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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대학본부 앞에 설치된 김민수 교수 복직을 위한 천막 농성장.
서울대 대학본부 앞에 설치된 김민수 교수 복직을 위한 천막 농성장. ⓒ 이정은

'검열과 추방에 맞선 농성 207일'

서울대학교 대학본부 앞. 지난해 9월 29일 세워진 김민수 교수의 복직을 위한 천막 농성장은 현재 4월 22일로 207번째의 하루를 맞고 있다. 천막 안에는 김 교수와 김 교수 복직을 위한 대책위 학생들이 함께 있었다. 김 교수는 오후 3시부터 있을 무학점 강의 '디자인과 생활' 수업 준비로 분주했다.

김 교수는 96년 <서울대 미술대학 디자인-공예 50년사>라는 논문에서 서울미대 초대 학장 장발(1901~2001) 교수 등 서울 미대 초대 교수들의 친일행적 등을 언급해 동료교수들의 반발을 샀다.

결국 김 교수는 98년 교수 재임용 평가에서 '연구실적이 부실하다'는 이유로 교수 재임용에서 탈락됐다. 이에 대해 김 교수에 대한 미대 교수들의 '괘씸죄 적용의 결과'라는 평가가 김 교수를 비롯한 그의 지지자들의 공통된 주장이다. 22일 천막 농성장을 찾았다.

김민수 교수
김민수 교수 ⓒ 심형준
- 오늘로 천막 농성 207일째다. 그간 힘든 일 많았을 것 같다.
"지난 겨울 혹독한 추위를 견디면서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른다. '대한민국적 상황'이 이렇게 만든 것 아니겠는가(웃음). 하지 않아도 되는 일에 에너지를 소모해야 하는 비생산적·소모적 상황, 엔돌핀이 생기는 상황이 아니라 좌절하고 가슴에 멍들게 하는 상황, 이런게 '대한민국적 상황'이다. 이 땅에 태어난 죄 값을 치르는 거 아니겠는가(웃음)."

- 어제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교수 재임용은 행정소송 대상이 아니"라는 고등법원의 판결을 파기하고 다시 사건을 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는데. 대법원 판결에 대한 입장은?
"예전 1심 승소 판결에서 항소해 고등법원, 고등법원에서 다시 상고해 대법원까지, 이렇게 6년이 흘렀다. 이번 판결로 다시 1심 승소 상황으로 되돌아간 것뿐이긴 하지만, 그래도 대법원 판결은 비교적 명쾌하다고 본다. 대법원 판결 이전에 비해 상황은 나아졌지만 시간이 더 필요한 일이다. 아직 아무 것도 해결된 것은 없다.

어제 대법원에서 '사건을 다시 고등법원으로 돌려보낸다'는 짧은 판결을 들었을 때, '이 한마디 듣기 위해 지금까지 싸워 왔나'하는 생각이 들면서 6년 동안의 일들이 스쳐지나갔다. 지난 6년 시간을 짧은 판결문 하나에 다 담을 수는 없는 것이다.

오늘 천막을 방문한 어떤 이는 '(어제 대법원 판결에 대해) 왜 축하해야 하는가'라며 이런 현실에 속이 상해 했다. 애초에 없었어도 될 일을…. 이런 상황이 웃길 뿐이다. 그러나 이런 과정이 사회 상식 회복 차원에서 진행되는 민주화의 한 단계라고 보고 싶다."

"대한민국적 상황... 이 땅에 태어난 죄 값 치르는 것이자 민주화의 한 단계"

- 대학측에서도 대법원 판결에 대해 "고등법원의 파기 환송심에 국가소송절차에 따라 성실히 임하겠다. 본교는 대법원 판결을 계기로 이건의 해결을 위한 다각적인 법안을 적극적으로 논의·검토할 계획"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대학측의 입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학교 관리자 입장에서는 그렇게 얘기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좀더 성의있는 태도를 보여주지 못한 점이 아쉽다."

- 잠시 과거로 돌아가 보겠다. 98년 재임용 탈락 당시 심정은?
"당시 미술대학 교수 측은 나라는 한 인간을 폐기시키려 인신 공격, 루머 등을 마구 퍼뜨렸다. 그 상황에서 '이런 막말까지 들으면서 학교에 있어야 하나, 이민을 갈까'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덕성여대의 한 교수가 많은 용기를 줬다. 이 문제가 개인 문제가 아닌 대학 사회의 문제라고 직시하게 됐고, 맞서 싸우기로 결심했다. 아마 이 문제가 개인의 문제였다면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다."

