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경죄로 된통 야단을 맞을 일이지만 그 날 선운사의 부처님들은 나를 여러 번 웃겼다. 산자락에 다소곳이 내려앉은 절집은 겨울임에도 봄날처럼 나른한 햇살에 잠겨 있었다. 그런 평온한 분위기에 젖어 긴장의 끈을 놓쳐 버렸기 때문일 터였다.
천왕문에 들어설 때, 혹 내 몸에 잡귀를 묻혀 오지는 않았는지 경건하게 몸을 추슬렀어야 마땅했다. 그런데 과장되게 기세 등등한 모습에 장난기마저 느껴지는 사천왕상(四天王像)을 한참 올려다보고 있으려니 피식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들을 조각한 이는 절을 찾아 온 사람들을 맞는 사천왕이 웃는 표정이어야 할지, 아니면 무서운 형상이어야 할지 헷갈렸을 것이 분명했다. 목공은 너무 오래 사천왕과 친구가 돼 살았던 게다. 인간하고 친구가 된 사천왕. 그 발치에 슬그머니 다가가 ‘꽥’하고 소리를 지르면, 놀란 사천왕이 주저앉을 것 같았다.
대웅전의 부처님은 졸고 있었다. 멀리 인도에서 오신 통통한 그 분은, 보리수나무 아래서 잎새 사이로 잘게 부서져 내리는 햇빛 가루를 맞고 있었다. 거기에 얇은 옷깃을 스치는 산들바람의 속삭임까지 더해지니 밀려오는 졸음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게다. 그 졸음을 거부하려는 듯 관음전과 도솔암의 지장보살님은 머리에 두건을 질끈 동여매고 있었다.
발칙한 연상(聯想)은 도솔산 중턱, 수직의 절벽 위에 새겨진 마애불(磨崖佛)까지 이어졌다. 이 돌부처님 또한 대자대비한 모습과는 거리가 있다. 어쩌다 누군가에게 한 대 얻어맞고 분을 삭이지 못한 표정이다. 눈썹은 치켜 올라가고 입은 골이 나서 삐죽 나왔다.
불완전한 인간을 닮고 싶어한 것은 아니었을 텐데도 항상 신은 인간을 닮게 마련이다. 사람들은 다른 경배의 대상들 역시 어떤 절절한 염원을 담아 그렸고 조각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자신들의 모습을 닮고 있었다. 왕조의 명운이 다해가던 고려말, 이곳을 지배하던 호족의 한 무리는 도솔산에 올랐다. 그들은 세상의 힘이 이동하고 있음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리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세계를 열어 줄 수호신이자 자신들의 얼굴을 바위에 새겼다.
고려가 망하고 수백 년이 더 흐르자 이 곳에는 기이한 전설이 생겨났다. 마애불의 배꼽에 있는 감실(龕室)을 열어 비결(秘訣)을 꺼내면 한양이 망한다는 것이었다. 1820년 이 곳에 부임해 온 전라감사 이서구(李書九)가 석불의 배꼽을 열었다. 비결을 꺼내 한 줄을 읽자 뇌성벽력이 일어 두려움에 도로 넣어 두고 봉했다. 그가 읽은 비결의 첫 줄에는 ‘전라감사 이서구가 열어 본다’고 씌어 있었다.
동학 접주 손화중은 1892년 수하들과 함께 선운사의 스님들을 모조리 꽁꽁 묶어 놓은 다음, 석불의 배꼽을 도끼로 부수고 비결을 꺼내가 버렸다. 그 후 다시 비결은 찾을 수 없었고 대신 백성들의 가슴마다에는 조용히 들불이 번져 갔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동학농민전쟁이 시작되었고 이후 예언대로 한양은 망했다.
세상이 세월을 따라 속절없이 흘러가고 선운사의 뒷산에서는 하염없이 동백이 피고 졌다. 600여년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죽어간 이들을 지켜보며 그들도 같이 목을 떨구었다. 꽃잎도 시들지 않은 채 참수 당하듯 처절하게 송이째 뚝뚝 떨어지는 이 꽃은 4월 말이면 선운사에서 주관하는 ‘동백연(冬柏燕)’과 함께 절정에 이른다.
선운사 동백꽃과 함께 빠뜨릴 수 없는 현대 문인의 한 사람, 미당 서정주는 절 아래에 있는 질마재 마을에서 나고 자랐다. 선운사로 가는 길가에 그의 육필 원고를 옮겨 놓은 시비가 서있다.
선운사 골째기로 / 선운사 동백꽃을 / 보러 갔더니 /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않했고 /
막걸릿집 여자의 / 육자배기 가락에 / 작년 것만 상기도 남었습니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었습니다.
(서정주 ‘선운사 동구’ 전문)
선운사 부도밭에서는 추사 김정희의 글씨 중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는 ‘백파선사비문’을 만나볼 수 있고 경내에서는 추사와 함께 당대 최고의 명필로 꼽혔던 원교 이광사의 글씨를 ‘천왕문(天王門)’과 ‘정와(靜窩)’라는 현판에서 감상해 볼 수 있다. 또 절 마당 한편에 웅장하게 지어진 화장실 벽에 당대의 명필들을 압도할 양 검정 페인트로 큼직하게 씌어진 ‘남녀’라는 글씨도 비교 감상해 보는 재미가 있다.
이곳에 들르면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곳에서 잡힌다는 풍천장어와 그 것에 곁들인 복분자주를 맛보지 않을 수 없다. 속설에는 이 술을 먹고 오줌을 누면 요강이 엎어진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하는데 장어와 함께 먹으면 찰떡궁합이라고 한다.
”아짐, 요것이 진짜루 그러케 힘에 좋다요?”
“두말허믄 잔소리제!, 근디 묵고 나서 어따 힘 쓸란가?”
중년의 여주인과 눙치며 몇 순배 도니 서정주도, 마애불도, 동백도 모두 석양 속으로 사라져 버리고 짙은 산그늘이 빈자리를 채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s-oil'사보 2월호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