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반미 친북'을 우려하며 열린우리당 지도부를 비판한 김수환 추기경과 달리,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는 2000년도 'SOFA 개정 미국 주교회의 협조요청 공문, 2003년도 평화촉구 성명서' 등을 통해 평화와 통일을 주장해온 것으로 나타났다.
천주교 주교회의는 평화촉구 성명서에서 "미국이 공언하는 이라크 공격의 도덕적 정당성을 이해할 수 없다"며 '테러와의 전쟁'에 대한 반대 입장을 명확히 했다. 또한 SOFA(한미주둔군지위협정)에 대해서도 개정 찬성 입장을 보이며 미국 주교회의에 협조 공문을 보내기도 했다.
남북관계에 대해서도 매년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담화문을 내 "냉전 체제하의 편향된 교육으로 형성된 북한 동포에 대한 편견을 뛰어넘어야 한다"며 북한에 대한 이해와 포용을 강조했다. 6.15 남북공동선언에 대해서도 "획기적인 변화의 징표"라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는 사실상 김수환 추기경이 우려와 배치되는 대목이다. 그러나 김 추기경은 인터넷신문 업코리아 창간 리셉션 자리에서 "햇볕정책이 북한을 변화시키기는커녕 오히려 남남 갈등만 야기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라크 침략에 대해서도 추기경은 교황과는 달리 '파병 찬성" 입장을 보였다.
천주교 주교회의는 '특정 국가나 지역의 목자들이 해당 지역의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어떤 사목 임무를 공동으로 수행하는 조직'(교회법 제 447조)이다. 주교회의의 결정은 영역에 따라 구속력이 없을 때도 있지만 반대하는 주교들에게까지 윤리적인 권위를 가진다.
주교회의 "미국의 이라크 전쟁, 정당성 인정할 수 없다"
천주교 주교회의는 SOFA 개정운동이 활발했던 2000년 12월, 2001년 4월 두 차례에 걸쳐 미국 주교회의 의장 조셉 피오렌자 주교에게 협조공문을 보냈다. "SOFA의 전면 개정에 힘을 보태달라"는 내용이었다.
이에 대해 피오렌자 주교는 2001년 8월 "가까운 미래에 이 협정의 전반적인 개정은 어려워 보이지만, 한국 주교회의에서 문제 제기한 일부 사안에 관해서는 양국 정부가 다시 논의하기를 바란다"는 답신을 보냈다.
미국 주교회의 국제정책위원회 위원장 버나드 로 추기경(보스턴 대교구장)은 같은 달 미국 국방부 도널드 럼스펠드 장관에게 한국 주교회의의 자료를 보내며 일부 사안에 대하여 재심의를 요청하기도 했다.
미국 이라크 침략이 일어나기 한 달전인 2003년 2월 14일에는 "우리는 전쟁이 아닌 평화를 기원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부시 미 대통령과 토마스 허바드 주미대사에 보냈다.
성명서는 "'테러와의 전쟁' 이라는 미명 아래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을 희생시켜서는 안 된다, 우리는 미국이 공언하는 이라크 공격의 도덕적 정당성을 이해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주교회의는 같은 성명서에서 북한 핵무기 개발 문제를 언급하며 "위험한 시도는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 대화와 타협을 통한 평화적 해결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대북 전쟁 용납될 수 없어... 냉전 편견 벗어나야"
천주교 주교회의는 또한 한국전쟁이 발발한 6월 25일을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로 설정해 매년 담화문을 발표하며 평화와 통일을 강조해 온 것으로 나타났다.
담화문은 해마다 남북간의 주요 사안을 언급하며 천주교 주교회의의 입장을 전달하고 있다.
6.15 남북공동선언이 있었던 2000년도에는 "남북 정상의 만남과 합의는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향한 큰 일보 전진이요, 획기적인 변화의 징표"라며 기대를 아끼지 않았다. 천주교주교회의는 "합의가 지속적인 실천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북한에 대한 우리들의 의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냉전 체제하의 편향된 교육으로 형성된 북한 동포에 대한 편견을 뛰어넘어야 한다"고 호소했다.
그 뒤의 담화문에는 공동선언 이후에도 크게 진전하지 못한 남북관계에 대한 아쉬움이 공통적으로 담겨있다.
