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박목월 시인의 옛집
박목월 시인의 옛집 ⓒ 서울시 제공

한국 사람 중에 이 시를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고 박목월 시인 생존시 마지막으로 시작(詩作) 활동을 했던 용산구 원효로 4가 집이 문화재청과 서울시의 보존 노력에도 불구하고 지난 21일 헐렸다.

이번에 헐린 시인 박목월 선생의 옛집(용산구 원효로 4가 5, 6-2번지 소재)은 1965년 신축된 이후 선생이 78년 혈압으로 사망할 때까지 12년간 거주하면서 '어머니, 경상도의 가랑잎, 사력질(砂礫質)' 등 작품 활동을 했던 집필지로서 2월 14일 관할구청에 멸실 신고를 하고 철거를 서두르고 있었다.

이 집은 선생이 사망한 이후 장남인 서울대 국문과 박동규 교수 등 4명의 자녀들이 보존하고 있었으나,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여러 차례 매각의 위기가 있었다고 한다. 2001년 선생의 옛집에 대한 경매에서 박동규 교수 부인이 낙찰받아 2002년 5월 그 자리에 다세대 주택(지하 1층, 지상 2층)을 건축하기 위하여 관할 용산구에 건축허가를 받은 사실이 확인되었다.

서울시와 문화재청은 이 건물의 보존을 위해 박동규 교수와 접촉을 했으나 자신은 권한이 없고 부인이 권리를 가지고 있어 본인으로서는 말할 입장이 아니다, 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보존을 위해 매입도 적극 추진하고 2월 23일 보존을 위한 기자회견을 할 예정으로 보도자료까지 다 만들고, 2월 24일 문화재청과 서울시가 합동으로 현장조사에 나가게 되어있었다. 그러나 이 집은 이미 2월 21일에 헐린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헐린 자리에는 지하 1층, 지상 2층, 12세대의 다세대 주택이 건축 예정이다. 한국영 서울시 문화재과장은 "보존을 위해 가족을 접촉하고, 박동규 교수에게 협력을 애원했다. 너무 허탈해서 다리가 떨리며, 비애를 느낀다"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23일 박동규 교수와 부인측의 입장을 듣기 위해 기자가 수차례 접촉을 시도했으나 현재 연락이 되지 않고 있는 상태다.

한편 50년이 지난 건축물을 헐 때는 허가제 도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일부에서 제기돼 왔다.

박목월 시인

박목월(1916-1978.3) 시인의 본명은 영종(泳鍾)이며, 경북 경주 출생이다. 1935년 대구 계성(啓星)중학을 졸업하고 1939년 문예지 <문장(文章)>에 시가 추천됨으로써 시단에 등장하였다. 1953년 홍익대학 조교수, 1961년 한양대학 부교수, 1963년 교수가 되었다. 1965년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에 선임되었고, 1968년 한국시인협회 회장에 선출되었으며, 1973년 시 전문지 <심상(心像)>의 발행인이 되었다. 조지훈, 박두진 시인과 함께 청록시인으로 활동했다.

1976년 한양대학교 문리과대학장에 취임하였다. 자유문학상, 5월문예상, 서울시문화상, 국민훈장 모란장 등을 받았다. 저서에 <문학의 기술(技術)> <실용문장대백과(實用文章大百科)> 등이 있고, 주요 작품으로 산그늘(1939), 가을 으스름(1940), 연륜(1940), 청록집(靑鹿集)서정(1956), 토요일의 밤하늘(1958), 난(1959), 보랏빛 소(1964), 행복의 얼굴(1964), 어머니(1967), 경상도가랑잎(1968), 사력질(砂礫質), 무순(無順) 등이 있으며, 수필집으로 <구름의 서정시> <밤에 쓴 인생론(人生論)> 등이 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