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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28일 <오마이뉴스> 서상일 기자는 "고전은 반역을 기다린다"는 기사를 올리며 고전을 새롭게 다시 읽어낸 책과 출판사를 소개했습니다. 그런데 이 기사에서 중요한 대목을 잘못 짚거나 놓칠 수 있다고 보아 그에 관련된 기사를 씁니다. 정작 중요한 건, 고전은 '반역'보다는 '제대로 된 번역'과 '즐겨 찾아서 읽을 독자'를 기다린다"는 대목입니다. 이 글에서는 '번역'과 '독자'를 기다리는 고전을 이야기하겠습니다. - <글쓴이 말>

▲ 김태준 교수가 우리 말로 옮긴 <서유견문> 속편 겉그림입니다. <서유견문> 번역본이 여럿인데, 김태준 교수 번역이 가장 낫다고 생각합니다.
ⓒ 박영사
ㄱ. <서유견문>을 읽어 보셨나요?

'국한문혼용체'로 썼고 우리네 개화기 때 서양 사상을 많이 알렸다는 <서유견문>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보통 이 책을 요샛말로 옮겨서 읽을 생각을 못하지 싶어요. 학교에서도 <서유견문>이라는 책 이름만 가르치지 <서유견문>을 읽어 보라고 말하지 않잖아요. 사실, 책방에서 <서유견문> 번역판을 찾는 일도 수월치는 않습니다. 저도 <서유견문> 번역판을 찾으려고 헌책방을 꽤나 부지런히 다녔거든요.

<서유견문>을 우리말로 옮긴 판은 여럿입니다. 저는 그 가운데 박영사에서 '박영문고'로 펴낸 두 권이 가장 번역을 잘했으며 해설도 잘했다고 보아요. <서유견문>(박영사, 1976)을 우리말로 옮긴 김태준 교수는 <서유견문>이 유길준 혼자 창작한 책이 아니라 자기를 가르친 후쿠자와에게 배우면서 그가 쓴 <서양사정(西洋事情)> 줄거리를 다시 집성하면서 쓴 것이 <서유견문>으로 자기 이야기보다는 후쿠자와의 이야기에 너무 치우쳐 있다고 말합니다.

국한문혼용체로 쓴 첫 작품이라는 말에서도 문제를 내놓습니다. 맨 처음 훈민정음을 만들었을 때부터도 국한문혼용을 했으며 국한문혼용은 소설 사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적기 방법이었다고 합니다. 더구나 신재효가 갈무리한 판소리 사설 여섯 마당 또한 훌륭한 국한문혼용체라고 지적해요. 다만 공문서 개혁과 함께 국한문혼용체를 널리 쓰도록 자극한 공적을 인정하는 쪽으로 생각해야 옳지 않겠느냐고 말합니다.

그리고 비록 일본 사람이 쓴 책에서 서양 이야기를 많이 옮겨 적은 <서유견문>이지만 그때에는 우리 나라에 남다른 이야기를 알리면서 사람들을 깨우치는 데 이바지한 책임은 틀림없지 않겠나 싶어요. <서유견문>에서 지금 보아도 놀랄 만한 이야기 한 대목을 옮겨 보겠습니다. 그 때로서는 말할 나위가 없었겠지요.

…서양 풍속에는 가난한 자에게 학비를 받는 교사에 대하여는, 그 생업을 구하는 방도라 하여 책망하는 일이 없지만, 부자가 가난한 친척의 총명하고 슬기로운 자제에게 학비를 대주지 않는 것을 시비하는 일이 많다. 그리고 이름만이라도 선생이라 하면, 그 제자는 물론이고 벗하는 친구 사이나 생소한 나그네라 하더라도 경례를 표하지 않는 일은 없다. 이것은 다른 데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다. 선생은 인간을 교훈하는 일을 담당하여 국가의 근본을 기르는 직책을 가지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 그 학비를 받는 것도 생업을 영위하기 위한 부득이한 일이며, 놀고 먹는 국민을 없이 하기 위하여 그런 것이다…
- <서유견문> (속편) 25쪽


