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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려고 부동산 시장에 내놓은 집 앞에는 '팝니다(For Sale)'라고 쓴  안내판을 세운다.
팔려고 부동산 시장에 내놓은 집 앞에는 '팝니다(For Sale)'라고 쓴 안내판을 세운다. ⓒ 정철용
오픈 홈: 마음대로 집구경하세요

<부동산 신문>이나 집 앞에 서 있는 안내판을 보고 일단 관심이 가는 집을 골랐다면 이제 그 집 내부를 구경하는 일이 순서다. 한국에서라면 그 집을 취급하는 복덕방을 찾아가 부동산 중개인에게 부탁할 텐데, 여기서는 아주 급하거나 주말에 바쁜 경우가 아니라면 그럴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오픈 홈(Open Home)’을 이용하면 되기 때문이다.

오픈 홈은 말 그대로, 팔려고 부동산 시장에 매물로 내놓은 집을 잠재적 매수인들에게 일정한 시간에 공개하는 것으로, 이곳 뉴질랜드에서 집을 파는 데 사용하는 가장 일반적인 마케팅 수단이다.

오픈 홈은 보통 주말에 30분에서 1시간 정도씩 열리며, 이 때 집주인은 자리를 비우고 부동산 중개업자가 호스트가 되어 고객들을 맞이하게 된다. 집주인은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하여 대개 미리 집을 깨끗이 정돈하고 산뜻하게 꾸며놓으며, 집을 구경하려고 방문한 손님들은 부동산 중개업자의 안내를 받으며 집 안팎을 구석구석 꼼꼼히 살펴보게 된다.

오픈 홈 일정에 대한 정보는 <부동산 신문>에서 쉽게 얻을 수 있다. 만약 사전에 정보를 얻지 못했을지라도, 주말에 자동차를 몰고 슬슬 운전하다 보면 오픈 홈을 하는 집을 금방 알아볼 수 있다. 오픈 홈을 하는 집들은 거의 모두 집 앞에 부동산 회사의 깃발이 펄럭거리고 있고, ‘오픈 홈’이라고 인쇄된 커다란 안내판을 세워 놓고 있어서 쉽게 눈에 띄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곳 뉴질랜드에서는 아주 급하게 집을 사야만 하는 처지가 아니라면 굳이 부동산 중개사무소를 기웃거릴 필요가 없다. <부동산 신문>에 나온 오픈 홈들을 둘러보고 그 중에서 마음에 드는 것이 있으면 그 때 가서 부동산 중개인과 가격과 조건들을 알아보면 되는 것이다.

꼼꼼하게 마음껏 집을 둘러볼 수 있는 뉴질랜드의 이러한 오픈 홈 풍경은 여기저기 복덕방을 기웃거리며 정보를 얻고, 괜찮다 싶은 집이 있으면 집주인의 허락을 얻어 집주인이 있는 가운데 조금은 불편한 마음으로 대충 둘러보아야 하는 한국과는 너무나 대비된다.

한편, 오픈 홈은 철저한 시장주의의 산물이기도 하다. 집이라는 고가의 상품을 거래하는 부동산 시장에서 오픈 홈은 매도인에게는 더 많은 수요자와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매수인에게는 더 많은 공급자와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합리적인 수준에서 가격이 결정되도록 해준다.

주말마다 열리는 '오픈 홈(Open Home)'을 통하여 마음껏 집구경을 할 수 있다.
주말마다 열리는 '오픈 홈(Open Home)'을 통하여 마음껏 집구경을 할 수 있다. ⓒ 정철용
협상과 계약 : 얼굴 붉히고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오픈 홈을 통하여 꼼꼼히 집을 둘러본 매수인이 집이 마음에 들어 ‘오퍼(Offer)’를 넣으면, 이제 계약을 위한 협상 과정이 시작된다. 한국에서는 협상을 통하여 계약에 이르기까지 매도인과 매수인이 부동산 중개인의 입회 아래 서로 얼굴을 맞대고 흥정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어서 때로는 얼굴을 붉히거나 감정을 상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나 여기 뉴질랜드에서는 그럴 일이 거의 없다. 매도인과 매수인이 직접 얼굴을 맞대지 않고 중간에 선 부동산 중개인을 통하여 협상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부동산 중개인은 쌍방을 오가며 적정한 선에서 가격과 조건들을 합의하도록 중재 역할을 한다. 또한 그 협상 과정도 구두가 아니라 문서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매도인과 매수인이 핏대를 내고 언성을 높일 이유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매도인과 매수인이 한 번도 얼굴을 보지도 않은 채 계약이 이루어지는 것이 여기서는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집을 내주고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갈 때까지도 매도인이 매수인과 한 번도 얼굴을 대면하지 않는 것이 결코 드문 일이 아니다.

이렇게 해서 계약이 체결되면 그 집 앞에 세워 놓은 ‘팝니다’ 안내판에 ‘팔렸음(Sold)’이라는 딱지를 붙인다. 이렇게 되면 이제 이 계약의 후속 업무 처리는 부동산 중개인으로부터 변호사에게로 이전된다. 매도인과 매수인이 지정한 변호사들끼리, 등기부 등본 대조 확인 및 계약금과 잔금의 처리에서부터 등기 이전에 이르기까지, 계약 후 남은 제반 업무를 처리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뉴질랜드에서는 부동산 중개인과 변호사가 집의 거래 과정에 깊이 참여하여 매도인과 매수인을 대신하여 일을 처리해 주기 때문에, 집을 파는 사람이나 사는 사람 양쪽 모두 서로 얼굴 붉힐 일이 없고 마음 졸이며 신경 쓸 일도 적은 것이다.

