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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까지 닿은 기다림은 바닷길 가르고
강물이 모두 바다로 흐르는 그 까닭은
언덕에 서서
내가 온종일 울었다는 그 까닭만은 아니다

밤새
언덕에 서서
해바라기처럼 그리움에 피던
그 까닭만은 아니다.

언덕에 서서
내가 짐승처럼 서러움에 울고 있는 그 까닭은
강물이 모두 바다로만 흐르는 그 까닭만은 아니다.

-천상병 /강물


▲ 영등제의 전설의 주인공 뽕 할머니 사당
ⓒ 김정은
누군가를 가슴시리도록 그리워 한 적이 있는가? 그 그리움이 부모 자식간이 되었든 연인간이 되었든 가족이 되었든, 사무친 그리움의 경계 너머에는 어김없이 그리움이 승화된 전설들이 떠돈다. 진도군 회동마을의 뽕 할머니 전설도 바로 그리움이 승화된 전설 중 대표적인 사례다.

▲ 음력 2월부터 바닷길이 조금씩 열린다는 신비의 바닷길. 최대로 열리면 앞에 보이는 모도까지 열린다고 한다.
ⓒ 김정은
회동 마을은 예전부터 호랑이가 많이 출몰한다고 해서 호동(虎洞)이라 이름 붙일 정도로 호랑이 피해가 잦은 곳이었다. 조선 초기 손동지라는 사람이 제주도에 귀양가다가 풍랑으로 이곳에 표류하면서부터 대대로 정착해서 살고 있었는데 그 후손들은 점점 심해지는 호환에 견디지 못하고 주민 전체가 뗏목을 타고 마을 앞바다에 있는 띠섬(현 모도)으로 피난을 갔고 급하게 서두는 바람에 그만 뽕이라고 불리는 할머니를 남겨두게 되었다.

홀로 남게 된 뽕 할머니는 헤어진 가족이 그리워 날마다 용왕님께 축원하였다. 마침내 음력 2월 15일 밤 뽕 할머니의 꿈에 용왕님이 나타나 "내일 무지개를 바다에 내릴 터이니 그것을 타고 건너가라"고 하였다. 이튿날 뽕 할머니는 띠섬에서 가장 가까운 바닷가에 나가 때를 기다리면서 기도를 하고 있던 중에 갑자기 호동 마을과 띠섬 사이에 무지개 모양의 모래 언덕이 생겼다.

띠섬에서 이 광경을 바라본 주민들이 뽕 할머니를 찾기 위해 징과 꽹과리를 치면서 호동으로 몰려 왔는데, 가족을 만난 뽕 할머니는 기진하여 숨을 거두었다. 그 이후부터 마을 사람들은 뽕 할머니의 소망이 이루어져서 그의 넋이 하늘로 올라갔다고 믿고 이곳에 제단을 세우고 해마다 제사를 올렸다. 또 피난 갔던 사람들이 되돌아와 살았다 하여 호동을 회동이라고 고쳐 불렀다고 한다.

간절히 원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했든가? 뽕 할머니의 그리움이 서린 바닷길이 갈라진다는 곳은 가계해수욕장과 회동 사이, 뽕 할머니 사당 앞 호랑이와 뽕 할머니 조각이 세워져있는 곳에서 맞은 편에 까마득히 보이는 모도 앞바다다. 애초 영등제 기간이 아니어서 바닷길 갈라진다는 것은 생각조차 안하고 있었는데 요즘도 하루 두 차례 바닷길이 조금씩 갈라지는 걸 볼 수 있다는 한 여행객의 우연한 말에 속는 셈치고 새벽 6시경 문제의 바다로 떠났다.

▲ 신비의 바닷길로 내려가는 계단. 평상시에는 이 계단까지 물이 찬듯 물이끼가 많이 보인다.
ⓒ 김정은
나와 같은 여행객 몇 명만 보일 뿐 새벽바다에는 밖에 서있기 힘들 정도로 추운 바닷바람이 아직 덜깬 잠을 사정없이 흔들어 깨우고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불행히도 바닷길은 열리지 않았고 물이 차있으리라 추측되는 계단과 계단 아래의 약간의 땅만 보일 뿐이었다.

당연한 결말이라고 생각하고 돌아서려는데 그 곳에서 미역을 줍고 있던 어떤 분이 이렇게 위로하신다.
"이제부터 조금 조금씩 바닷길이 갈라지고 있어요. 오늘 오후 4시 정도면 또 조금 열릴 거에요"

바닷길이 갈라지는 현상은 주민들이 볼 때 그저 늘상 보아오던 생활이자 현상일 뿐 그다지 괴이한 현상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저 평범한 현상을 철저하게 외국인의 시선으로 새롭게 포장을 한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평소 진돗개에 관심이 많아 진도를 자주 방문했다던 전 주한 프랑스 대사 피에르 랑디였다.

▲ 진도 영등제를 한국판 모세의 기적이라 프랑스 신문에 소개한 주한 프랑스 대사 피에르랑디를 기념하는 기념비
ⓒ 김정은
현재 바닷길이 갈라지는 모습을 멀리서 가장 잘 조망할 수 있는 자리에 그의 업적을 기리는 의미에서 삐에르 랑디의 조각상이 서있는 아담한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태어나기 전부터 기독교 사상에 흠뻑 젖은 서양적 사고로 볼 때 하나님의 비호를 받은 '모세'같은 신인만이 홍해를 가르는 기적을 행할 수 있으리라 굳게 믿고 있는 이 서양인의 눈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바닷길이 쩍 갈라졌으니 마치 모세의 기적이 재현된 듯한 착각을 하기도 했으리라.