한 가지 안타깝다면 벗이나 나그네까지도 우러르는 참된 교사가 나날이 줄어든다는 우리 모습. 교사를 하는 사람들 가운데 교사를 그저 먹고살려는 수단으로만 헤아리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교대를 나오고 사범대를 나오는 분들은 <서유견문>을 읽어 서양 교육제도를 말하는 대목을 깊이 있게 되새겨 보아야지 싶습니다.

ㄴ. 읽히지 못하는 '한국 고전'

요즘 여러 출판사에서 '고전 다시 읽기(미국말로 리라이팅이라고도 합니다)'를 한다며 요즘 느낌과 말투로 새롭게 펴내는 책을 선보이더군요. 다른 한편에서는 '외국 고전을 완역해서 내는 바람'이 있습니다. 얄궂어요. 외국 고전은 '완역'을 하는 바람을 타지만, 한국 고전은 '완역'은커녕, 제대로 나왔던 책도 안 팔려서 새책방에서 사라지는 판이니까요. '제대로 모든 것을 보여주는 판'도, '간추려서 줄여 보여주는 판'도 아닌, '다시 풀이하고 다시 읽어내는 판'만 나돌고요.

연암 박지원 선생은 이름이 나서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호질>, <양반전>은 줄거리를 웬만한 사람들이 다 꿰차고 있겠죠? 그런데 <호질>이든 <양반전>이든 통으로 제대로 읽은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아니, 제대로 된 번역으로 원글을 읽은 이들이 몇 사람쯤 될까요?

▲ 이민수 선생이 우리 말로 옮긴 <연암선집>입니다. 다른 번역본과 견주어 보았을 때 이 책 번역이 가장 낫다고 봅니다. 비록 1956년판이지만 번역말을 되도록 쉬우면서 우리 삶과 문화를 헤아리며 담아낸 눈매가 아주 즐거운 책입니다.
ⓒ 통문관
제가 찾아서 읽기로는 연암 소설 번역은 1956년에 나온 <연암선집>(이민수 옮김, 통문관)이 가장 좋았습니다. 하지만 이 판은 헌책방에서도 찾아보기 어렵고, 이민수 선생이 나중에 다른 출판사에서 글을 다듬어서 새로 낸 판조차도 새책방에서 만나기 어렵습니다. 우리는 그냥 <호질>이라고 하나, "虎叱"이란 "범이 꾸짖다"는 말이에요. 옛날 조선 선비가 쓰던 말로는 한문으로 "虎叱"이라 썼으나 요새는 우리말로 "범이 꾸짖다(범이 꾸짖은 이야기)" 같은 말로 다듬거나 고칠 수 있어야 좋아요.

한문 솜씨가 있어서 연암 소설이나 <열하일기>, 다산 문집을 한문으로 읽어 본 분이라면 우리네 번역이 그다지 뛰어나지 못하다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대체로 읽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습니다. 그런데 문장력까지는 뛰어나지 못해서 한국 고전(한문본을 요새 우리말로 옮긴 판)을 읽으며 재미없거나 지루하다고 느낄 수 있는 사람들이 많은 건 어쩔 수 없는 현실이에요.

한국 고전을 옮기는 일은 상업 출판사에서 돈벌이를 목적으로 하도록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되고, 나라에서 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고전국역총서’란 이름으로 좋은 한국 고전을 많이 펴냈어요. 그런데 고전국역총서는 책값이 비쌀 뿐더러 찾기도 수월치 않습니다. 그리고 보통 사람들이 읽기에는 부피가 너무 크고 전문성이 짙어서 힘듭니다. 글발도 너무 딱딱하고 거칩니다.