계약이 체결되어 팔린 집에는 '팔렸음(Sold)'이라는 딱지를 붙인다
계약이 체결되어 팔린 집에는 '팔렸음(Sold)'이라는 딱지를 붙인다 ⓒ 정철용
부동산 중개수수료 : 상당히 높지만 그만큼 서비스도 좋다

이곳 뉴질랜드의 부동산 중개수수료 요율은 한국과 비교해 볼 때 제법 높다. 부동산 회사별로 약간씩 차이가 나긴 하지만, 일반적으로 삼십만달러(한화로 약 2억4천만원)까지는 거래 금액의 3.75%, 삼십만 달러를 넘어가는 금액에 대해서는 2%를 부동산 중개수수료로 지불해야 한다. 여기에 세금 12.5%까지 붙으니, 삼십만 달러짜리 집을 거래할 경우, 부동산중개인에게 떨어지는 수수료는 거래 금액의 4%가 넘는 약 1만2600달러(한화로 1천8만원)에 달한다.

어떤 경우에도 매도인과 매수인 양쪽에서 받는 부동산 중개수수료를 모두 합쳐도 그 총액이 거래 금액의 2%를 넘지 못하게 정해져 있는 한국의 부동산 중개수수료 요율과 비교해 볼 때, 뉴질랜드의 부동산 중개수수료 요율은 상당히 높은 편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부동산 중개인들이 자기가 맡은 집의 거래를 위하여 실제로 하는 일을 가만히 살펴보면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그들은 <부동산 신문>에 광고를 내는 것부터 시작해서 주말보다 열리는 오픈 홈에 이르기까지, 앉아서 손님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발로 뛰면서 여러 가지 실질적인 마케팅 노력을 기울이기 때문이다.

또한 계약을 위해 매도인과 매수인 양쪽을 부지런히 오가며 협상 중재도 주도하는 등 이곳 뉴질랜드에서는 부동산 중개인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고 그 서비스 수준이 한국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높으니 당연히 높은 수수료를 받을 만한 것이다. 여기에 뉴질랜드는 사람 손이 가는 서비스에 대한 가격이 높은 나라라는 점도 뉴질랜드의 부동산 중개수수료가 높게 책정된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한국에서는 매수인과 매도인 쌍방이 모두 내는 이 부동산 중개수수료를 이곳 뉴질랜드에서는 오직 매도인만이 낸다는 점이다. 이 점 역시, 부동산 거래를 하나의 상품이나 용역의 거래처럼 여겨, 거래를 의뢰한 매도인에게만 그 수수료를 부담한다는 철저한 시장주의의 논리에서 나온 것으로 여겨진다. 사는 사람에게 별도의 수수료를 내가면서까지 물건을 사라고 한다면 누가 그 물건을 산단 말인가!

이처럼 한국과는 달리 매우 투명하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뉴질랜드의 부동산 거래 문화는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작용한 결과일 것이다.

우선은 뉴질랜드의 부동산 중개업소는 한국처럼 동네 복덕방 수준이 아니라 전국을 망라하는 대규모 부동산 회사들이 각 지역에 지점을 두고 교육받은 공인 중개업자를 고용하여 운영되고 있다는 점에서 찾아볼 수 있다.

따라서 이곳 대부분의 부동산 중개업소는 한국처럼 주먹구구식, 또는 우물 안 개구리식이 아니라 회사를 경영하는 방식으로, 적극적인 마케팅의 도입과 각종 지표와 통계를 적절히 분석하고 활용하면서 집을 거래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뉴질랜드의 집들은 아파트로 대표되는 한국의 획일적인 주택 문화와는 다르다는 점도 큰 이유가 될 것이다. 같은 지역 내에 같은 회사에서 지은 집일지라도 그 구조와 디자인이 조금씩 다를 정도로 이곳의 집들은 다양성과 개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정보의 공개와 오픈 홈이 필수적인 과정이 되는 것이다.

여기에 서양인들의 협상과 계약에 관한 오랜 전통도 분명 한몫을 했을 것이다. 즉, 합리적인 토론에 입각한 협상 과정과 구두보다는 문서를 중시하는 계약 정신에 이들은 매우 익숙해 있기에 집을 사고파는 과정에도 그 전통이 자연스럽게 스며든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집의 거래에 있어서도 철저하게 적용되는 시장주의가 뉴질랜드의 부동산 거래 문화를 투명하고 합리적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즉, 이들은 집도 시장 원리에 따르는 하나의 상품으로서 취급하기 때문에 오픈 홈과 같은 적극적인 마케팅을 벌이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집의 가격도 매도인(공급자)과 매수인(수요자)의 협상이라는 시장 원칙에 의해서 형성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여기서는 한국처럼 시장 외적인 이유로 집값이 하루아침에 몇 억씩 폭등하는 기현상을 찾아볼 수가 없다.

한국의 주택 문화는 뉴질랜드와는 여러 가지 면에서 다르기 때문에 이러한 뉴질랜드식 부동산 거래 문화를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겠지만, 그 밑바탕에 흐르고 있는 건전한 시장주의는 한번 도입할 만한 것이 아닐까. 건전한 시장주의의 회복이야말로 한국의 부동산 거래 문화를 바로잡는 지름길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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