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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김기수씨(가명·31세)는 설을 쇠러 고향에 내려갔다 저녁 늦게 집에 돌아와서 수도관과 보일러가 동파된 것을 보고 망연자실했다.
미혼인 그가 살고 있는 전셋집은 다세대주택으로 보일러는 옥외에 설치돼 있었다. 김씨는 연휴기간 동안 보일러를 ‘외출’모드로 놓았지만 수돗물은 흐를 정도로 틀어놓지 않은 게 화근이 됐다.
수도관이 얼어 터진 것과는 별도로 보일러 배기통에 쌓인 눈이 녹아 흐르고 또다시 얼어붙는 과정에서 보일러의 작동이 멈춰버리고 배관도 얼어붙었다. 기온이 급강하 하는 바람에 외출모드로는 혹한을 견뎌내지 못했던 것이다.
최소한 취침이나 그 이상의 모드로 설정해 놨더라면 동파를 방지할 수 있었겠지만 일주일동안 집을 비우는지라 과도하게 온도를 높일 수 없었다. 이로써 김씨는 뉴스에서만 보던 동파 소식의 주인공이 돼 버렸다.
결국 연고지가 서울이 아닌 그는 마땅히 신세질 친인척도 없어 ‘냉방’에서 하룻밤을 보내야했다. 젊은 혈기만 믿었던 그는 다음날 감기에 된통 걸린 채 출근했다.
| | | 보일러 동파에 대한 소비자보호원 상담 사례 | | | 임대인, 세입자 적절 분담하는게 합리적 | | | | 혹한기에는 보일러 배관이 얼어 터지는 경우가 많다. 이때는 집을 비우더라도 최소한의 난방 상태를 유지해 얼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세입자가 여행·출장 등으로 장기간 집을 비운 사이에 갑자기 기온이 저하돼 보일러 배관이 터져 난방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이때 임대인은 세입자에게 동파가 되지 않도록 주의를 다하지 않았다고 책임을 미루고 임차인은 천재지변에 의한 파손 수리는 임대인의 의무에 속한다며 주인에게 수선을 요구해 분쟁이 생기는 사례가 있다.
통상 세입자가 고의 과실 없이 고유의 용법대로 사용하던 중 일어난 고장이나 손상은 임대인이 수선 의무를 부담해야 한다. 또한 천재지변에 의한 것도 임차인의 불가항력에 의해 발생한 것이라면 임대인이 수선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위와 같은 동파는 임차인이 최소한의 난방 상태를 유지했다면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으므로 천재지변으로 돌리기가 어렵다. 또 노후화도 일부 기여할 수 있으므로 쌍방의 과실 비율에 따라 수리 비용을 적절히 분담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 소비자보호원 | | | | |
출근과 함께 김씨는 주인집에 전화를 걸어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며 상의했다. 그러나 주인집은 사용자 관리소홀만 운운하며 “배 째라”식의 태도로 일관했다. 마음이 독하지 못한 김씨는 결국 주인집과의 말싸움에 밀려 눈물을 머금고 자비를 들여 보일러를 통째로 갈아야 하는 상황이 됐다.
이에 앞서 그는 이런 상황에서 피해부담 주체가 어떻게 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인터넷 검색 등을 통해 판례를 확인한 결과 이런 경우는 일반적으로 세입자와 집주인이 반반씩 부담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우선 세입자인 사용자가 부주의한 탓이 있지만 보일러 등 설비는 주인 소유의 재산이기 때문에 공동으로 책임을 져야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막무가내로 나오는 주인집에 대해 그는 할말을 잃었다. 김씨가 무엇보다 속상했던 것은 올 6월이면 결혼과 함께 이 전셋집을 나갈 예정인데 7년 정도 사용한 보일러를 교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앞으로 이 집에서 몇 년 더 산다면 이렇게까지 속상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울상을 지었다.
결국 김씨는 보일러 회사에 전화해 50만원의 비용을 감수하고 보일러를 교체해야만 했다. 김씨의 고충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보일러 교체 공사에 들어간 이후 그는 다른 보일러 회사에 다니는 지인을 통해 피해상황을 낱낱이 설명한 결과 20여만원을 들여 배기 통과 관련 부품 몇 개만 교체하면 된다는 답을 들었다.
아뿔사, 급한 마음에 한쪽 보일러회사 직원 말만 듣고 교체공사를 진행한 결과 공돈만 날리게 됐다. 이미 시작한 공사인지라 되돌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이 ‘사건’으로 김씨는 몸과 마음이 모두 상했다.
이 문제 때문에 여기저기 전화를 하는 동안 김씨는 옆 직원들의 눈치를 봐야했다. 사적인 일로 전화통화를 하려니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었다. 회사에서는 사적인 일이지만 집으로 돌아오면 너무나도 큰 고민거리였다. 그리 넉넉지 않은 살림을 꾸려 가는 그에게 있어 너무나도 큰 부담으로 작용했던 것이다.
이 때문에 일이 제대로 손에 잡히지 않는다는 그는 “세상이 왜 이렇게 불합리한지 모르겠다”며 세입자들이 이런 문제로 두 번, 세 번 울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