르지만 현대비자금 수수혐의라는 공통점이 있는 데다가 전 무기중개업자인 김영완씨를 고리로 연결된 일종의 '공범관계'라서 검찰이 동시 면회를 불허해 김 비서관은 12월30일에는 권 전 고문만 면회하고 돌아오고 1월2일에 다시 가서 박 전 실장을 면회하고 돌아왔다.

권씨는 이 자리에서 "진승현씨 사건으로 구속됐다가 무죄판결을 받았는데 또 다시 수감생활을 하게 돼 (김 전 대통령에게) 세배도 못하게 됐다. 이것이 내 운명인 것 같다"면서 눈물을 흘린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면서도 권씨는 또 "김영완씨가 언제까지나 외국에 머물며 진실을 감추지는 못할 것"이라며 "고통을 참고 이기겠으며 재심을 청구해서라도 불명예를 씻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실장도 1심 재판에서 검찰의 기소내용이 그대로 인정돼 징역 12년의 중형이 선고된 데 대해 "이해할 수 없고, 참담한 심경"이라며 일관되게 무죄를 주장했고, DJ는 김 비서관을 통해 "결국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며 위로의 말을 전했다고 한다.

"특검으로 엎질러진 물, 특별사면으로 되담을 수는 없다"

지난 양력설에 DJ의 동교동 사저는 1500명에 이르는 세배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또 1월6일에는 '국민의 정부'에서 장·차관을 지낸 인사 150명이 서울 시내 한 호텔에서 DJ를 모시고 보란 듯이 '팔순 잔치'를 벌이기도 했다. 전직 대통령 8명이 헌정사에 기록되었지만 살아서 존경받는 전직 대통령 문화가 없는 현실에 비추어 DJ는 행복한 말년을 보내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정작 DJ 본인은 행복하지 않은 모습이다. 이와 관련 앞서의 DJ 측근 인사는 "이를 두고 언론이 '세배 정치'니 '정치 재개'니 하면서 '해피한 DJ'로 묘사하지만 사실은 다르다"고 잘라 말했다. 왜 그럴까.

이 측근 인사는 "김대중 대통령께서 말씀을 안해서 그렇지 지난 한해 이미 마음에 크나큰 상처를 입었다"면서 "한번 엎질러진 물을 되담을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지난 한해 특별검사의 수사로 손상받고 깨진 신의가 특별사면한다고 해서 원상회복되기는 어렵지 않냐는 것이다. 이 측근에 따르면 DJ는 그 무렵에 "나는 이제 희망이 없는 사람이다"면서 "내 옆에 있으면 득될 것이 없으니 갈 데가 있으면 언제든지 갈 길을 가라"고 말해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고 한다.

이 측근은 "물론 그렇다고 해서 DJ가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을 반대하고 민주당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면서 "다만, 지난 한해 상심이 워낙 컸기 때문에 심정적으로 그렇다는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김한정 비서관은 지난 14일 기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의 보도자료를 보냈다.

"최근 일부 언론에 '김 전 대통령이 측근들에게 총선 출마를 독려했다'는 내용이 기사가 실렸는데,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김 전 대통령은 지금까지 정치 불관여 원칙을 지켜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이러한데 김 전 대통령이 이름 모를 측근들에게 '총선 출마를 권유했다'는 보도는 전혀 사실과 다르며 김 전 대통령의 정치 불관여 의지를 훼손시키는 것으로서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최근 국민의 정부 출신 인사들 중에 정당에 입당하여 정치활동을 시작한 분들이 있는 것으로 알지만 이 분들의 정치적 선택은 김 전 대통령과 상의된 바 없고, 또 일체 관여하지도 않았다는 점을 분명히 밝혀 둡니다."

"'DJ, 측근들에 총출마 독려 및 정치 재개' 기사는 기자 작문"

이 보도자료를 나오게 한 직접적인 계기는 이날 아침에 'DJ, 측근들에 총선 출마 독려…정치재개 주목' 제목으로 보도된 <동아일보> 기사였다. 동아일보는 이 기사에서 "'DJ 변수'는 호남 민심에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총선 주요 변수"이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은 아직 분명한 의중을 내비친 적이 없다"면서 이렇게 보도했다.