특히 2003년 담화문에는 "지금 북한은 한편으로는 핵무기 개발을 통해 우리를 볼모로 하여 미국으로부터 생존을 보장받고자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스스로의 변화를 시도하면서 국제 사회의 일원으로서 참여하고자 노력하고 있다"며 "북한이 잘못된 판단으로 돌출 행동을 하지 않도록 그들의 변화 노력을 도와주자"고 강조했다.
또한 "인권을 되찾아 주고 진정한 평화를 쟁취한다는 명분 하에 무고한 사람들을 살상하는 전쟁은 용납될 수 없다"며 "북한 주민들의 인권을 위해서는 전쟁도 불사해야 한다"는 수구적 주장에 대한 반대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다음은 2003년 4월 1일 천주교 주교회의 회보 제 124호에 실린 <평화촉구 성명서 소식>
평화 촉구 성명서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는 2003년 2월 14일 “우리는 전쟁이 아닌 평화를 바랍니다!”라는 제목으로 미국의 이라크 공격을 반대하며 세계 평화를 기원하는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그리고 2003년 2월 20일, 주교회의 의장 최창무 대주교의 명의로 이 성명서(영문 제목 "We Want Peace, Not War!")를 미국의 조지 부시 대통령과 토마스 허바드 주한 미국대사에게 보내며 모든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촉구하였다.
우리는 전쟁이 아닌 평화를 바랍니다!
참 평화를 이룩하는 것이야말로 언제나 온 인류가 추구하여야 할 크나큰 과업입니다. 그러나 세계는 지금 전쟁의 불안에 휩싸여 있습니다. 이라크에 대한 미국의 공격 위협이 시시각각으로 그 강도를 더해 가는 이 때,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성하께서는 전쟁의 어두운 그림자를 염려하시면서 전세계 모든 나라에 평화를 위한 노력을 촉구하시고 온 인류에게 평화의 실현을 위하여 기도하자고 호소하십니다. 평화는 결코 무력 균형이나 국제 협약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군비 증강이 또 다른 군비 증강을 초래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합니다(「지상의 평화」, 110항 참조). 강대국들이 무기 산업에 쏟아 붓는 비용의 백분의 일만 들여도 전세계의 기근과 빈곤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러할 때에 세계의 정의와 평화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미명 아래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을 희생시켜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미국이 공언하는 이라크 공격의 도덕적 정당성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한 공격은 또 다른 폭력의 악순환을 불러올 뿐입니다. 교황님과 더불어, 미국과 중동의 형제 주교들과 함께 우리 한국 가톨릭 교회의 주교들은 전쟁을 반대합니다. 우리는 평화를 위협하는 모든 세력을 명명백백히 단죄합니다. 역사적으로 더 많은 전쟁을 일으켜 왔고 핵무기 등 대량 살상 무기를 더 많이 가지고 있는 강대국들이 먼저 관용을 보여야 합니다. 전쟁의 위기에 놓인 당사국들은 모든 갈등을 평화적으로 해결하여야 합니다. 국제연합(UN)을 비롯한 국제 공동체의 대화가 전쟁을 방지하는 단호한 행동으로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우리 민족의 앞날을 위협하는 북한의 핵무기 개발 문제 또한 개탄하며 반대합니다. 7천만 겨레의 생명을 담보로 한반도 전체를 전쟁의 위기로 몰고 가며 국제 관계를 첨예한 긴장으로 악화시키는 북한 당국의 위험한 시도는 즉각 중단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온갖 힘의 논리를 배격하며, 대화와 타협을 통한 평화적 해결을 지지합니다. 모든 사람이 마음을 열고 대화하며 모든 국가가 더욱더 긴밀한 형제 관계를 이루고 ‘평화’라는 인류의 공동선을 향하여 공존 공생하는 길을 모색하여야 합니다. 폭력의 문화, 죽음의 문화를 척결하고 이 땅에 평화의 문화, 생명의 문화가 피어날 수 있도록 우리 모두 노력하여야 합니다.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모든 신자들은 평화의 임금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르쳐 주신 평화가 우리 민족 가운데에, 나아가 세계 공동체 안에 확고하게 자리잡을 수 있도록 끊임없이 기도하며, 평화의 모후이신 동정 마리아와 그 배필이신 성 요셉의 전구를 간청합시다. 교황님께서는 특별히 세계 평화를 위하여 묵주기도를 바치자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선의를 지닌 모든 사람과 더불어 온 누리의 평화를 위하여 간절히 기도합니다.
2003년 2월 14일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