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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시작된다는 입춘이다. 우리 아파트 현관에 누가 붓을 들어 멋들어지게 입춘축을 써붙여 놓았다.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 봄이 오니 크게 길할 것이요 따스한 기운이 도니 경사가 많으리라) 아파트 현관에 붙은 입춘축, 길 가다 우연히 마주친 옛 애인처럼 약간 당혹스러우면서도 반갑고 기쁘다. 누군지 그 마음이 참으로 따사롭게 느껴진다.

나도 햇살 바른 양지에 앉아 입춘축을 쓴다. 소지황금출 개문만복래(掃地黃金出 開門萬福來 땅(마당)을 쓸면 황금이 나오고 문을 열면 만복이 들어온다)는 나의 시골집, 들어가는 마루 양 쪽 기둥에 붙일 것이다.

부모천년수 자손만세영(父母千年壽 子孫萬歲榮 부모님 오래 사시고 자손은 길이 영화를 누리리라)
국태민안 가급인족(國泰民安 家給人足 나라는 태평하고 백성은 편안하며 집집마다 풍족하고 사람마다 넉넉하리)

한 자 한 자에 바램의 마음을 담아 한 획 한 획에 정성을 다한다.

춘만건곤복만가 화기자생군자택(春滿乾坤福滿家 和氣自生君子宅 봄은 천지에 가득하고 복은 집안에 가득한데 온화한 기운 스스로 생기니 군자의 집이로다)을 써 놓고는 그 군자의 집이 나의 <소한재>였으면 좋겠다는 부질없는 생각도 해본다.

춘도문전증부귀(春到門前增富貴 봄이 문 앞에 찾아오니 부귀가 더하겠네) 춘광선도길인가(春光先到吉人家 봄 빛이 먼저 오니 길인의 집이로다) 옥동도화만수춘(玉洞桃花萬樹春 우리 마을 복숭아꽃 가지마다 맺히리) 등을 쓰고 나니 정말 봄기운이 벌써 방안에 가득한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입춘축은 우리 선인들의 첫 봄맞이 의식이었던 셈이다. 봄이 왔다고 좋은 글귀나 싯귀를 써붙이는 마음. 빛바랜 작년의 입춘방 위에 새하얀 종이에 새로 써서 붙이는 산뜻한 입춘축은 그 내용도 내용이지만 보기에도 얼마나 산뜻한가? 음산한 한기가 가득하던 집안이 갑자기 산뜻하고 화사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옛날 내가 어렸을 적에는 우리 집에는 정월 열 하룻날 밤에 드는 제사가 있어 근동에 사는 친척들이 찾아왔다. 조합에 주사였던 새 아제가 한 분 계셨는데 한학을 공부했던지 글을 잘 썼다. 미리 지필묵을 준비해두었다가 그 어른이 오시면 입춘방을 써 받았다. 혹여 일이라도 있어 못 오는 해는 받으러 찾아가기도 했다.

이제 머지않아 매화분에 꽃망울이 맺힐 것이다. 선비들은 매화꽃이 피면 친구들을 불러서 술잔을 나누면서 시를 주고받는 매화음(梅花吟)을 열었다. 차 한 잔에도 차 꽃이나 매화 꽃 한 송이를 띄워 마시는 화차를 즐기기도 했다.

휘영청 달빛이 좋다고 거문고 안고 벗을 찾아 나섰던 사람들…. 그런 낭만은 양반이나 잘 난 사람들만의 사치는 아니었다. 앞 산 뒷산 지천으로 진달래 꽃이 흐드러지면 보통 사람들은 개울가에 솥을 걸고 그 꽃을 따다 전을 붙여먹고 노는 화전놀이를 했다.

봄꽃을 넣은 지짐에 술 한잔. 어찌 춘흥이 일지 않겠는가? 그 뿐이던가? 천년 뒤에 올 세상을 위해 땅에다 향나무를 묻고 매향비를 세웠던 민족이다. 가난했지만 마음만은 정말 부자였던 백성들이었다. 배웠던 못 배웠던 이 땅에 나고 묻혔던 사람들의 마음에는 늘 시심이 가득했다. 모두가 시인들이었다.

그러나 요즈음은 시심(詩心)이 사라진 시대다. 영어 단어 하나 수학 공식 하나를 더 외우는 것이 시 한 수를 외우는 일 보다 훨씬 더 절박해진 세상이다. 낭만이니 시를 이야기하면 비현실적인 사람, 철없는 사람인 양 치부되기 십상이다. 먹고 살기도 바뻐 죽겠는데 무슨 한가롭게 시 타령이냐고 타박 맞기 딱 알맞다. 그러나 시심이 사라지면서 우리 세상은 얼마나 삭막해지고 있는가?

요지일월 순지건곤(堯之日月 舜之乾坤 요임금, 순임금 때처럼 모든 것이 평화롭게) 천재설소 만복운흥(千災雪消 萬福雲興 모든 재앙 눈처럼 녹아 없어지고 많은 복 구름처럼 일어나리)를 끝으로 나의 입춘축 쓰기가 끝났다.

그러나 써놓고 보니 아무래도 안 될 듯 하다. 처음에는 오히려 잘 못 쓴 글씨라 보는 이들을 편하게 하고 정겨울 것 같다는 생각에 용기를 내 본 것인데 아무리 내 혼자 쓰는 집이라고 해도 붙여놓고 볼만한 글씨는 못되는 것같다.

나의 시골집(소한재)에 입춘 날, 내 손으로 직접 입춘방을 써붙여 보리라는 욕심으로 한두 달 서예원에 다닌 적이 있다. 그러나 타고난 게으름은 어쩌지 못해 연습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내일은 대보름이라 장을 보러 나서는 아내를 따라 나선다. 얼굴을 쓰다듬으면서 지나가는 바람 끝이 그렇게 날카롭지는 않다. 옷 가계 쇼우 윈도에는 벌써 화사한 봄 옷이 내걸렸다. 냉이니 달래니 길가에 나앉은 할머니들의 난전에 놓인 봄채소에서도 성큼 봄이 가까워졌음을 느낀다.

입춘이 되면 사람들 마음에는 이미 봄이 시작되었건만 살을 에이는 추위는 여전하기 십상이다. 그래서 ‘입춘추위’라는 말도 생겼다. 왕소군의 탄식처럼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봄이 왔건만 봄 같지 않은 봄)인 것이다. 그러나 밤이 깊을수록 새벽이 가까워지 듯 내 마음의 봄은 이미 시작되었다. 내일 밤에는 대보름 달맞이를 하러 월출산에 가볼 요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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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전공은 광고크리에이티브(이론 & 실제)이구요 광고는 물론 우리의 전통문화나 여행 그리고 전원생활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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