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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사회과학연구원의 보고서
서울대 사회과학연구원의 보고서 ⓒ 서울대사회과학연구원
'평준화의 학벌 세습' 논쟁을 불러일으킨 연구 보고서를 낸 서울대 사회과학연구원은 '세 번' 말했다. 보도자료, 연구 보고서, 그리고 일부 언론에 쓴 시론이 그것이다.

사회과학연구원 소속 연구자들은 공식 발표회격인 27일 심포지엄 이틀 전에 이미 기자들에게 보도자료를 돌렸고, 28일부터는 공동연구자 세 명이 일제히 <조선> <중앙>에 '시론'을 모두 세 번에 걸쳐 썼다.

그런데 이들은 보도자료와 연구 보고서 등 두 번은 '연구 당사자'란 사실을 밝혔지만, 나머지 한 번은 결과적으로 그 정체를 숨겼다.

28일치 <중앙>과 29일치 <조선> 지면에 실린 '시론'에서는 마치 제 3자인양 '자신들의 연구 성과'에 대해 긍정 평가를 하고 '평준화 문제'를 지적해 논란이 될 전망이다.

이에 대해 교육계 일각에서는 연구자들이 직접 나서 자신들의 보고서에 대한 내용을 언론에 기고한 것은 부도덕한 태도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서울대 사회과학연구원 소속 공동연구자들은 모두 4명. 연구보고서에는 4명의 이름이 올라있다. 김광억(서울대 인류학과), 김대일(서울대 경제학부), 서이종(서울대 사회학과), 이창용(서울대 경제학부) 등이다.

이들 4명은 논란 직후 각각 <조선>에 한 차례, <중앙>에 두 차례씩 번갈아 가며 시론을 썼다.

'세 번' 말한 서울대 연구자들

<중앙> 1월 28일치 시론.
<중앙> 1월 28일치 시론. ⓒ 조인스닷컴
이 가운데 자신이 연구 당사자란 사실을 밝히지 않은 글은 서이종 교수가 쓴 28일치 <중앙시론> '교육계 흔든 강남 리포트'와 29일치 김대일 교수가 쓴 <조선시론> '사교육만 키운 평준화'란 기사다.

서 교수는 이 글에서 자신이 공동연구자로 참여한 연구 보고서에 대해 다음처럼 추켜세웠다.

"지난 24일 34년 동안의 서울대 사회과학대학 신입생의 사회적 성격과 교육효과에 대한 연구 결과의 발표는 사회적 파장이 적지 않았다. 학력세습이나 저소득층의 배제 현상이 발견됐다고 보도되는가 하면, 이것이 평준화정책의 실패 증거로 보도되면서 사회적으로 큰 파문을 일으켰다. …이번 연구 결과 주목할 대목은 서울대 사회과학대학 입학생들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아졌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중앙일보> 1월 28일자 [시론] 교육계 흔든 '강남 리포트' 바로가기


하지만 이 시론 어디에도 자신이 해당 연구를 한 당사자란 사실이 없다. 서 교수는 30일 전화통화에서 "원래는 지면에 연구자란 것을 적었지만 나중에 편집 과정에서 빠진 것 같다"고 해명했다.

이에 대해 김아무개 <중앙일보> 편집국장은 전화 통화에서 "내 관할이 아니라 말할 입장이 아니다"고 밝혔다. <중앙>의 한 논설위원도 "누가 담당했는지도 모르고, 논설위원들도 없어 내가 말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조선> "본인이 쓰지 않아 넣을 수 없었다"

<조선> 1월 29일치 시론.
<조선> 1월 29일치 시론. ⓒ 조선닷컴
또 다른 연구자인 김대일 교수는 29일치 <조선>에 시론을 썼다. 그는 이 글에서 연구 결과를 소개한 뒤 "평준화 정책은…한편으로는 성과에 대한 보상이 확실한 사교육 시장에 학생들을 내 준 하나의 원인"이라고 평준화의 문제점을 짚었다.

"사교육의 팽창으로 인해 학력 세습(世襲) 현상이 확대되고 있다는 서울대학교의 연구결과가 나왔다. 부모의 소득이 높다고 반드시 자녀의 재능이 뛰어난 것이 아닐 것이고, 부잣집 자녀라고 해서 국가사회발전에 남보다 더 기여할 수 있는 것도 아닌 만큼, 교육의 빈익빈 부익부 현실은 답답하기만 하다."

<조선일보> 1월 29일치 [시론] '사교육만 키운 평준화' 바로가기


하지만 이 시론 또한 김 교수 자신이 해당 연구 당사자란 사실이 빠져 있었다. 사정을 모르는 독자들은 제3자가 연구 결과를 평가하는 것으로 볼 가능성이 큰 셈이다.

송아무개 <조선> 칼럼담당 국장은 전화통화에서 "같은 날 사회면 보도 기사에 김 교수 이름이 언급됐기 때문에 시론에서 다시 한 번 쓸 필요가 없었다"면서도 "본인이 연구 당사자라고 쓰지 않았는데 우리가 임의로 고칠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송 국장이 밝힌 29일치 <조선> 사회면에 김 교수 이름이 나와 있긴 했지만 이 기사 또한 김 교수가 연구 당사자라는 내용은 없었다.

한편 이 시론을 쓴 김대일 교수는 기자가 몇 차례 전화 통화를 시도했지만 전화통화가 되지 않았다. 서울대 경제학부 학과 사무실에서는 "교수님이 핸드폰을 꺼 놓고 계시고 일체의 연락처를 알려주지 말 것을 당부하셨다"고 밝혔다.

"팀 플레이?…부도덕한 일"

박경양 참교육학부모회 회장은 "연구 신빙성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는 상황에서 당사자가 자신을 숨긴 채 시론을 쓴 것은 부도덕한 일"이라면서 "언론 또한 당사자들의 정체를 적시하지 않고 공식 칼럼으로 실은 것은 뭔가 의심스런 대목이다"라고 비판했다.

송원재 전교조 대변인은 "이번 일을 통해 서울대 교수들이 일부 보수언론과 팀 플레이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고 말했다. 김용일 한국해양대 교수도 "교육 현상을 실증에 바탕하지 않고 당파성에 입각해 분석한 데 이어 시론까지 남의 일인 것처럼 실은 것은 우리 학계와 언론계의 애석한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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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서 교육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살아움직이며실천하는진짜기자'가 꿈입니다. 제보는 bulgo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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