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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병진
여기서 <예수의 기도>란 널리 알려진 <주기도문>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예수의 비유 가운데 나오는 세리가 드린 기도 내용이 이 기도에 더 부합할 것 같다. 두 사람이 성전에 기도하러 갔다. 한 사람은 바리새인이고, 다른 한 사람은 당시 죄인으로 취급받던 세리였다.

바리새인은 자신이 얼마나 율법에 충실하고 의로운 삶을 살고 있는지를 과시하는 내용의 기도를 드렸다. 그러나 세리는 하늘을 우러러볼 엄두도 못내고, 가슴을 치며 '아, 하나님, 이 죄인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눅18:13)라고 기도한다. 예수는 이 세리가 드린 기도가 하나님께 인정받았다고 하였다.

동방정교회의 오랜 영성 수행법이 되어온 <예수의 기도> 내용은 앞서 세리가 드린 기도처럼 간단 명료하다. "주 예수 그리스도, 제게 자비를 베푸소서" 이 짧은 기도를 입과 마음과 정성을 다해 수 천 번, 수 만 번씩 거듭해서 드리는 것이다. 그래서 마침내 잠자면서도 무의식적으로 이 기도가 드려질 정도가 되도록 말이다.

그러니 <예수의 기도>는 마치 불교에서 행하는 염불과 비슷한 형태의 기도다. 이 기도를 통해 동방정교회는 "예수 이름에 대한 헌신, 죄에 대한 날카로운 참회의식, 거듭되는 반복훈련, 내적인 침묵으로 인도하는 집중적이고 이미지 없는 기도"를 추구해왔다.

이 책은 <예수의 기도>를 실천한 어느 순례자가 어떻게 하나님 체험의 신비적 경지에까지 이르게 되었는가를 감동적으로 전해준다. 이 순례자는 <예수의 기도>를 어떻게 드릴 것인지에 대해 스물 다섯 명의 교부들이 기록한 책인 <필로칼리아>와 <성경>만을 가지고 방랑의 길을 가고 있다. 이걸 보면 번연 요한의 <천로역정>을 떠올리게도 한다. 그러나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기도라는 주제를 가지고 영적 순례를 행한다는 점에서 아주 독특하다.

어느 종교를 막론하고 기도는 빠뜨릴 수 없는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기도를 가만 들여다보면, 자신을 비우기보다는 "무엇을 해달라"고 비는 식의 자기 욕구를 채우기 위한 수단에 머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자신의 깊은 실존을 드러내는 정직한 언어로서의 기도가 아직 제구실을 다하지 못하고 기복적인 단계에 그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정을 감안할 때 이 책은 앞으로 기도에 대한 새로운 차원을 열어주는 훌륭한 촉매제가 되리라 기대된다.

세계적 저술가인 앤드류 하비는 동양의 여러 신비전통을 접하면서 한때 "기독교는 끝장이 났다"고 확신하기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다 이 책을 읽고 크게 감명 받아 기독교에는 희망이 없다는 자기 확신을 철회하고서 이 책을 세계 종교의 명작 중 하나로 꼽았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20세기의 유명한 사상가이자 영성가로 알려진 토마스 머튼이나 영성 관련 서적으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저술가이자 심리학자인 헨리 나우웬 등도 이 <예수의 기도>를 좋아하여 실천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나의 경우에는 이 기도 방법을 앤소니 드멜로의 <하느님께 나아가는 길>을 통하여 처음 접하였다. 드멜로도 여러 묵상 기도 방법 중 하나로 <예수의 기도>를 소개하면서 이 책(원제: 한 순례자의 길 The Way of a Pilgrim)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있다.

그러나 책을 직접 읽어보기 전까지는 <예수의 기도>가 얼마나 가치 있고 놀라운 기도인지는 전혀 알지 못했다. 아마도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19세기 러시아의 무명 작가가 쓴 이 기도에 관한 고전은 우리를 성숙한 기도의 세계로 나아가도록 돕는 좋은 안내서가 될 것이다.

기도 - 삶을 풍요롭게 하는 예수의 기도

작자미상, 오강남 옮김, 대한기독교서회(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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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솔샘교회(solsam.zio.to) 목사입니다. '정의와 평화가 입맞추는 세상' 함께 꿈꾸며 이루어 가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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