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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승수 변호사
하승수 변호사 ⓒ 참여사회
"부안은 찬핵과 반핵이 싸우는 것이 아니다. 주민들이 분노하는 부분은 군민들을 무시한 군수의 유치신청이었다."

부안 방폐장 유치 찬반 주민투표 관리위원회(이하 관리위원회. www.buanvote.or.kr)' 사무처장인 하승수 변호사는 "결국 부안의 문제는 민주냐, 반민주냐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부안 문제를 어떻게 푸느냐에 따라 한국 민주주의가 한 단계 높아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관리위원회는 지난 25일 부안 읍내에 사무실을 개소하고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27일 진서면 토론회를 시작으로, 위도와 부안읍 등 각 읍면을 순회하며 찬반 토론회를 연 뒤 14일 주민투표를 벌여 부안 핵폐기장 유치에 대한 주민 의사를 확인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주민투표가 순조롭게 이루어질 지는 미지수. 부안군청과 전북도청이 7월 투표를 주장하고 있고, 부안군청 측은 주민투표 홍보포스터를 떼어내겠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부안군 국책사업유치추진연맹 등 핵폐기장 찬성 단체 역시 주민투표의 공정성이나 합법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참여거부 입장을 밝힌 상태다.

하지만 하승수 사무처장은 "부안 주민투표는 민주적인 절차로 설계됐고 최대한 공정하게 진행되고 있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핵폐기장 찬성단체들의 반발에 대해서 "대화를 계속하고 있다, 물리적 충돌을 없을 것으로 본다"며 "투표 무산을 막기 위해 경찰에 협조요청을 했다"고 밝혔다.

하 사무처장은 "곧 농사가 시작되는데 철을 놓치면 막대한 차질이 생긴다"며 "2월 14일은 주민투표의 마지노선"이라고 강조했다. "주민간 갈등의 골이 깊고 정부에 대한 배신감이 크다, 주민투표가 무산되면 다시 큰 충돌이 있을 것"이라는 경고도 잊지 않았다.

그러나 정부가 주민투표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에도 관리위원회는 이에 대해 강경한 대응을 하지는 않을 방침이다.

관리위원회에는 위원장인 박원순 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를 비롯, 김기식 참여연대 사무처장, 박석운 민중연대 집행위원장, 이학영 YMCA 사무총장 등 다양한 시민사회단체 인사들이 참여하고 있다. 손호철 서강대 교수, 황상익 교수노조 위원장, 도법 스님, 홍근수 목사, 김현 교무 등 학계, 종교계 인사도 관리위원회에서 활동한다.

다음은 하 사무처장과의 인터뷰 전문.

"찬반간 갈등 골 깊어져 후유증 우려"

- 현재 부안 주민들의 분위기는 어떤가.
"찬반 주민간 갈등의 골이 상당히 깊어졌다. 한 지역사회에서 친인척이 갈라진 경우도 있다. 더 이상 이 상태가 지속되면 지역사회에 심각한 후유증을 남길 것이다.

그래도 물리적인 충돌은 없고 외면적으로는 평온하다. 경찰도 평안을 찾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작년 11월 충돌 이후 상당한 설득과 고민의 과정을 거쳐 부안주민들이 주민투표이라는 해법에 공감을 가졌는데, 쉬운 일은 아니었던 것 같다. 반대측 주민들 중에서도 주민투표 자체에 반대하는 사람이 많았다."

- 주민투표의 의의를 어떻게 보는지.
"부안 문제를 어떻게 푸느냐에 따라 한국 민주주의가 한단계 높아질 수도 있고 현 상태로 유지될 수도 있다고 본다. 민주주의 측면에서 지역주민 삶에 국가가 어떻게 개입해야 하는지, 지역사회 의견 대립을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정부 정책을 어떻게 홍보해야 하는지 원칙을 세워가야 한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성숙하고 능력도 있다. 부안 주민들도 현명하고 똑똑하다. 지방자치단체장이나 정부, 기득권이 이를 수렴하지 못하는 게 문제다. 우리사회는 일부 관료나 엘리트 중심으로 정책을 만들어도 된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 지역 주민들의 삶이나 공동체를 일부 엘리트들이 결정한다면 이는 민주주의가 아니다.

이번 부안 주민투표는 절차가 공정하고 민주적으로 설계됐다. 외국의 선례나 주민투표법을 다 참조했고, 투표운동기간도 충분히 두었다. 다른 지역에서도 정부와 주민, 혹은 주민간 대립에 문제해결 수단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 행정적인 지원 없이 자치적으로 주민투표를 진행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는가.
"놀라울 정도로 많은 분들이 도와주고 있다. 아주머니들이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주소나 거주자를 파악해 투표인 명부를 만들었다. 개인택시 운전하는 분은 투표 당일에 노인, 장애인을 모시겠다고 한다.