- 재임용 탈락 이후 활발한 활동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재임용 탈락 당시, 심사 요건의 4배인 8편의 실적물을 제출했지만 학교 측은 부실하다고 하더라. 그런 오명을 벗기 위해서라도 재임용된 교수들보다 더 많은 연구를 해야한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연구 활동에 매진한 결과 저서 2권, 편저 6권, 20여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지금까지 12학기째 무학점 강의도 계속해 오고 있고, <디자인 문화비평> 잡지 편집인과 홍세화·노혜경·박노자씨 등과 함께 <아웃사이더> 편집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KBS <인물현대사> 자문위원, 한국영상문화학회 기획이사이기도 하다.

아마 이 사건이 터지지 않았더라면 내가 생각했던 범위 내에서 조용히 강의하고 연구하며 지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사건 이후 내 행동 반경이 넓어지고 시야가 확대됐다. 이렇게 보면 내가 이 사건으로 인해 꼭 잃은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웃음)."

"행동 반경과 사고 넓어져... 잃은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서울대 학생회관에 걸린 김민수 교수 복직을 위한  대형 현수막.
서울대 학생회관에 걸린 김민수 교수 복직을 위한 대형 현수막. ⓒ 이정은
- 무학점 강의임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이 꾸준히 참여하고 있다고 들었다. 학생들에게 각별한 마음 있을 텐데.
"학생들로부터 얻는 힘은 상당하다. 그걸 어떻게 말로 다 하겠나."

- 98년 당시 교수 재임용을 반대하던 미대 교수 측 입장에는 아직도 변함이 없나.
"98년 당시 교수들 중 다수는 이미 은퇴했으나, 아직까지 계보는 남아있다. 재밌는 점은 어느 시점부터 그들이 나를 가해자로 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사회적으로는 본인들이 사회적 왕따가 된 상황이니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나."

- 이 사건의 본질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김 교수의 재임용 탈락과 복직 여부만이 근본적 문제는 아니라고 보는데.
"그렇다. 문제의 본질은 학문의 자유에 대한 뚜렷한 규정이 없는 대학 구조라 할 수 있다. 대학이라는 곳이 학문의 자유를 실현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라 교수 사이의 정치와 외교술만이 비중있게 다뤄지는 전근대적 구조라는 점이다. 이번 일을 통해 '대학이란 무엇인가'라는 대학의 기능과 역할에 대한 진지한 재고가 필요할 것이다. 요즘 언론 개혁을 실시하겠다고 하는데, 교육 개혁도 시급하다. 교육 개혁이 가장 더딘 것 같다."

- 앞으로의 계획은?
"특별히 없다. 이제는 무학점 강의가 아닌 학점 있는 강의를 할 수 있는 원래의 내 자리로 돌아가고 싶다. 좀 더 나아진 환경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는 상황이 되길 바란다. 그러나 교수와 학생 사이의 냉소주의가 더 나은 교육 환경 형성에 장애가 되고 있다. 이는 교수와 대학 사이의 문제만이 아니다. 학생들에게도 책임이 있다.

시험 기간 학생들 사이에서는 족보가 돈다. 공부하지 않고 편리한 길만 찾는 것이다. 전공 공부는 대충하고 고시 공부에만 매달리는 학생들도 있다. 이런 학생들은 고시 공부를 위한 시스템이 무너지는 것이 두려울 것이다. 변화를 두려워 하는 것이다. 이런 교육 환경은 곧 교수와 대학과 학생들의 합작품이다. 학생들은 3자 합작품인 현 대학 현실에 대해 욕만 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변화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현 교육 현실은 교수-대학-학생들의 합작품... 학생들도 달라져야"

천막 농성장에 붙어있는 김민수 교수의 '12번째 무학점 강의-디자인과 생활' 포스터.
천막 농성장에 붙어있는 김민수 교수의 '12번째 무학점 강의-디자인과 생활' 포스터. ⓒ 이정은
인터뷰 후 김 교수는 오후 3시 수업을 위해 강의실로 향했다. 일반 교수들의 가죽 서류 가방과는 달리 김 교수 어깨에 매인 검은 색의 커다란 책가방이 눈길을 끈다. 수업 자료를 챙겨든 대책위 학생들과 김 교수 사이에는 정다운 대화가 오고 간다.

