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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아래에 관군이 횃불을 대낮같이 밝혀 놓고선 승냥이 마냥 이쪽을 노려보고 있다는 생각이 드니 허기가 져 졸리운 마당에도 가끔씩 정신이 바짝바짝 들더라 이 말이야. 언제부터인가 어디선가 가야금 뚱땅거리는 소리가 은은히 들리더라구. 허기가 지니 이젠 헛소리가 다 들리네 하고 생각했는데 주위에 있는 사람들도 '어디서 나는 소리네?'하며 모두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라고. 고개를 돌려보니 홍경래 옆에서 웬 여인네들이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르고 있더군."
"이뻤소?"
콧수염 땡추가 침을 꼴딱 넘기며 잠시 뜸을 들이는 옴 땡추를 재촉했다.
"아 이쁘다마다! 그들로 말하자면 정주관아에 있던 관기(官妓 : 관에 소생된 기생)들이었거든! 정주 기생으로 말하자면 평양 기생 못지 않다고 소문이 쫘~ 하다구! 홍경래의 시중을 들다가 어느 순간에 인가 장병들을 위무하기 위해 내보내어진 것이었지! 어디 전장(戰場)에서 그런 광경이 펼쳐질 줄이나 알았나? 우리 같은 이들이야 관기가 아직도 정주성에 붙어 있었으리라 생각도 못했고...... 하여간 배고픔이 싹 달아나더라고. 밑에 있던 관군들도 무슨 일인가 싶어 밖으로 나와 보더군. 기생 장단에 맞춰 한 곡조 뽑고 나니 정신이 싹 맑아지더라고."
"그런데 형님, '우리 같은 이들'이라니요? 솔직히 말해서 홍경래의 모사는커녕 정주성에 그냥 병졸로 있었던 거 아니오? 아니면 지어낸 얘기라 앞뒤가 안 맞는 건 아니오?"
혹 땡추의 미심쩍어 하는 말에 옴 땡추가 버럭 화를 나며 타다 남은 장작개비를 집어 던졌다. 혹 땡추에게는 운이 없게도 불씨가 화악! 튐과 동시에 옷자락에 옮겨 붙어 스멀스멀 타기 시작했다.
"에고 형님! 일년 내내 이 옷 하나로 지내야 하는데 이게 무슨 행패요!"
혹 땡추는 옷을 벗어 불을 끄며 연실 우는 소리를 해대었다.
"야 이놈아! 이야기를 들었으면 장단이라도 맞춰야지 자꾸 끼어 들어 흥을 깨니 그러는 거다!"
"그래도 궁금한 걸 어쩌겠소."
"그래도 이놈이......"
옴 땡추가 술기운에 장작개비를 집어 드는 품이 장난 같지 않아 보이자 콧수염 땡추가 서둘러 말렸다.
"아 형님! 그만 하시오!"
"아, 저놈이 자꾸 내 말을 끊잖아!"
그런 와중에서 가만히 있으면 될 것을 혹 땡추는 기어코 한 마디를 더 붙이고 있었다.
"아니 그렇다고 하나 있는 옷을 태울 건 뭐란 말이오! 내 참! 이래 뵈도 절 밥은 내가 더 먹었소!"
"아니 이놈이 절간에서 개고기라도 처먹었나 누구 앞에서 절 밥 타령이야!"
옴 땡추는 혹 땡추를 때려죽일 듯이 달려들었고 콧수염 땡추는 이를 온몸으로 막으며 혹 땡추를 나무랐다.
"에끼 이놈아! 형님 말에 자꾸만 토를 다니 그런 일이 생기는 거 아니냐! 이따가 '손님'이 오면 그 옷을 너에게 줄 터이니 옷 걱정은 말거라."
"그 놈의 옷이 내 몸에 맞을지 어이 알겠소."
혹 땡추는 끝까지 불만 섞인 한마디를 던지고서는 탄 구멍이 뻥 뚫려 선명한 옷을 놓고 철퍼덕 주저앉아 버렸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고 콧수염 땡추는 이런 분위기를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는 듯 옴 땡추에게 말을 걸었다.
"그런데, 형님, 정주성에서는 어떻게 살아 나오셨소?"
'정주성'이란 말을 듣자 화를 가라앉히지 못해 식식거리던 옴 땡추의 얼굴에 다시 활기가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래, 만 명이나 되는 관군이 겹겹이 에워싸고 있던 정주성을 빠져나오기란 어려운 일이었지. 관군이 쌓아놓은 화약에 성벽이 무너지고 온통 아수라장이 되었을 때 난 창 하나에 의지해 쏜살같이 홍경래 곁으로 달려갔어."
옴 땡추의 말마디 사이로 혹 땡추가 또 다시 뭐라고 퉁을 던지려는 낌새를 보이자 콧수염 땡추는 눈짓으로 이를 말렸다. 혹 땡추는 말을 삼킨 채 입을 삐죽였고 옴 땡추의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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