그러나 아직은 일손도 달리고 투표 당일 자원봉사 등 각종 실무적인 부분에서 지원이 필요하다. 3000만원을 최소 비용으로 잡고 있는데 지금까지 일반 시민 130여명이 온라인 및 오프라인 성금에 참여해 약 1000만원 가량을 모았다. 더 많은 분들이 부안의 평화를 위해 도움을 줬으면 한다."

"농사 시작하기 전에 투표해야... 무산되면 지역공동체 파괴"

지난 26일 사무실 개소식을 마친 부안 방폐장 유치 찬반 주민투표 관리위원회 활동가들이 부안 시장을 돌며 주민투표 참가를 홍보하고 있다.
지난 26일 사무실 개소식을 마친 부안 방폐장 유치 찬반 주민투표 관리위원회 활동가들이 부안 시장을 돌며 주민투표 참가를 홍보하고 있다. ⓒ 황평우
- 주민투표법이 발효되는 7월에 투표하자는 부안군청이나 전북도청의 입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지금 주민투표가 필요한 이유가 있나.
"농사철을 놓치면 (농민들 생계에) 막대한 차질이 생긴다. 안 그래도 주민 다수가 부상이나 구속으로 피해를 입은 상태다. 주민 뜻을 확인하고 나면 일단 생업에 복귀해 정부의 정책을 지켜볼 수도 있다.

그냥 농사 짓다가 7월에 투표하면 되지 않냐고 물을 수도 있지만, 부안은 주민투표 때문에 그나마 평온한 것이다. 주민들의 배신감이 워낙 크고, 부안군수가 자극적으로 군민들을 매도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이대로 덮어두고 있다가 7월에 투표할 상황이 아니다."

- 부안군 국책사업유치추진연맹 등 핵폐기장 찬성단체 쪽에서는 '불법이고 불공정하다'는 이유로 주민투표 거부 의사를 밝혔다.
"국내외에서 주민투표 사례가 있다. 2000년 경기도 고양시 주민들은 주상복합건물 건축허가 여부에 대해 주민투표를 실시했고, 일본 마키마츠 지역에서도 원전 건설 여부를 놓고 주민투표를 벌였다.

주민투표는 최대한 공정하게 진행하고 있다. 반대 대책위에서도 행동의 제약을 감수하고 있고, 관리위원회가 그렇게 요구하고 있다. 투표운동기간 동안 촛불 시위, 확성기 사용이 금지된다.

나는 개인적으로 핵문제에 대해 의견이 없다. 부안의 상황은 반핵과 찬핵의 대립이 아니라, 민주와 반민주의 대립이라고 본다. 주민들이 가장 분노하는 부분도 군수의 독자적인 유치신청이다. 주민투표는 폐기장이 아니라 군수의 유치신청에 대한 의견을 묻는 절차다."

- 핵폐기장 찬성단체들은 법원 가처분 신청과 주민투표 실력 저지 입장을 나타냈는데, 오히려 지역내 갈등이 깊어지는 것 아닌가.
"갈등은 있지만, 소수의 방해가 있을지는 몰라도 물리적 충돌이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물리력으로 투표가 무산되면 부안지역사회를 망치게 된다. 그런 일은 없도록 할 것이고, 경찰에도 협조요청을 해뒀다.

찬성단체들이 토론회 참여는 안한다고 하지만 자신들의 주장을 계속 홍보하고 있다. 관리위원회는 찬성단체들을 꾸준히 만나서 대화하고 있고, 며칠 전엔 위도 유치위원회를 만났다. 그분들도 '주민투표가 틀린 이야기는 아닌데 지금은 공정 투표가 어렵다'고들 말한다. 원래 주민투표만으로 갈등 해소가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더 평화롭게 문제에 접근하는 분위기를 형성할 수는 있을 것이다."

- 언론이나 정부에 대해 당부하고 싶은 것은?
"주민들이 그동안 자제해왔기 때문에 투표가 무산되면 또다시 큰 충돌이 일어날 것이다. 그 경우 지역 공동체가 파괴될 수도 있다. 더 늦어지거나 군청 등이 방해하면 심각한 사태가 올 수 있다. 대책위에서도 제어하기 어려울 것이다. 2월 14일은 마지노선이다.

이런 상황을 정부가 조장하고 있다. 애초에 정부의 정책실패로 인한 갈등인데 이제 와서 자긴 모르겠다고, 주민들끼리 해결하라고 나온다. 치고박고 싸우라는 얘기다. 참여정부가 너무 권위적이다. 부안 주민투표를 통해 주권자 존중의 원칙 만들어나가야 한다. 부안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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