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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8일 서울대 사회대 멀티미디어 강의동에서는 사회과학연구원이 주최한 "입시제도의 변화- 누가 서울대학교에 들어오는가?" 심포지엄이 열렸다. 1970년부터 2003년까지의 서울대 사회대 입학생들의 자료를 통계분석한 결과를 공개하는 일종의 학술발표회였던 이날 행사는 연구 결과보다는 최근 쟁점이 되고 있는 고교 평준화 정책을 둘러싼 논란이 진행돼 눈길을 끌었다.

연구 자체는 서울대 사회대 입학생들의 여러 가지 특성들에 대한 통시적인 통계 분석이었다. 1970학년도부터 2003학년도까지 입학생들의 학생카드에 기록된 106가지 변수를 입력하, 이를 바탕으로 통계적으로 변화 양상을 추적한 것.

전체적으로 고소득, 고학력 부모를 가진 학생들, 지방보다는 서울, 서울에서도 강남 8학군에 거주하는 학생들의 서울대 입학률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 연구의 주된 결과였다. 또 사회대의 여학생 비율은 종래의 9%에서 최근 40%로 크게 증가했으며, 입학 후 성적은 남학생 보다 여학생이, 지방 학생보다는 서울 출신 학생들이 약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쟁점은 평준화 정책

그러나 정작 토론이 된 것은 이러한 연구 결과가 아닌 연구의 결론과 정책 함의였다. 연구에 참여한 서울대 경제학부의 이창용 교수는 "연구의 주된 목적은 실증적인 통계분석을 통해 교육 정책을 평가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동시에 "불평등이 구조화되고 있다는 연구 결과는 지난 30년간 진행되어 왔던 고교 평준화 정책의 저소득층 대학 입학 기회 증진이라는 목적이 완전히 실패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연구팀은 연구 결과를 "평준화와 쉬운 시험 문제를 강조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의도와는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하였다…쉬운 입시문제는 저소득층에 유리하기보다 재수생과 사교육으로 무장한 부유층 학생들에게 유리한 제도임을 본 연구 결과는 보여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연구팀은 대안으로 "높은 사교육비를 마다하지 않는 높은 교육열을 공교육 재원으로 흡수하여 학교 교육도 정상화하고 높은 교육열이 반복학습으로 낭비되지 않도록 교육의 질도 다양화, 고급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요컨대 평준화 정책이 실패했으며, 고등학교 교육 역시 시장 원칙에 따라 재편되어야 한다는 얘기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패널들은 강도 높게 비판했다. 한국교육개발원 김홍원 학교교육연구본부장은 "교육 불평등이 고착화된 것이 평준화 때문이라고 섣불리 단정할 수는 없다"며 연구의 결론 유추 과정을 비판하고 나섰다. 즉, 불평등의 원인은 전체적인 사회 구조 재편과 관련이 있지, 평준화 정책의 결과라고만 해석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는 아울러 선진국들 중에서 우리 나라가 가장 교육 불평등의 정도가 낮으며, 이는 평준화가 어느 정도 불평등을 억제하는 순기능을 하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주장했다.

"평준화는 교육 불평등 원인 아니다"라는 비판

가장 큰 비판은 전교조 정재욱 교육정책실장으로부터 나왔다. 그는 "과학을 가장한 궤변"이라는 제목의 토론문을 통해, 연구진이 연구 결과를 평준화 정책을 흠집내기 위하여 악의적으로 왜곡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서울대 입학 가능성'이라는 변수 하나가 불평등을 가늠하는 변수가 될 수 없음은 물론이고, 평준화의 목적 자체가 '교육기회의 균등화'가 아닌 '중등교육의 정상화'라는 것이다.

연구팀의 결과는 우수 학생들이 피해를 보고 결과적으로 사교육이 팽창한다는 평준화의 단점을 지적하고 있지만, 이는 평준화의 기본적인 목적인 교육정상화보다 일부 우수 학생의 학습 기회를 더욱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관의 발로라는 것이다.

반면 패널 중에서는 유일하게 KDI 국제정책 대학원의 이주호 교수가 "연구 결과가 평준화 정책의 총체적인 실패를 보여주고 있다"며 평준화 이후 학생들의 평균 학력이 저하하고 사교육이 팽창하는 등 심각한 부작용이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그는 연구진의 의견에 적극적으로 찬성하며 "다양한 학교간의 차이를 인정해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서울대 교육학과의 윤정일 교수는 "연구 샘플이 사회대로 한정되어 있는 것이 문제다. 서울대학교 전체를 상대로 조사하면 정반대의 결과가 나올 것이다"라고 연구 결과를 비판했다. 그는 "아버지의 IQ가 높으면 아들의 IQ가 높은 것이 당연한 사실인데, 고학력층의 자녀가 서울대학교에 많이 들어오는 것이 뭐 연구까지 해가면서 알아내야 하는 사실이냐"는 발언을 해 빈축을 사기도 했다.

교육의 목적은 무엇인가?

시간 부족과 참여자들간의 의사 소통 혼란으로 인해 충분한 토론이 진행되지는 않았지만, 이날 평준화를 둘러싼 토론에서는 근본적인 가치관의 차이가 발견되었다.

"교육의 목적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연구팀의 이창용 교수는 "(교육의 목적은) 휴먼 캐피탈(Human Capital)의 형성과 축적이다. 우수학생이 우수한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하고, 가난한 학생도 우수하다면 장학금 등의 보조를 통해서 엘리트로 키워야 한다"고 답변했다.

반면 전교조의 정재욱 실장은 "성적에만 얽메이지 않고 누구도 소외되지 않도록 배려하며 아이들 개개인의 개성을 살려주는 교육, 그러면서도 다양한 아이들이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어 서로를 이해하며 세상을 배우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해 눈길을 끌었다.

이날 심포지움에 참가한 한 서울대 학생은 "연구팀이 연구결과를 무리하게 평준화 정책 비판과 연결 짓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며 "스스로 주장한대로 실증분석에 더욱 무게를 두었다면 유의미한 행사가 되었을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연구결과는 서울대 사회과학연구원 홈페이지(http://plaza.snu.ac.kr/~css/)를 통해 모두 공개된다고 한다.

덧붙이는 글 | 서울대 인터넷 언론 스누나우(www.snunow.com)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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