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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동성폭력 피해자 어머니들의 '말하기' 의미를 발표하는 정명희씨
ⓒ 송민성
형사미성년자인 만13세 미만의 아동에게 가해지는 성폭력을 아동성폭력 또는 아동성학대라고 한다. 한국성폭력상담소의 통계에 따르면 2002년 전체 상담 중 22.7%가 아동성폭력으로, 이중 만 7세 이하 유아가 7.1%, 학령기 아동이 15.6%를 차지한다고 한다.

여타의 성폭력 피해자들과 마찬가지로 아동성폭력 피해자는 수사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성폭행의 경험을 극복하는 것도 쉽지않은 일이다. 이때 현실적으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게되는 것이 '어머니'들이다.

지난 12일 '아동성폭력 고소과정에서의 어머니의 고통스런 말하기'라는 주제로 한국성폭력상담소 월례포럼을 진행한 정명희(이화여대 여성학과 석사졸업)씨가 주목한 것은 바로 이러한 '어머니'들의 '고통'과 '말하기'였다.

같은 주제로 석사논문을 쓰기도 한 정명희씨는 "성폭력 피해자는 왜 쉽게 말하지 못하고 가해자는 적은 형량을 받는가? 그리고 아동성폭력 피해자들의 어머니들은 무책임한가?"라는 두가지 물음에서 이러한 연구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어머니들은 결코 무책임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굉장히 많은 어머니들이 문제제기를 하고 있죠. 2003년 12월 18일자로 공개된 '제 5차 신상공개명단'에서 공개된 가해자만 270명입니다."

"고소장을 쓴다고 다 고소가 되는 것도 아니고 고소를 해도 불기소처분이 나는 경우가 많고, 심지어는 경찰서 수사과 책상 앞에서 그냥 돌아오는 경우도 다반사"라는 현실을 고려할 때 어머니들의 문제제기는 굉장히 활발하다는 것이다.

정명희씨는 여성의전화 상담, 아동성폭력피해모임 자원활동의 경험 등을 통해 아동성폭력 피해자의 어머니들을 만났다. 어머니들은 한결같이 피해자인 여성과 아이들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남성중심적 수사과정을 비판했다.

"어머니와 아이들은 자신의 고통을 이야기하지만 가부장제적 법은 폭행사실을 육하원칙에 맞춰 말하라고 명령합니다. 피해자들의 고통은 진단서로서만 증명할 수 있구요. 피해자의 입장에 서야할 수사기관은 끊임없이 아이가 거짓말을 하진 않는지, 꿈을 착각한 것은 아닌지 의심하죠."

정명희씨는 "아이들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어른들을 비난해야 하느냐 아니면 어른들의 언어로 이야기하지 못하는 아이를 비난해야 하느냐?"고 반문하며 남성의 언어로 구성되어있는 공적영역의 언어를 비판했다.

또한 정명희씨는 피해자인 아이의 입장에서 사건을 정리하기 위해 개입하는 어머니들이 수사과정에서 겪는 피해도 적지 않다고 주장했다.

"경찰이 아이가 혹시 자위행위를 해서 그런 것 아니냐고 의심하면 '여자아이가 피가 날 정도로 자위행위를 하진 않는다'고 설명해주어야 하는 것은 어머니들입니다. 자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일종의 금기인 사회에서 이러한 상황은 어머니들에게 가해지는 또 다른 성폭력이죠."

뿐만 아니라 어머니들은 아이의 성폭력에 대해 끊임없이 자신을 책망하는 다중적 고통에 시달린다. 양육권자로서 아이를 잘 돌보지 못했다고 자책하는 것이다.

정명희씨는 그러나 이러한 '고통'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들의 '말하기'는 피해자를 생존자이자 말하기의 주체로 바꾸어놓는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강조했다.

"어머니들은 가해자에게 씌워져야할 낙인들이 성폭력 피해자에게 되돌아오는 것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 낙인들이 되돌아오는 지점들이 바로 남성중심적 법과 제도라는 사실을 직시하는 거죠."

정명희씨의 연구에 따르면 어머니들은 이러한 과정들을 거치며 일련의 '지식'들을 습득하게 된다고 한다. 이를테면 성폭력을 불결, 타락과 연결해서 떠올리던 어머니는 이제 성폭력이 가해자에 의해 피해자의 몸이 침해받는 것임을 안다. 성폭력에 대해 재구성되는 부분들이 생기는 것이다.

정명희씨는 "여성 자신의 고통을 '남성의 욕망' 대신 '자신의 고통'으로 말하는 생존자의 말하기를 통해 여성의 시선이 확장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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