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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래를 보니 낯색이 새파랗게 질린 게 어쩔 줄을 모르는 거야! 그래서 내가 말했지. '장군! 후일을 기약하며 이만 물러나야 함이 옳습니다!' 그러자 홍경래가 뭐라고 했는지 알아?"

옴 땡추가 좀 더 극적인 느낌을 주느라 얘기에 잠시 뜸을 들이는 사이 혹 땡추가 기어코 또 다시 끼어 들고야 말았다.

"아니 그런데 홍경래도 목이 댕강 잘린 정주성에서 어떻게 살아 나왔냔 말이오?"

옴 땡추는 혹 땡추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콧수염 땡추가 말릴 틈도 없이 제자리에서 솟구쳐 올라 두발로 혹 땡추의 가슴팍을 강타했다. 혹 땡추는 비명한번 제대로 지르지 못하고 거품을 물며 땅바닥에 나뒹굴었다.

"야 이놈아! 홍경래가 죽긴 왜 죽어! 효수 된 모가지가 홍경래인지 개 대가린지 니가 직접 가서 알아보기나 했냐?"

잠깐 적막이 흐른 뒤 흐느끼듯 혹 땡추가 땅에 고개를 쳐 박은 채 욕지거리를 내 뱉었다.

"어이구...... 저 쌍놈의 땡중..... 절 밥만 쳐 먹다가 곡주에 고기까지 배때기에 들어가니 힘이 뻗치는 모양이네...... 어이구......"
"뭐이 어드래?"

옴 땡추가 다시 혹 땡추를 치려는 찰나 콧수염 땡추가 입에다 손가락을 갖다대고선 '쉿!'하는 소리를 내었다.

"누군가 오고 있소!"

세 명의 땡추는 언제 그랬냐는 듯 신속히 먹던 술과 토끼고기를 치운 후 몸을 나무 뒤로 숨겼다.

"야 이놈들아! 십리 밖에서도 네 놈들이 요란 방정을 떠는 것쯤은 알겠다!"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들려오는 목소리에 세 명의 땡추는 허탈한 표정을 지으며 앞으로 나섰다. 옴 땡추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놈이 왔나 했더니 처운(處雲)이 왔었구먼."

세 명의 땡추 앞에 모습을 드러낸 이는 또 다른 키다리 땡추였다.

"땍! 이미 출가한 이의 속된 호를 부르다니! 형님 아우간에 쌈박질이나 하니 금강산에서 수련은 쌓지 않고 대체 뭘 했을꼬?"

키다리 땡추의 말에 세 명의 땡추는 약속이나 했다는 듯이 한숨을 쉬었다.

"말도 마시오. 거 진짜 혹독한 수행을 했다오. 혜천 스님인지 해골 스님인지 아주 사람을 잡더구려 잡아."

콧수염 땡추의 푸념에 키다리 땡추는 입도 열지 않은 채 '흐흐흐'소리를 내며 웃었다.

"내 그래서 만만히 보지 말라고 일렀지 않나?"
"그런데 그 놈은 대체 언제 오는 것이오?"
"저 아래서 사승(四僧)이가 합류하는 것을 봤으니 머지않아 이리로 올 걸세. 그러나 저러나 목이 컬컬하구먼."

키다리 땡추의 말에 혹 땡추가 쏜살같이 달려가 술병을 건네주었다.

"아, 그 동안 이승(二僧)이 형님이 언제 오나 노심초사 기다렸다오. 내 일승(一僧)이 형님의 등쌀에 못살 지경이었소."

혹 땡추의 말에 옴 땡추가 기도 안 찬다는 듯 하를 내었다.

"거 저놈은 타일러도 저 모양, 두드려 패도 저 모양이니 언제 인간 되나! 에이......"
"형님도 참...... 요사이 우리가 어디 인간이오? 죽지 못해 사는 축생계 미물들이지."

끝끝내 이죽거리며 한 마디도지지 않는 혹 땡추에게 옴 땡추는 더 이상 화를 낼 힘도 없다는 듯 손사래를 홱홱 쳤다.

"그래! 내가 미친놈이지 저런 놈을 잡고 얘기를 하고 성질을 내니 내가 아직 불심(佛心)이 부족하나보다! 금강경에 적혀 있기를 '여래께서는 마음의 흐름은 마음의 흐름이 아니다. 그러므로 마음의 흐름이라고 한다.'고 하셨단다. 네 놈에게 화를 내는 것은 화가 아니니 화가 나나보다."

"아따 형님, 언제 그리 어렵게 불경공부를 했소? 혹시 그동안 혜천인지 뭔지 하는 중에게 감화된 것이오?"

키다리 땡추의 말에 옴 땡추는 코웃음을 치며 괜히 나뭇가지를 꺾어 칼을 쓰듯 한번 휘둘러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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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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