"김 전 대통령은 국민의 정부에서 최장수 각료를 지냈고 12일 '우리당'에 입당한 김명자(金明子) 전 환경부 장관에게 최근 “정치를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권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김 전 대통령은 당시 어느 정당을 선택하라고 언급하지는 않았다는 후문이다.

같은 날 민주당에 입당한 김성재(金聖在) 전 대통령 민정수석비서관의 경우 김 전 대통령과 가까운 강원용(姜元龍) 목사가 민주당 입당을 적극 권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김 전 대통령이 측근들의 총선 출마를 독려한 흔적은 여러 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의 한 측근은 “자네도 (출마를) 생각해 보라”며 권유를 했다고 말했다."


DJ측에 따르면 김명자 전 장관의 경우 '우리당' 입당 전에 '신고'를 하기 위해 DJ에게 면담을 신청했으나 정치적으로 오해의 소지가 있으니 안 만나는 것이 좋겠다는 권유에 따라 DJ를 만나지 못했다. 따라서 DJ가 김 전 장관에게 "정치를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권유했다는 것은 작문이라는 것이다.

한편 민주당으로 입당해 선거기획본부장을 맡은 김성재 전 민정수석의 경우 민주당 입당 전에 '신고'한 것은 사실이나 이는 DJ와의 '특수관계'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즉 아태재단 이사장을 지낸 김성재 전 수석은 지난 한해 대북송금 특검 수사 때문에 DJ 옆자리를 비운 박지원 전 실장을 대신해서 DJ를 보좌했고 김대중도서관 운영위원이기도 해서 거취 문제를 상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DJ "국민의 총명함을 믿습니다"

20일 오전 지구당사에서 탈당 기자회견을 갖고 있는 김홍일 의원.
20일 오전 지구당사에서 탈당 기자회견을 갖고 있는 김홍일 의원. ⓒ 정거배
지난 20일 "모든 기득권을 버리고 정치인 김홍일로서 평가받고 싶다"며 민주당 탈당과 함께 무소속 출마를 선언한 DJ의 장남인 김홍일 의원의 경우도 이와 크게 다를 바 없다. 이를 두고 이른바 김심(金心), 즉 DJ의 의중이 선거 중립 의지를 분명히 한 것이라는 관측이 무성하지만 DJ는 측근들의 정치적 거취는 물론 아들의 정치적 거취에 대해서도 일절 관여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더욱이 김 의원의 탈당 및 무소속 출마 선언의 직접적 계기는 당내의 '호남 중진 용퇴론'으로 인한 당 지도부에 대한 섭섭함과 압박감이었던 만큼, '우리당' 일각에서 얘기하듯 DJ가 엄정 중립 의지를 분명히 하기 위해 아들을 탈당시킨 것은 더더욱 아니라는 것이다.

김홍일 의원도 이런 점을 의식해서인지 "당은 떠나지만 민주당은 총선에서 많은 의석을 얻는 등 잘되기를 바란다"면서 보도자료에 "당이 처한 어려운 사정을 십분 이해한다"고 나중에 덧붙이기도 했다. DJ 또한 탈당 전날 동교동을 찾은 아들에게 "네가 알아서 판단하라"고만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의 DJ 측근은 "국민의 정부 시절 김대중 대통령을 모셨던 인사들이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으로 나뉘어 입당하면서 양당이 서로 '김심(金心)'은 우리에게 있다고 '제 논에 물대기식' 해석을 내놓고 있지만 '김심'은 처음부터 '중립'이었고 앞으로도 '중립'이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나 구정 전에 동교동에서 DJ와 점심을 함께 한 비정치권 인사는 "DJ와 정국에 관해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이 이대로 총선을 치르면 특히 수도권에서 전멸하는 것 아니냐'고 물으니 DJ가 '국민의 총명함을 믿습니다'라고 말하더라"고 최근 분위기를 전했다. 이 인사는 "DJ는 아직도 두 당이 갈라선 이유를 잘 모르겠다는 투였다"면서 "DJ가 중립을 표방하지만 속마음까지 중립은 아닌 것 같더라"고 말했다.

이 정치학자의 직관이 정확하다면 DJ의 본심은 어느 당이 잘되건 개의치 않는 무심(無心)이라기보다는 두 당이 힘을 합쳐 잘되기를 바라는 '합심'(合心)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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