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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복구봉사를 하고 있는 황응기씨
홀로 복구봉사를 하고 있는 황응기씨 ⓒ 김준회
지난 21일, 경기도 파주시의 자원봉사자 90여명과 함께 대청호 끝자락에 위치한 충북 옥천군 군복면의 한 포도 농가로 복구 봉사를 갔다. 이곳에서 우리 일행은 홀로 묵묵히 봉사 활동을 펼치고 있는 황씨를 만났다.

파주 봉사자 일행이 폭설 피해 현장에 도착했을 무렵이 오전 10시 경. 이미 그는 폭삭 주저 앉아버린 비닐하우스 한쪽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파이프 철거 작업을 하고 있었다.

황씨는 16년 경력의 목수다. 때문에 자신의 기술을 필요로 하는 비닐하우스 피해 농가를 주로 찾고 있다. 아침 일찍부터 피해현장을 누비고 다닌 지 벌써 12일째다.

그의 허리춤엔 망치와 장도리, 줄 톱 등 개인 장비가 매달려 있고, 능숙한 솜씨로 엿가락처럼 휘어진 파이프를 분리해 주름진 농민들의 가슴에 희망을 심어주고 있었다.

황씨는 이번 폭설 복구봉사뿐만 아니라 16년 전부터 소외된 이웃들을 위해 봉사활동을 해 오고 있다. 독거 노인들에게 목욕을 시켜주기도 하고 모내기철이 되면 모내기도 거들어 준다. 인력이 부족해 모내기에 쩔쩔매는 어르신들을 그냥 보아 넘길 수 없기 때문이다.

황씨가 육순의 나이에도 힘겨운 이웃들을 찾는 데는 이유가 있다. 학창 시절 부모에게 저지른 불효 때문이다. 황씨는 이회택 전 감독의 1년 선배로 한양공고에서 함께 축구선수 생활을 했다. 장애우였던 아버지는 어려운 가정사를 생각해 황씨가 공무원이 되길 간절히 원했지만 황씨는 그런 아버지의 뜻을 따르지 못하고 운동 선수의 길을 걸었다.

엿가락처럼 휘어진 비닐하우스 쇠파이프를 분리하고 있는 황응기씨
엿가락처럼 휘어진 비닐하우스 쇠파이프를 분리하고 있는 황응기씨 ⓒ 김준회
40살을 넘기며 부모에게 불효했다는 생각이 든 황씨는 그때부터 어버이날 노인정을 찾으며 막걸리 등 음식을 대접했다. 이렇게 시작된 그의 소외된 이웃 보듬기는 이후 매달 독거 노인을 돕는 것으로 이어졌고, 급기야 그를 불쌍한 사람들을 그냥 보내지 못하는 봉사자로 바꿔 놓은 것이다.

황씨는 "아직도 폭설로 인한 피해 복구가 멀었다. 자원봉사자들의 손길이 절실하다"며 자신의 일인 양 안타까워했다. 그는 또 "국회의원들 모두 탄핵으로 싸우지 말고 폭설 피해 현장에 와서 그 실상을 피부로 느껴 봤으면 좋겠다"고 일침을 놓았다.

그러면서 그는 "봉사활동이 힘들기보다 오히려 기분이 상쾌해진다"며 "피해 농민들이 웃는 모습을 볼 때 가장 행복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점심 식사 후 "커피 한 잔 하고 일을 계속 하자"는 봉사자들의 제의도 "배가 부르면 일을 못한다"며 쇠파이프 철거 작업을 계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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