"우리는 이제 얼굴 표정만 봐도 상대방이 뭘 원하는지 다 알아. 지난 6년 동안 영하 10도의 혹한 속에서도 천막 안에서 함께 한 사람들이야." 김 교수와 대책위 학생들 사이는 '교수'와 '제자'라는 말보다 고락을 함께한 '동지'라는 말이 더욱 어울릴 듯했다.

서울대 인문대학 8동 002호 강의실에는 '디자인과 생활' 무학점 수업을 듣기 위해 40여명의 학생들이 모여 있었다. 이날의 수업 주제는 '현대 철학과 디자인 패러다임'. 20세기까지 디자인의 중심이었던 획일적 기능주의의 쇠퇴와 시각언어로서의 디자인을 위한 창조적 시각의 필요성이 주된 내용이다.

디자인 관련 수업이라 그런지 김 교수는 슬라이드 필름을 사용하여 학생들에게 다양한 시각 자료들을 보여주었고, 학생들은 슬라이드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김 교수의 설명과 학생들의 질문이 자유롭게 오간 수업은 '자유분방' 그 자체였다. 이 강의에는 서울대 학생뿐만 아니라 타 학교 학생들을 비롯한 일반인들도 참여하고 있다.

서울대 미대 앞에 서있는 미대 초대학장 장발 교수 흉상.
서울대 미대 앞에 서있는 미대 초대학장 장발 교수 흉상. ⓒ 이정은
"새내기 오리엔테이션에서 상영된 김 교수님 사건 관련 영상물과 학내 수업 안내 포스터를 보고 수업에 참여하게 됐다"는 이승주(인문대학 1년)씨는 "미술에 대해 잘 몰라도 생활 속에서 쉽게 미술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교수님 강의가 재밌다"며 "김 교수님은 다른 교수님들에 비해 권위적이지 않으시고, 생각이 많이 다른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이씨는 "고등학교 때 막연히 생각했던 서울대의 이미지가 입학하고 보니 여러 학내 분규 등으로 얼룩져 이제는 학교의 모순이 많이 보인다"면서 "작년에 원서 내러 학교에 왔을 때 김 교수님의 천막 농성을 봤는데 이제는 빨리 복직되셨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2시간 수업 내내 김 교수는 '현대인의 자유'를 강조하며 "의미에 따라 사물도 다양하게 만들 수 있어야 한다"는 자유로움을 설파했다. 김 교수 자신도 이제는 좁디 좁은 농성 천막 안에서 벗어나 그만의 세계를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자유로운 환경을 꿈꾸며 이 날 강의를 한 것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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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인 시위 중인 김동우 교수
ⓒ임순혜

"8등신으로 고치라굽쇼?"

서울 미대에 김민수 교수가 있다면, 세종대 미대에는 김동우 교수가 있다. 김동우 교수는 지난 98년 학교 측의 의뢰로 만든 조각품 '모녀상'을 "팔등신으로 고치라"는 재단 이사장의 요구를 거역한 '괘씸죄'로 교수 재임용에서 탈락했다. 이에 항의하여 김 교수는 지난 2002년부터 세종대에서 매일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김 교수는 23일 오전 <오마이뉴스>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1인 시위의 목적은 단순히 나의 복직을 위해서가 아니라 세종대의 민주화를 위한 것"이라며 "나의 복직은 부차적인 것"이라고 말했다.

"처음에는 개인적 억울함으로 시위를 시작했으나, 2년 반 동안 학내 상황을 지켜보며 생각을 바꾸게 됐다"는 김 교수는 "교수협의회나 교직원노조는 학교 측에서 원천봉쇄해서 만들 수도 없다"며 "세종대는 시대착오적 사고를 갖은 사람들에 의해 철군 통치가 이뤄지고 있는 곳"이라고 강력히 비판했다.

이어 김 교수는 "학내에서 문제가 발생해도 교수협의회나 교직원노조가 없으니 대중의 뜻을 거를 장치가 없다, 오직 상하의 개념 뿐"이라 말하고 "1달 전쯤 '세종대 더 이상 이대로는 안된다'며 양심선언한 교육학과 박주용 교수에 대해서도 학교 측은 매장할 태세"라고 전했다.

"복직 문제는 이미 마음 접었다"는 김 교수는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세종대의 민주화를 위해 나와 뜻을 같이하는 시민단체, 학생들과 함께 1인 시위를 계속해 나갈 것"이라며 굳은 결심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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