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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 이 포교에게 뭐 실수한 거 있는가? 원래 치졸한 사람이긴 하지만 자네에겐 좀 집요한 감이 있네."
시전으로 기찰을 나가 한바퀴를 돈 뒤, 출출한 배를 채우려 국밥을 먹으며 김언로는 앞으로 백위길의 포교 생활이 평탄치 않을 것이라며 혀를 찼다. 백위길로서는 자신이 굳이 원하지도 않은 일을 하며 박한 대우를 받는 것이 아쉬웠지만 그럴수록 오기가 생겼다.
"괜찮습니다. 제가 일을 잘하면 더 이상 그러지 않겠지요."
"이 사람아, 내가 보기에는 그게 아니니 하는 소리네."
백위길은 국밥그릇을 들어 단숨에 남은 국물을 들이키고서는 입가를 소매로 대충 닦은 뒤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섰다.
"응? 어디가나?"
"반촌에 볼일이 있어 가봅니다."
김언로는 무슨 소리냐는 듯 눈을 크게 떴다.
"반촌? 거기 왜 가나?"
백위길의 머릿속에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그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말라'는 이순보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그냥 그리 가는 길에 아는 사람이 있어서입니다."
"그럼 빨리 갔다오게나. 포도청에 붙어있지 않으면 이 포교가 역정을 낼 테니."
백위길은 가볍게 목례를 한 뒤 달음박질치듯이 반촌으로 재빨리 걸어갔다.
반촌(泮村), 서명웅의 안광수전(安光洙傳)에 따르면 고려말기, 성리학을 널리 보급시킨 것으로 알려진 안향이 집안의 노비 100여 명을 성균관(안향 당시는 국학)에 기증하면서 생겨난 동네라고 했다. 소를 잡아 고기를 성균관에 보급하고 남은 고기를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그들은 옷차림과 말투에서 이질적인 성향이 강했다. 하지만 성균관 유생들과의 연대는 강한 편이였고, 이런 비호아래 반촌에서만큼은 국법 대신 반촌의 규약이 지켜질 정도로 격리된 곳이기도 했다.
'허! 한양 거리에 이런 곳도 있었나?'
백위길은 반촌 사람들이 자신을 힐끗힐끗 쳐다보는 것도 잊은 채 본연의 임무도 잊고 이곳저곳을 구경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한쪽에서는 잘린 소머리 옆에서 쇠고기를 썰어낼 칼을 "슥슥" 갈아대는가 하면 한쪽에서는 책을 옆구리에 낀 유생이 조용한 발걸음으로 지나가기도 하는 등 반촌의 풍경은 백위길로서는 신기함 그 자체였다.
"거 길 좀 갑시다."
장대 끝에 고기가 한가득 든 들통을 하나씩 메단 것을 어깨에 짊어진 우락부락한 사내의 퉁명스러운 말소리에 백위길은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이보게 말 좀 묻세."
"무슨 말이오?"
"이곳에 도둑이 자주 출몰한다는 소문이 있는데 혹시 아는가?"
챙이 짧은 갓에 옷 저고리 사이에는 통부가 삐죽이 드러나 보이는 행색에다가 그야말로 자신이 포교라는 것을 뻔히 보여주는 요령부득한 말에 우락부락한 반촌 사내는 어이가 없다는 듯 피식 웃음을 남기며 백위길을 밀치듯 하며 지나가 버렸다.
'아니, 저 상것이 어찌 저리 무례할 수가 있나?'
백위길은 순간적으로 욱하니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렇지 않아도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는 마당에 백정으로 보이는 자에게 무시를 당했다고 생각하니 앞 뒤 가릴 것 없이 다시 그 사내 앞을 가로막았다.
"이보게! 내 말이 말 같지 않은가!"
백위길이 소리를 치자 주변의 반촌 사람들이 모두 일손을 멈추고 백위길을 쳐다보았다. 심지어는 지나가는 유생마저도 발걸음을 멈추고 우락부락한 사내에게 물었다.
"이보시게 박서방, 무슨 일인가?"
"아무 일도 아닙니다요. 어서 가시던 길을 가시옵소서."
박서방이라 불린 사내는 유생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며 천천히 들통을 땅바닥에 내려놓았다.
"이것 보슈. 보아하니 여기 초행길인 듯 한데 내가 아무리 상것이라 하지만 뭘 물어보려면 정중히 해야 할 것 아니오. 양반도 아니면서 여기서 큰소리치면 어찌되는 지나 아시오?"
우락부락한 사내의 말은 조용하면서도 힘이 있었고, 그러면서도 천박하거나 협박하는 투는 아니었다. 백위길은 속으로 '앗차' 싶었지만 그래도 내친 김에 기죽을 필요 없이 물어볼 것은 물어봐야겠다는 심정에서 헛기침을 몇 번 한 뒤, 사내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또박또박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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