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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이 연재될 소설 <산대놀이>는 등장 인물들을 산대놀이에서 따오긴 했지만 산대놀이 자체 내용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산대놀이라는 제목을 사용한 데에는 몇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먼저 산대놀이는 풍자, 해학과 함께 당시 민중이 조롱하는 대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그 대상은 양반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약자에게도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산대놀이는 말 그대로 '놀이'일 뿐 그 안에는 어떤 개혁적인 사상이나 의지는 없는 셈입니다. 왜 일까요?
겉보기와는 달리 다른 얘기가 이 안에 숨어 있는 것은 아닐까요? '소설 산대놀이'의 주제어는 '변할 수 있을 때 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입니다. 여기서 누가 변하려는 사람이고 누가 변하지 않으려는 사람인지는 소설을 접해 보시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땡추들
수려한 일만 이천 금강산을 굽이굽이 돌아 들어가 자욱한 구름을 헤치다 보면 드문드문 사람들을 만나볼 수 있는데 그 표정이 때론 살갑기도 하고 때론 사납기도 하였다. 살가운 이들은 구경 온 남정네나 아낙들이고 사나운 것은 이를 노리는 강도가 수시로 출몰한다는 점이었다. 이들이 모두 무심하게 신경 쓰지 않고 보내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들은 바로 지금 산길 사이를 굽이굽이 돌다가 쉬어가고 있는 금강산 땡추들이었다.
"허! 이놈의 옴이 또 오르네 그려! 에이 육시랄!"
얼굴 한 가득히 옴이 피어오른 땡추 하나가 가사를 벗어 젖힌 채 몸을 벅벅 긁어대며 연실 욕을 내뱉고 있었다. 그 옆에는 두 명의 땡추가 제각기 보따리에서 먹을 것을 꺼내놓고 있었는데 그 모양새가 가관이었다. 둥글게 모여 앉은 가운데에서는 토끼고기가 익고 있었고, 보따리에서는 술이 줄줄이 나오고 있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함은 이럴 때를 두고 한 말이렸다. 아하하하!"
이마에 큰 혹이 달린 땡추가 뭐가 그리도 좋은지 연실 웃음보를 터트리며 술을 돌리고 있었다. 콧수염만 유달리 돋보이는 중이 조심스레 구워진 토끼를 집어 뒷다리를 죽 찢으며 자기 입에 냉큼 집어넣었다.
"허, 이 사람이…. 내 입은 입도 아닌가?"
아마도 옴 땡추가 우두머리 격인지 나무라는 소리를 하자 콧수염 땡추는 두 말없이 먹던 토끼 다리를 내밀어 주었다. 한참을 부어라 마셔라 하던 이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술이 거나하게 취하기 시작했고 먼저 콧수염 땡추가 하릴없이 낄낄거리며 시조를 읊조리기 시작했다.
창(窓) 내고쟈 창을 내고쟈, 이 내 가슴에 창 내고자 / 들장지 열장지 고무장지 세살장지, 암돌쩌귀 수돌쩌귀, 쌍배목 외걸쇠를, 크나큰 장도리로 뚝딱뚝딱 박아 이내 가슴 창 내고자 / 임 그려 하 답답할 제면 여닫어나 볼까 하노라.
낭랑하고도 구슬프게 울려 퍼지는 시조가락에 나머지 두 중도 허벅지를 탁! 탁! 쳐가며 ‘좋다!’소리를 연발했다.
“아따! 그놈! 염불 외울 때는 목소리가 기어 들어가더니 절에서 나오니까 힘이 펄펄 나냐? 게다가 중놈 입에서 나오는 시조가락에 색(色)이 가득하니 낭패로고!”
“어허! 형님! 그건 절간에서는 곡차를 못 먹어서 불력(佛力)이 충만하지 못한 탓일 뿐이외다! 자, 시조가락 한 수 읊었으니 이젠 형님이 정주성에서 있었던 얘기를 한번 풀어놓아 보시오.”
“허허. 내 그 얘기만 하자면 지금도 손에 땀이 나고 온 몸에 열기가 치솟아 오르는구먼.”
술 한 잔을 벌컥 들이키고서 옴 땡추가 숨을 가다듬자 혹 땡추와 콧수염 땡추는 엿장수 가위질 보는 아이들 마냥 기대에 찬 눈으로 허리를 비스듬히 숙였다.
“하루는 성벽에서 창에 기대에 졸고 있는데….”
“아따 형님! 홍경래 옆에서 모사(謀士)로 있었다던 양반이 우째 병졸 마냥 창을 들고 서 있었소?”
이야기를 시작하자마자 혹 땡추의 느닷없는 소리에 맥이 풀려버린 옴 땡추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야 이놈아! 그때는 워낙 다급했던지라 모사고 장수고 간에 손에 몽둥이라도 잡히면 들고 성벽에 올라가야 했어! 그리고 어르신 말씀하시는데 메뚜기 마냥 탁탁 튀어 올라 끊는 건 어느 가문의 예절인고!”
“가문이라니 중놈에게 가문을 묻지 마시오. 부처님께 귀의한 몸이외다.”
그 말과 함께 혹 땡추가 불량스런 자세로 합장을 했고 옴 땡추는 이를 무시한 채 계속 이야기를 해 나갔다.
“하여간 성벽에서…. 야, 이 개뼈다귀 같은 중놈아! 너 때문에 잊었잖아!”
옴 땡추는 손아귀에서 만지작거리던 토끼다리뼈를 혹 땡추에게 집어던졌고 혹 땡추는 이를 슬쩍 잡아채고서는 남은 살점을 냉큼 발라먹었다. 옴 땡추는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손바닥을 딱 마주치며 생각났다는 듯 자세를 바로 하고 헛기침을 몇 번하고서는 이야기를 다시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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