곧 그는 프랑스 일간지에 '모세의 기적'이라는 단어를 열거하며 이 현상을 소개했고, 평소 자연스런 현상 이상으로 생각지 않았던 우리 나라가 외국 매스컴에 소개되자 그 기사 그대로 베껴 '모세의 기적'이라 호들갑을 떨던 1970년대 후반 일이 지금도 기억에 선하다.

우리한테는 평범한 일상이 서양인을 통해 특이한 사건으로 재포장되어 역수입된 사례는 이것 말고도 부지기수지만 엄연히 뽕 할머니 전설이 살아있는 영등제가 이어져 내려왔음에도 현실적으로 뽕 할머니나 영등제보다는 '모세의 기적'이라는 단어가 많이 사용되는 현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더 씁쓸한 일은 바닷물이 어느날 갑자기 갈라진 것도 아닌데 요즘 진도 말고도 무창포나 제부도 등 바닷길이 열리는 곳에는 어김없이 모세의 기적이라는 단어가 고유명사화 되었으니 이러한 현상을 단지 얄팍한 관광상술이라 웃으며 넘어가야 할는지….

관광상술도 좋고 국위선양 차원의 홍보의 목적으로 모세의 기적을 이용한다는 데야 뭐라 할 말이 없다. 그렇지만 가장 중요한 사실은 잊지 말아야 할 것 같다. 적어도 기독교가 이 땅에 들어오기 훨씬 전에, 다시 말해서 이곳 사람들이 성경에 '모세'란 유대 사람이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던 시절부터 바다가 열렸고 그 시절부터 그 전설의 주인공인 뽕 할머니를 기리는 영등제를 지냈다는 사실을 말이다.

뽕 할머니의 사무치는 그리움의 경계 속에서 바닷길이 갈라지고 할머니의 영등살풀이로 발전한 영등제, 모세라는 유대 사람이 누군지 알리 없는 순진하고 소박한 뽕 할머니는 오늘도 자식이 없는 사람, 사랑을 이루지 못한 사람에게 어서 오라 손짓하며 부르고 있다. 이곳에서 지극하게 소망을 빌면 반드시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암시를 끊임없이 주면서 말이다.

제각(祭閣)공화국 진도

삼별초 유적을 찾아다니다가 지나가는 임회면 상만리 구암사에 세워져 있는 오층석탑에 잠시 들렀다. 전라남도유형문화재 제10호인 이 고려시대 오층석탑은 높이 3.8m로 현재는 그 자리에 구암사라는 민가모양으로 새 절이 생겨 탑을 보호, 관리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볼 때 균형감도 떨어지고 조각도 그다지 화려하지 않지만 그 시대 이 섬에도 국가의 안위나 개인적인 안녕을 기원하는 이런 석탑이 세워졌다는 점에서 놀랍다.

그러고 보면 이 동네는 다른 동네와는 뭔가 달라 보인다. 아마 이 곳에 석탑 말고도 천연 기념물 111호로 지정된 비자나무가 짙은 그늘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제주도 비자림에서 본 적 있는 이 나무가 언제 어떻게 이 곳에 심어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서너 아름이나 되는 밑둥에 군데군데 큼직한 구멍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그 나이가 적지 않을 것으로 짐작된다.

일설에는 이 나무에 기어올라가 놀던 아이가 땅바닥에 떨어져도 크게 다친 일이 없다는 이야기가 내려올 만큼 신령스러운 나무로 알려져 있다는데 이 곳 주민들은 해마다 정월 보름이면 그 아래에 모여 마을을 지켜온 이 거목에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 상만리 구암사에 서있는 상만사지 오층석탑
ⓒ 김정은
그런 연유에서일까? 석탑 때문인지 비자나무 때문인지는 잘 모르지만 이 동네 골목 구석구석에는 각 문중의 사당처럼 생긴 자그맣고 소박한 건축물들이 세기조차 힘들만큼 다닥다닥 붙어있어 외지인을 놀라게 하였다. 후에 이 지역에 이런 사당들이 몰려있는 이유를 주민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아, 제각 말이라…. 글쎄, 우리 집안 제각도 그곳 상만리에 있는디…. 자세한 이유는 잘 모르겠는데요. 그 위의 석탑 때문인가?"

제각이라. 제청(祭廳)의 용도로 사용되는 이 건축물을 이 곳 주민들은 제각으로 부르고 있었다. 진도에는 제각 공화국이라 할 만큼 제각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조상 숭배사상이 유독 강한 곳이라서 일까? 고려 시대 삼별초의 근거지이자 왕족의 유배지로서의 역사를 지니고 있는 탓일지도 모르지만 진도 사람의 이런 기질과 분위기는 진도 땅의 역사와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는 듯 보였다.

▲ 상만리의 비자나무. 신령스런 나무로 알려져 해마다 정월대보름이면 제를 지낸다고 한다.
ⓒ 김정은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 가족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의 정화로 바닷길이 갈라지는 회동 영등제나 이곳 상만리 오층석탑과 비자나무 그리고 곳곳에 세워져있는 비각들을 보면서 그 믿음의 상징이 얼핏 진도아리랑의 소박함과 닮아 보였다.

"청천 하늘에넌 잔별도 많고
요내야 가심속에넌 수심도 많다
아리아리랑 쓰리 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에~
아 리랑 음~ 아라리가 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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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업을 그만두고 10년간 운영하던 어린이집을 그만두고 파주에서 어르신을 위한 요양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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