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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색깔로 오나 봅니다. 가장 이른 봄꽃들은 노란 빛입니다.생강나무가 그러하고, 양지꽃이 그러합니다. 콩가루를 버무려 놓은 듯한 생강나무는 산수유와 엇비슷하니 피어납니다.
헐벗은 맨땅에 가장 먼저 달려와 덮어준다는 산괴불주머니도 아직 차가운 바람에도 부지런히 피어납니다. 그늘진 골짜기에는 피나물이 샛노란 꽃잎을 활짝 피었다가는 이내 지나는 바람에 가벼이 꽃잎을 날려 보냅니다. 조금의 미련도 없으며, 욕심도 없습니다. 모든 이들의 손가락질을 받으면서도 떠날 줄을 모르며 추하게 들러붙는 인간세상이 왈칵 부끄러워집니다.
어느 덧, 왔는가 싶으면 벌써 노란 꽃은 가고, 이제 흰 꽃들이 들어섭니다. 마당으로 오르는 길가에 줄지어 선 조팝나무가 눈부신 흰꽃을 매답니다. 빛으로 말하자면 이팝에 가까운 조팝나무의 새순은 홑잎이라 하여, 담백한 봄나물로 입맛을 돋웁니다. 이어서 하얗게 신록으로 물드는 산마다 산벚이 연기처럼 여기저기 피어납니다.
내 서투른 생각으로는, 아직 신록이 돋지 않은 이른 봄에는 노란 꽃이 눈에 잘 띄고, 노란 빛을 띤 연록의 새 잎이 돋을 때면 흰 꽃이 눈에 잘 띄기 때문이라고 제 멋대로 생각해 봅니다.
붉은 꽃들은 조금 늦는 편입니다. 잎 없이도 꽃부터 피어내는 진달래를 제외하고는 연분홍 개복숭아꽃이며, 앵두며, 금낭화가 그러합니다.
아차, 보라빛의 꽃들도 추녀 밑이나 댓돌 틈에 돋아나는 부지런한 제비꽃을 시작으로 붓꽃이 이어집니다. 닭장 밑의 매발톱꽃도 올해는 구색을 맞추듯 이르게 피어났습니다.
도시에서는 봄꽃이 피는 곳마다 꽃보다 더 많은 사람들로 붐빈다는데, 게으른 주인을 위해 마당까지 찾아오는 봄꽃들이 고맙기만 합니다.
병아리 울음소리처럼 가느다란 봄비가 밤새 내린 날, 살구꽃이며 산벚이 하얗게 떨어진 마당을 쓸어 가노라면, 어느 새, 가슴이며 두손이 설레는 봄내음으로 향기로워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