그러니 한국 고전은 이래저래 제대로 읽히지도 않고 팔리지도 못합니다. 그저 책이름만 알고, 지은이 이름만 상식으로 안다고 해도 좋아요.

ㄷ. '고전'이 있은 다음에 있어야 할 '다시 읽어내는 책'

<현산어보를 찾아서>(청어람) 같은 책은 <자산어보>를 새롭게 읽어내고 느낄 수 있도록 이끈 좋은 '다시 읽어내기' 책입니다. 그러나 <현산어보를 찾아서>는 <자산어보>란 책이 있기 때문에 값어치가 있고 빛을 낼 수 있어요. <노자>와 <장자>. <명심보감>은 수많은 '다시 읽어내기' 책이 있습니다.

'다시 읽어내기'는 무엇보다도 고전이 되는 책을 사람들이 쉽게 찾아서 읽는 분위기가 생긴 다음 나와야 좋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적어도 원글에서는 무엇을 어떻게 말하는가를 살펴볼 수 있도록 알려주어야 하고요. 고전이란 그 하나로 죽은 무덤이 아니라 새로운 삶을 펼치고 담아내는 데에 뜻이 있어요.

하지만 '다시 읽어내기'가, 고전을 제대로 살리면서 요즈음 문화와 사회 속에서 새롭게 빛을 보게 하는 틀이 아닌, 원글을 다치게 하거나 그것이 지닌 뜻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고 가벼운 말장난과 글장난으로 그쳐서는 안 됩니다. 또한, 고전을 바탕으로 새로운 문화를 빚어내는 길을 가야할 것입니다.

고전은 그것이 처음과 끝이라는 게 아닙니다. 고전은 그것을 밑바탕으로 삼아서 새로우면서 더욱 거듭나는 문화로 빚어내는 ‘거름’이 될 때 더욱 빛나는 고전이 됩니다. 참으로 좋은 이야기라면 굳이 '고전 다시 읽어내기'를 하지 않고 '고전이 담아내는 얼과 넋을 헤아려' 새로운 이야기와 새로운 줄거리로 새로운 책으로 내놓을 때 가장 좋다고 생각합니다.

'고전 다시 읽어내기' 같은 책을 읽기 앞서 손쉽게 고전을 만날 수 있는 도서관 문화와 책 문화가 우리 나라에 자리잡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더불어 박지원, 정약용, 홍대용, 박제가, 이규보, 유길준, 유형원, 김시습, 허균 같은 분들 고전을 우리들이 즐겨 찾아서 읽는 책 버릇을 들인다면 좋겠어요.

서양에 <파브르 곤충기>가 있다면 우리 나라에는 <조복성 곤충기>가 있고, 서양에 <시튼 동물기>가 있다면 우리에게는 <오창영 동물기>가 있습니다. 우리 땅과 문화와 사회를 알뜰히 살펴서 담아낸 좋은 고전을 우리들 스스로 찾아서 읽을 수 있게 책마을 사람들도 함께 애쓰면 더욱 좋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 <서유견문>이나 <열하일기>는 내용이 꽤 깁니다. 그런데 제대로 변역한 <서유견문>이나 <열하일기>를 만나서 읽어 본다면, 금세 이 책에 빨려들어가 끝까지 읽지 않고는 못배길 만큼 재미가 있어요. 안타깝다면, 그렇게 제대로 번역한 판본이 널리 알려지지 못했고, 도서관이나 학교에서 사놓지 않기 때문에 쉬 읽기가 어렵다는 것. 이런 테두리에서 나라 정책과 출판사 정책이 많이 아쉽습니다.

- 이 글은 제 개인 누리집(http://hbooks.cyworld.com)에도 함께 올려놓겠습니다.


열하일기 1~3권 세트 - 전3권 - 개정신판

박지원 지음, 김혈조 옮김, 돌베개(2017)


서유견문 - 조선 지식인 유길준, 서양을 번역하다

유길준 지음, 허경진 옮김, 서해문집(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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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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