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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기적거리며 뒤따라오던 포졸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재빨리, 그리고 조용히 백위길이 가리킨 담 쪽으로 뛰어들어갔다.

"둘은 이 쪽을 지키고 둘은 뒤로 돌아가 기다려라. 백포교와 나는 대문으로 들어가겠다."

김언로는 목소리를 가다듬더니 대문을 두드리며 느긋한 투로 말했다.

"이리 오너라."

김언로는 대문에 바짝 귀를 대며 안쪽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주의를 기울였다. 그때 안에서 '와장창'하는 소리와 함께 여인의 비명소리와 남자의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김언로는 다급해서 소리쳤다.

"모두 담을 넘어 들어가라!"

포졸들은 서둘러 김언로의 지시에 따랐고 곧이어 안에서 포졸에 의해 대문이 활짝 열렸다.

"아이고 나죽네! 저 왠수!"

백위길의 눈에 들어온 것은 복색이 흐트러진 한 사내가 아낙을 잡고 거칠게 흔들어대고 있는 모양새였다. 백위길은 김언로가 말릴 틈새도 없이 한 걸음에 달려가 그 사내를 밀쳐대고선 품속에 있던 쇠도리깨를 꺼내들었다.

"어허! 이 사람! 이런 건 함부로 꺼내면 안 되네!"

김언로가 백위길의 뒤에서 손을 움켜잡으며 만류했고 쓰러진 사내는 혀 꼬부라진 목소리로 소리쳤다.

"이...... 웬 놈들이 남의 집에 들어와 행패야! 내 마누라 내가 잡았는데 뭐 잘못된 거 있어?"

사정을 알고 보니 담을 넘은 사내는 하루가 멀다하고 술을 입에 대는 주정뱅이였는데 이런 처사가 미웠던 아내가 문을 열어주지 않자 담을 넘어 들어와 아내를 다그쳤던 것이었다. 백위길이 하도 흉흉이 대하자 아내 되는 이는 언제 원수라고 그랬냐는 듯이 남편의 상태를 살핀 후 김언로에게 달려들었다.

"이 사람이 주사(酒邪)가 심해서 그렇지 심성은 착한 사람인데 어찌 포교들이 이리도 거칠게 다룬단 말이오! 내 형조에 서리로 있는 오빠에게 얘기해 결판을 지으리다!"

김언로는 몇 번이고 잘못했노라고 얘기하며 백위길도 얼떨떨한 표정으로 자신의 잘못을 시인했다. 뒤에서 포졸들이 백위길의 실수를 비웃으며 쑥덕거리자 김언로는 매서운 눈초리로 쏘아보았고 포졸들은 딴전을 피우며 멀찍이 물러섰다.

"자네 저 사람이 양반이었다면 어찌 할 뻔했나? 자주통부(自主通符 : 포교가 양반을 체포할 때 쓰이는 일종의 증명서)가 있어도 양반을 그렇게 치는 법이 아니며 쇠도리깨를 꺼내드는 건 정말 다급할 때가 아니면 아니 되네. 왜 우리 포교들에게 칼을 안 내리는 건지 아는가?"

"......"

"자네처럼 순간적으로 잘못 판단하는 이가 있을 지도 모르니 그러는 걸세! 다음부터는 신중히 보고 신중히 말하고, 신중히 움직이게나!"

백위길은 완전히 풀이 죽어 힘없이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다음날, 푸석푸석한 얼굴로 일어난 백위길은 다짜고짜 이순보의 불호령을 들어야만 했다.

"아니 이런 정신나간 사람을 봤나! 멀쩡한 사람을 도둑으로 오인해 멱살을 잡고 땅에 패대기를 친 뒤 도리깨까지 꺼내 들었다고? 이거 완전히 우포도청을 말아먹자는 짓이 아니고 무엇인가?"

백위길은 고개를 푹 숙인 채 간밤에 같이 순라를 돌았던 김언로가 이순보에게 일러바쳤을 것이라 지레짐작 의심하며 이를 앙 다물었다. 그 때 김언로가 이순보에게 따지듯 되물었다..

"아니 이포교님! 신출내기에게 제대로 가르치지도 않고 대뜸 야간 순라부터 시키니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온데 어찌 백포교만 가지고 그러십니까? 어느 입싼 포졸에게 들었는지는 몰라도 백포교는 신출내기답지 않게 우리가 미쳐 못 본 것을 본 것이고 그에 다 같이 행동한 것이옵니다. 일을 따질 때 공과를 같이 논해야지 이렇게 모멸을 주며 다그치는 것은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옵니까?"

이순보는 얼굴이 벌겋게 상기된 채 김언로를 노려보다가 다음에 두고 보겠다는 듯 헛기침을 크게 한 후 물러나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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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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