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과 민주당의 대통령 탄핵소추 발의로 정국이 격랑 속에 빠진 가운데, 무려 2달 전부터 이러한 사실을 '예견'하고 향후 정국 운영 시나리오까지 제시한 사람이 있다. 다름 아닌 조갑제 <월간조선> 사장.
그는 지난해 12월 31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탄핵 뒤 조순형 차기 대통령론'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국회 야 3당이 협력하면 내일이라도 탄핵이 가능한데 무엇을 망설이냐"며 "내각제 개헌 등을 조건부로 한나라당이 조순형 대표를 차기 대통령 후보로 지지"하는 방안을 정국 해법으로 제시한 바 있다.
가능성 0%에 가깝다던 탄핵, 그런데...
당초 조 사장이 이러한 주장을 펼칠 때만 해도 정치권의 반응은 말 그대로 냉랭했다. <미디어오늘> 1월 2일자 보도에 따르면 당시 정치권은 조 사장의 주장에 대해 "실현가능성은 0%에 가깝다"(한나라당 배용수 부대변인), "그림을 그리는 것은 자유지만 너무 앞서가는 것 같다"(민주당 유종필 대변인)며 탄핵에 대한 언급 자체를 피하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우연인지 필연인지 몰라도 조 사장의 '정국 시나리오'가 제시된 직후, 그 전까지 노 대통령에 대한 비난 수위를 조절하던 조순형 민주당 대표가 점차 탄핵 관련 발언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1월 5일 민주당 상임중앙위원회의에서의 "대통령이 선거운동을 하겠다는 것은 헌법과 법률 위반으로 탄핵사유라는 것을 분명히 경고한다"는 발언을 시작으로 조 대표는 일주일에 두 세 차례 꼴로 탄핵 발의의 가능성에 대해 경고를 했다.
조 대표가 이렇듯 탄핵 관련 발언을 쏟아내던 1월 초는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이 치열하게 지지율 2위 경쟁을 벌이던 시기로, 소위 '조순형 효과'라고 불렸던 민주당의 상승세가 한풀 꺾이고 있던 시기였다.
결국 지난 9일 한나라당과 민주당 의원 159명의 서명으로 대통령 탄핵소추안 발의로 '실현 가능성 0%'에 가깝다던 현직 대통령 탄핵은 두달만에 눈앞의 구체적인 현실로 나타났다. 단순한 총선전략 차원을 넘어 각 당이 탄핵안 통과 여부에 사활을 걸고 '올인'하는 탄핵 정국이 펼쳐졌다.
이러한 시점에서 조갑제 <월간조선> 사장의 발걸음이 다시 빨라졌다. 조 사장은 지난 9일부터 자신의 홈페이지에 30여 개의 글(본인 작성글 10개)을 올리면서 탄핵안 통과를 위한 전방위적 압박 작전에 돌입했다.
조 사장은 탄핵안 통과를 저지하는 열린우리당 뿐만 아니라 법안 통과에 소극적 자세를 보이고 있는 한나라당·민주당 소장파 그룹과 자민련 김종필 총재에 대한 경고성 비난까지 제기했다.
다시 발언 빨라진 조갑제
조 사장은 11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박관용 의장의 역사적 소명'이란 글에서 박관용 의장에게 "주먹밖에 없는 수십 명의 열린우리당 의원만 제압하면 된다"며 경호권 발동을 충고하는 한편, '오도된 여론은 민주주의의 적'이란 글에서는 "탄핵에 반대하는 비율이 높은 여론조사의 결과는 '민주주의의 적'이기 때문에 친북화된 어용방송이 조작하는 여론이야 말로 대의민주주의를 뒤엎으려는 쿠데타적 음모"라고 강변했다.
탄핵 정국에 대한 조갑제 사장의 주장과 전망이 정치권에 실제로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 지는 실증할 수 없으나, 공교롭게도 현재 진행되는 정국 상황이 그의 '두달전 주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조 사장은 '조순형 차기론'을 최초로 제기한 지난해 12월 31일 글에서 "노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이뤄진다면 조순형 대표를 차기 대통령으로 세우고, 그 이후 조 대표는 민주당을 탈당하여 임기 중 내각제 개헌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과연 조 사장의 희망대로 탄핵 정국이 진행될 수 있을지, 아니면 거센 여론의 역풍으로 한-민 탄핵 공조호가 좌초될 것인지. 수많은 국민들이 마주 달리는 여·야 열차의 충돌을 우려하는 가운데 조 사장은 연일 "속도를 높이라"고 주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